“5만원권이면 10억도 한번에 전달”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국회의원 한 명이 한 해에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후원금 총액은 1억 5000만 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쓰게 되는 돈은 이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전직 보좌관 출신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한 경험이 있는 A 씨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의원 한 명이 일 년에 쓰는 돈이 실제론 5억~1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또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 수억 이상이 나가는 것이 사실이다. 공식 후원금만으로 이 돈을 마련하기란 만만치 않다. 지인 중 스폰서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출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고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선거를 치르면서 실제 법정선거비용 이상을 쓰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여의도 주변에선 ‘거의 모든 후보가 범법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의원들은 매해 재산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재산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도 쉽지 않다. 법정선거비용 이상의 재산이 줄어들 경우 의심을 사기 때문에 재산을 누락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지만 이도 여의치 않은 방법이다.
A 씨 역시 지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가족들에게 1억 원 가까운 돈을 빌렸지만 결국 아직까지도 갚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선거가 없는 해에도 국회의원들이 쓰는 돈은 적지 않은 액수다. 당협 사무실 운영비, 각종 행사 참가비, 경조사비 등 지역구 관리나 체면유지비 등 각종 명목으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 보좌관은 “(의원) 식대만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나 기업인, 기자 등 의정활동에 필요한 인맥관리를 위해서다. 지인들이 많은 국회의원의 경우 화환이나 난 등 경조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서울지역 한 의원의 경우 “일주일에 청첩장이 보통 2~3장씩 들어온다. 결혼 축의금만 일 년에 1000만 원 이상 낸다”고 말했다.
물론 여의도 정가에는 ‘깨끗한 정치’를 위해 최소한의 정치자금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지역구 활동을 줄이거나 사전 양해를 통해 지역 경조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 등을 정해놓고 이를 실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 국회의원들로서는 차기 선거가 가까워오거나 대민 접촉이 잦아질수록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공식 후원금을 초과해서 사용되는 돈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 일부 의원들이 이른바 ‘스폰서’를 갖고 있거나 찾게 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앞서의 A 씨는 “가장 좋은 경우가 믿을 만한 동창이나 친구다. 이들 중 돈 많은 사업가나 기업인이 있으면 한 해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도 받는다. ‘007 가방’은 실제로는 잘 안 쓰고 쇼핑백을 주로 사용한다. 또 일부 대가성 로비자금의 경우 예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수단 같지만 요즘도 박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007 가방에는 1만 원권이 꽉 채워 1억 원 정도 들어가는데 쇼핑백에는 2억 원까지 들어간다. 5만 원권 지폐가 나온 뒤로는 쇼핑백에 10억 원 가까이도 들어가서 돈을 주고받기가 더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돈을 전달받기 위해선 보통 해당 기업가의 사무실로 보좌관 등이 직접 찾아가거나 조용한 식당 같은 곳에서 은밀하게 따로 만난다고 한다. 간혹 의원실로 현찰을 들고 찾아오는 ‘무대포 로비형’도 있지만, 위험 부담 때문에 이런 돈을 선뜻 받는 일은 없다고 한다. 대신 사전에 로비 의사를 전해오는 경우 보좌관이 밖에서 따로 만나 사전에 조율하거나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는 것.
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법안이 입안되거나 발의되면 이해 당사자 양측으로부터 치열한 로비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경우 소액 후원금의 맹점을 이용한 ‘합법적 후원금’의 형태로 로비가 이뤄지기도 하고(아래기사 참조), 음성적으로 뭉텅이 돈 세례가 펼쳐지기도 한다는 것. 한때 ‘받아도 되는’ 후원금과 ‘받으면 안 되는’ 후원금을 구별하는 안목이 보좌관의 ‘덕목’ 중 하나로 꼽혔을 정도라는 얘기도 있다.
불법 후원금의 경우 계좌 추적이나 사용 내역 조회가 불가능하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의원이 아닌 보좌관의 친척 명의 등으로 계좌를 만들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앞서의 A 씨는 “보좌관의 처남이나 매형 등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추적이 어렵게 만든다”며 “정치인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으며 오랜 기간 함께 일해오고 있는 보좌관들 중엔 이러한 ‘돈거래’만을 담당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또 최근에도 ‘친인척 채용’으로 구설수에 오른 의원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친인척 채용은 단지 그들의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것. A 씨는 “단순히 일자리를 주기 위해 친인척을 쓰는 게 아니라 이러한 돈 관리를 맡기기 위해 채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덧붙였다.
모든 돈 거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돈을 받게 되면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게 되는 관계가 되고 만다. 한 유력 정치인의 측근 B 씨는 “주로 지역구나 고향 지역의 기업인들에게 후원을 받게 되다 보니 해당 기업의 사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영향력을 활용해 유무형의 도움을 주는 일이 적지 않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개인 소액후원제 허점
지인들 명의로 ‘후원금 쪼개기’
청목회 사건은 정치인에 대한 ‘소액후원제’가 불법적으로 악용된 사례다. 현행 정치자금법의 골자는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금지하는 것으로 기업과 이익단체의 돈이 정치권에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소액후원제’는 개인만이 가능하고 1년에 후원할 수 있는 최대 금액도 2000만 원으로 상한액이 정해져 있다. 또 한 의원에게 500만 원까지만 가능하며, 의원 한 명이 모금할 수 있는 한도도 1년에 1억 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 소액 후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인이 10만 원 이하의 후원금을 낼 경우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후원금 모금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한 국회의원에게 낸 후원금 액수가 한 번에 30만 원 이상, 연간 300만 원이 넘을 경우’에 한해 후원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신상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후원금을 여러 사람이 나눠 내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이 종종 이뤄지고 있다는 점.
우선 후원자가 이름과 연락처, 주소, 직업 등 신상 정보를 기재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규정이 없어 얼마든지 ‘거짓 기재’가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상당수 후원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전화번호나 직업을 사실과 다르게 적고 있다. 일부 후원자의 경우엔 친인척 명의까지 활용해 특정 의원에게 한 번에 수천만 원씩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
<일요신문>은 이러한 거짓 기재 의심이 가는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 사유를 물어본 바 있는데 당시 이들 중 상당수는 후원사실이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인들 명의로 ‘후원금 쪼개기’
청목회 사건은 정치인에 대한 ‘소액후원제’가 불법적으로 악용된 사례다. 현행 정치자금법의 골자는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금지하는 것으로 기업과 이익단체의 돈이 정치권에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소액후원제’는 개인만이 가능하고 1년에 후원할 수 있는 최대 금액도 2000만 원으로 상한액이 정해져 있다. 또 한 의원에게 500만 원까지만 가능하며, 의원 한 명이 모금할 수 있는 한도도 1년에 1억 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 소액 후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인이 10만 원 이하의 후원금을 낼 경우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후원금 모금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한 국회의원에게 낸 후원금 액수가 한 번에 30만 원 이상, 연간 300만 원이 넘을 경우’에 한해 후원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신상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후원금을 여러 사람이 나눠 내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이 종종 이뤄지고 있다는 점.
우선 후원자가 이름과 연락처, 주소, 직업 등 신상 정보를 기재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규정이 없어 얼마든지 ‘거짓 기재’가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상당수 후원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전화번호나 직업을 사실과 다르게 적고 있다. 일부 후원자의 경우엔 친인척 명의까지 활용해 특정 의원에게 한 번에 수천만 원씩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
<일요신문>은 이러한 거짓 기재 의심이 가는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 사유를 물어본 바 있는데 당시 이들 중 상당수는 후원사실이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