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게 더 강하게 ‘대권수능’ 올인
▲ 지난 18일 손학규 대표가 국회 대표실에서 ‘청와대 대포폰 지급’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100시간 시한부 농성에 들어갔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럼에도 대선 ‘본고사’를 앞둔 그로서는 이번 첫 수능에 ‘올인’을 해야 한다. 한때 10%를 상회했다가 반 토막이 나버린 지지율이 그를 시베리아 장외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 대권주자로서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아직 그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을 끌어올 수 있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장외투쟁을 접을 경우 차기를 꿈꾸는 그에게는 ‘그저 그런’ 주자로 낙인 찍히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첫 수능을 치르는 손학규 대표의 대도박 전략을 따라가 봤다.
최근 손학규 대표 진영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사정정국 전면전을 선포하긴 했지만 대외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지지율에 자꾸 신경을 쓰는 눈치다. 손 대표는 취임 직후 지지율이 한때 20%대까지 넘보며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취임 한 달이 조금 지나면서부터 반 토막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지지율은 11월 15일 발표한 리얼미터 조사에서 연속 4주 하락해 10.0%에 머물렀다. 같은 날 모노리서치 조사에서는 한 달여 사이에 5.5%포인트의 지지율이 빠져 7.1%로 주저앉았다.
이에 대해 손 대표 측에서는 “컨벤션 효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정국면”이라는 다소 안이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대 속에 취임을 했지만 그동안 보여준 게 하나도 없다. 이대로 가면 예전의 지지율 5%대 근처에서 맴돌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평가와는 대조적이다. 이에 손 대표 진영 내부적으로는 “지지율 하락 추세가 너무 빠르다. 조정국면이 너무 빨리 온 것 같아 솔직히 당혹스럽다”라며 걱정하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우리는 이런 조정 국면이 올 것을 대비해 장기 플랜으로 6개월 안에 20%대의 지지율 상승을 목표로 세워뒀다. 원래 계획한 상승 모멘텀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적극 대처였다. 예산안 정국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효율성과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따져 정무적인 효과를 기대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취임 초반부터 힘 한 번 못 쓰고 지지율이 하락 추세에 접어들어 손 대표 진영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최근의 강경 대응 선언도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적극적인 대처 성격이 강하다.
‘타지’에서 온 손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당을 장악한 것은 아니다. ‘당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부구조의 토대가 허약한 것도 그를 점점 극단적인 길로 내몰고 있다. 손 대표의 당내 지지 세력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위시한 TK의 친노세력과 이광재 강원도지사 그룹, 그리고 김부겸 의원 등 민주당의 비주류 그룹이 대부분이다. 친노세력의 대표 격인 이해찬 전 총리나 한명숙 전 총리는 그를 여전히 ‘굴러온 돌’로 여겨 대권 후보로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호남 적통세력을 자부하는 동교동계와의 연결고리가 마땅치 않고(권노갑 전 고문 측은 그를 지지하지만 박지원 원내대표와는 전략적 연대관계를 유지), 민주당 주류로서 당내에 자파 인사들을 두루 심어놓은 정세균 의원과 전북지역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정동영 의원 사이에서 쉽게 세력 확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손 대표의 연착륙을 가로막고 있다.
당의 핵심 자리를 자파 의원들로 채우려던 시도가 기존 세력의 저항에 밀려 흐지부지된 것도 손 대표의 리더십 파워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렇듯 손 대표의 연착륙이 기득권 세력에 밀려 어렵게 되면서 ‘대선은커녕 예선통과도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지지율이 하락추세에 접어들고 당내 조기정착도 어려움에 봉착하자 손 대표도 자구책 차원에서 적극대응 카드를 빼들 수밖에 없었다. 손 대표 측은 사정정국 조성에 대한 국민여론이 호의적이라는 부담과 온건 중도파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거리에 나서며 얻게 될 일관성의 결여라는 ‘주홍글씨’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명박 대통령과의 일전에 나선 셈이다.
이를 통해 그가 노리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그를 아직 민주당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관망하는 ‘당심’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돌려세울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점잖은 손 대표가 몸을 던져 당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 민주당의 강력한 ‘단결 대오’를 확인하고 당심도 그의 우산 아래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강한 손학규’ 이미지 메이킹이다. ‘이명박에 맞짱을 뜨는 정치인’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구축해야 반 이명박 세력의 아이콘이자 확실한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지지율 하락을 저지하는 지지대가 될 것이다. 손 대표 측에서는 “올 겨울이 지나면 손 대표는 대통령과 가장 강력하게 맞서는 야권의 대표주자가 돼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손 대표의 강공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취임 한 달여 만에 장외투쟁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은 대도박”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일단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과 ‘맞짱’ 뜨면 위상이 올라간다는 케케묵은 구식정치다”(조해진 의원)”, “대권후보 조급증에 사로잡혔다”(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며 손 대표를 맹폭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격은 사정정국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인 것을 등에 업고 야당의 구태의연한 장외투쟁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투 초반 손 대표의 행보가 가볍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 체제에서 두 차례 장외투쟁(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미디어법 정국)을 선택했다가 명분도 잃고 실리도 놓친 대표적인 정무대응 실패 경험을 맛봤다. 정 대표가 대표 재신임에 실패한 것도 ‘나갔으면 화끈하게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내부 비판과도 맥이 닿는다. ‘물 대표’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손 대표도 정 전 대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보다 여론은 더욱 야당에 호의적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손 대표는 ‘100시간 농성’이라는 시한부 투쟁을 택했다. 여론과 당심 추이를 봐가며 강경 대응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란 얘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손 대표로서는 이번 사정정국 대응에 실패할 경우 그 상처가 오래갈 것이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당내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도 있다. 거리로 나간다면 정세균 전 대표가 건지지 못한 실리를 어떻게 해서든 챙겨야 한다. 대포폰 특검을 관철시켜 권력실세 한두 명 정도는 잡는 선에서 결론이 나야 여론이 움직일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의 이번 ‘100시간 농성’은 지난 2006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밀어붙였던 ‘100일 민심 대장정’을 떠올리게 한다. ‘거사’를 앞두고 ‘100’이란 숫자에 건곤일척을 하는 셈이다. 야당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거리로 뛰쳐나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온건 중도파 이미지를 살려 새로운 야당 당수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지, 선택은 이제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