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수사 목숨 걸고 막는다?
현재 여권 내부 기류는 사찰 대상이었던 소장파 3인방이 공개적으로 재수사를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의원들은 청와대의 서슬에 눌려 감히 이들에게 동조를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워낙 청와대의 의지가 강경하기 때문이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청와대 주변에서 ‘대포폰을 덮기 위해서라면 대기업 총수 한 명 정도 집어넣을 각오가 돼 있다’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대포폰 수사에 관한 한 청와대가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특히 민정라인이 초강경 대응을 개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에서도 친이 직계 권성동 의원이 “차명폰에 대한 재수사와 특검 요구를 야당이 하는 데 불가하다. 야당이 제시한 자료는 검찰 수사기록에 있는 자료이고 변호인에게 공개돼 복사한 자료가 유출된 것이다. 마치 검찰이 이를 수사하지 않은 것처럼 호도를 하고 있다”라며 재수사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권의 의지 문제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견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월 8일 추가 수사결과를 설명하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수원에 있는 업체의 디가우저 장비를 이용, 김종익 씨 사찰 내용 등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4개의 기록을 완전히 삭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확인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 고위공직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알기로는 컴퓨터 비밀파일을 모두 지워도 파일 제목은 그대로 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목만큼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본문이 없다고 하더라도 제목을 통해서 사건의 실체를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 현 정권이 의지만 있다면 민간인 사찰 의혹은 충분히 진실 규명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1심 재판에서 이례적으로 1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된 데 대해서도 “피고 측은 사안에 따라 무죄가 내려질 것을 기대할 만큼 이번 민간인 사찰 재판은 편향된 것이었다. 하지만 실형을 선고했다.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 실형 선고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다. ‘이쯤에서 덮자’는 신호로 보이지만 통하지 않을 것이다. 민간인 사찰 의혹 배후는 의지를 가지고 수사하면 금방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무원 사회 일각에서는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전 지원관은 별로 안타까운 게 없지만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 등의 경우는 행시 출신에 15년 정도 공직 생활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상관 지시에 따른 것일 뿐인데 억울하게 걸려들었다. 실력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충복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되면 누가 떳떳하게 공무원을 하려고 하겠는가. 공무원들이 이번 사건 처리에 대해 매우 불만이 높다”라는 푸념도 나오고 있다.
대포폰 재수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 봇물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끝까지 틀어막아야 할 작은 구멍이다. 청와대 상층부에선 ‘이상득-박영준 라인’이 무너지면 국정 후반기 정국 운영과 여권 권력 갈등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강경 대응을 선언하면서 대포폰 특검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했기 때문에 무조건 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