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같이 잡고 당기고 밀고…
▲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일단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의 정국 대응법에는 큰 시각차가 없어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19일 하루 종일 ‘손학규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최근 손 대표가 “이명박 정부가 독재정권으로 가고 있다”면서 대여 전면투쟁을 선언한 데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대통령 모독”이라고 맞받아치자 “손 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이거나 한나라당 2중대장인 거냐”고 반문하며 엄호에 나선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손 대표는 야당의 책무인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일을 했다고 하면 비판과 견제를 하겠느냐”면서 “지금 손학규 대표가 100시간의 경고와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청와대는 알아야 한다”고 쏴붙였다.
박 원내대표는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 자리에서도 “손 대표가 강하게 나가니 좋더라”고 박수를 쳤다. 그는 손 대표가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겨냥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거론한 데 대해서도 “강기정 의원이 김 여사와 관련해서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근거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손 대표의 ‘100시간 농성’ 결정과 관련, “사전에 논의는 했지만 그 아이디어는 순전히 손 대표가 제시한 것”이라면서 “오늘 손 대표도 나에게 ‘다음 주에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서 ‘왜 다음 주에 할 고민을 가불해서 미리 하냐’고 답했다”고 전했다. 정국 대응을 놓고 손 대표와 수시로 논의하는 ‘찰떡 공조’는 물론, 그 대여전선의 최선봉에 손 대표가 나서는 데 대해 전혀 이견이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 안팎에선 두 사람의 관계를 ‘경쟁과 견제’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두 사람은 당 운영을 놓고 원천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고, 집단지도체제로 바뀐 당내 역할구도를 봐도 서로 ‘1인 독주’를 허용할 수 없는 처지다. 더욱이 차기 대권과 당권을 둘러싼 경쟁구도를 감안하면 그 관계를 단선적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차원에서 손 대표의 최근 대여 강공 드라이브를 대내적인 측면에서 ‘박지원 견제’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손 대표가 사실상 원내전략을 박 원내대표에게 일임하고 있었으나, 최근 초긴장의 정국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회 대응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측근들이 “손 대표가 원외라서 대표 연설을 할 수도 없고, 상임위 활동에서도 목소리를 못 낸다”고 아쉬움을 토로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대여 투쟁국면에서 언론의 초점이 박 원내대표에게 쏠려 있다보니, 이를 만회하려고 손 대표가 더 강하게 나가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여기에는 두 사람의 갈등을 드러냈던 한 장면이 ‘근거’로 등장한다. 지난 5일 청목회의 불법 후원금 의혹과 관련, 당 소속 의원들의 지역 후원회 사무실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따른 대응책 논의를 하기 위해 마련된 의원총회 자리였다. 박 원내대표는 의총을 시작하자마자 “현역 의원들만 남고 의원이 아닌 사람들은 다 나가 달라”고 했다. 그는 손 대표의 최측근이자 원외인 차영 대변인에게도 “나가달라”고 했다.
그러자 손 대표가 “원내대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박 원내대표는 “대표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시죠”라고 응수했고, 손 대표는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말씀이 되는 얘기를 하셔야죠”라고 맞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이 얼굴을 붉히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다른 의원들이 나서면서 차 대변인이 참석하는 것으로 작은 소동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원내대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원외’라는 단어를 상기시킨 박 원내대표의 의도를 놓고 분분한 해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당내에선 두 사람이 내년 5월까지는 ‘공동운명’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 운영의 측면에서 두 사람은 박 원내대표가 임기 1년을 채울 때까지는 민주당에 대해 내려지는 모든 외부 평가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민주당의 수권 가능성을 어느 정도 높여놓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오로지 두 사람의 몫이 된다는 얘기다.
박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기본적으로 견제와 긴장의 관계가 전제돼 있기는 하지만, 당 운영에 관한 한 파트너십을 발휘해야만 각자의 정치적 입지도 올라가는 국면”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처지이기 때문에 손 대표가 내년 연말쯤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 경우 박 원내대표가 뒤를 이어 당 대표에 도전하는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으나, 두 사람이 서로 갈등을 빚으면서 당 꼴을 망치면 당원들이 다시 두 사람에게 당권이든 대권이든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당내에서 ‘그래도 두 사람이 당을 꾸려가니 좀 되더라’는 얘기가 돌아야 두 사람에게도 정치적인 미래가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당권, 대권 이야기가 한가하게 여겨질 정도로 두 사람의 파트너십이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측근은 “국회에서도 손 대표가 아무런 격식을 따지지 않고 박 원내대표 방으로 찾아와서 현안을 논의하거나, 역으로 박 원내대표가 손 대표의 방을 찾는 일이 빈번하다”면서 “두 사람의 소통과 파트너십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거리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한담”이라고 일축했다.
정국의 중심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자이면서, 정치적 미래를 함께 도모해야 하는 파트너인 두 사람. 그들의 견제와 공조의 미학이 최근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것 같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