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번 합의에 대한 회원국들 간의 신뢰기반이 취약하다. 사실상 환율전쟁을 유발하고 국가 간 불신을 초래한 것은 미국의 경제정책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저가 수출 때문에 세계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위안화 절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중국은 세계경제 불균형의 책임은 오히려 미국경제의 부실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정면으로 맞섰다.
상황이 불안해지자 일본·유럽연합·러시아·브라질 등은 자국의 환율방어를 위해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 그러자 환율전쟁의 전운이 전 세계로 퍼졌다.
이런 상태에서 G20 국가들은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재무장관 회의에서 환율갈등의 해소를 위해서 격론을 벌인 끝에 3대 안에 합의했다. 시장결정적인 환율 제도를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하며,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후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곧바로 6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자 각국의 공격화살이 자연히 미국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달러화를 선제적으로 절하시키는 반칙행위로서 ‘경주합의’를 부정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G20 정상회의 결과로 나온 서울선언은 환율문제 해결을 차기 회의로 미루는 내용이 되고 말았다.
더욱 문제는 서울 G20 정상회의 합의대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각국의 경제구조와 경기 상황에 따라 경상수지의 의미가 다르다. 이것에 대해 일률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향후 환율전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서울 G20 정상회의 이후 미국과 중국의 경제사정이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다. 미국은 무역적자가 더 늘고 경기가 침체하여 실업난이 가중될 전망이다. 중국은 계속하여 수출확대와 고성장을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를 필두로 하여 경쟁적으로 통화를 발행하고 관세장벽을 높이는 환율전쟁이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결국 세계경제에 이미 2차 환율전쟁의 암운이 덮여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서울선언을 이끌어 낸 의장국인 만큼 합의안대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6월까지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환율전쟁에 대비하여 우리경제가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외국자본의 무분별한 유출입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방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물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첨단, 미래 산업의 발전으로 우리나라 상품의 경쟁력이 뛰어날 경우 외환시장이 어떻게 움직이건 수출이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원화가 절상되면 오히려 수출대금을 더 받아 경상수지 흑자를 늘이는 동시에 수입가격을 낮추어 물가를 안정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