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대표에게서 청탁을 받고 도움을 주는 대가로 40억여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사진은 천 회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1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
정치권에선 이번 천 회장 귀국이 여권 핵심부와의 교감 아래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부담’을 해소하고자 하는 청와대와 현 정권하에서 사법적 문제를 마무리하려는 천 회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 야권 등이 검찰의 부실수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천 회장 사건과 관련해 야당 주변에서 산업은행 고위 임원 출신인 A 씨 이름이 거론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A 씨를 대우조선해양과 관련된 여러 의혹의 실타래를 풀 ‘키맨’으로 보기도 한다. A 씨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천 회장 사건의 또 다른 속살을 들춰봤다.
지난 11월 28일 여의도에선 천신일 회장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말이 파다하게 퍼졌다. 천 회장 측 변호인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귀국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천 회장이 신변을 정리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 포착되면서 귀국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천 회장은 11월 25일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려대 교우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교우회 내부에서 천 회장에 대한 원성이 터져 나오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흘 뒤인 29일엔 미납 증여세 185억 원을 자녀들이 보유한 회사 주식 185만 주와 현금 20억 원으로 완납하기도 했다.
내년 초에 귀국할 것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천 회장이 이처럼 입장을 바꾼 것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문이란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안보 정국 속에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천 회장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주원 정치평론가는 “김정일이 천신일을 살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기를 조율하다가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외유 생활에 부담을 느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천 회장의 한 지인은 “가족들이 쇠약해진 천 회장에게 귀국을 종용한 것으로 안다. 천 회장 역시 개인적으로 힘들어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자 (귀국을)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천 회장은 그동안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여권 핵심부와의 ‘불화설’도 흘러 나왔다. 앞서의 천 회장 지인은 “(천 회장은) 자신이 희생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중나모여행 본사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한 후 여권 고위층에 당분간 귀국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청와대는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천 회장을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기를 원했지만 자칫 역효과가 날 수 있어 속만 끓였다고 한다.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우리에게 천 회장은 ‘계륵’과 같다. 버릴 수도, 그렇다고 같이할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한때 정권 최고 실세로 불렸던 천 회장이 ‘물귀신 작전’을 쓰면 이명박 정부도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최대한 달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귀띔했다.
결국 천 회장은 지난 11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천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서울 일원동에 위치한 삼성서울병원 VIP실에 입원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특혜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보통 피의자가 도피성 외유에서 돌아오면 공항에서 바로 소환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피의자라고 해서 무조건 데려오는 것은 아니다. 건강 등의 상태를 고려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그동안 검찰은 천 회장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소환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건강상 이유를 거론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친구라는 점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수사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천 회장은 지난 12월 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14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비교적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 회장은 간혹 휴식을 취한 것 말고는 적극적으로 검찰 수사에 응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이 시켜준 식사 역시 남김없이 먹었다는 후문이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천 회장은 이수우 대표로부터 받은 금품에 대해 “무상으로 기증받았거나 대가성이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이 대표가 천 회장 집을 직접 방문해 돈을 건넨 구체적 물증을 확보한 상태여서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천 회장 소환 조사는 형식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미 조사는 다 끝낸 상태였다. 구속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천 회장 수사를 바라보는 야권의 눈초리는 그리 곱지 못하다. 천 회장과 여권 핵심부가 사전에 ‘조율’을 끝냈고, 검찰 수사 역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민주당이 ‘권력형 게이트’로 주장해왔던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로비가 천신일 회장의 개인비리에 덮일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은 천 회장을 남 사장과 정권 실세들 간 ‘연결 고리’로 추정하고 있다. 천 회장은 ‘꼬리’일 뿐이고 다른 ‘몸통’이 있다는 것이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11월 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몸통’ 중 한 명으로 언급해 파문이 인 바 있다. 또한 민주당 일각에선 현 정권 실세인 L 장관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처럼 민주당은 이번 천 회장 귀국과 검찰 수사를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이른바 ‘대우조선해양팀’(가칭)을 구성, 몇몇 의혹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대우조선해양팀은 ‘저격수’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끌고 현역 의원 3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이들은 산업은행 고위 임원을 지냈던 A 씨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수우 대표로부터 청탁을 받은 천 회장이 같은 경남 출신으로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던 A 씨를 통해 산업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2006년 임천공업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120억 원대의 대출금을 출자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임천공업 계열사 합병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 동의를 받는 데도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2006년엔 천 회장이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산업은행에 입김을 불어넣을 힘도 없을 때다. 천 회장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 A 씨에게 임천공업을 부탁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은 A 씨가 남 사장 연임 로비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가 대우조선해양 최대주주(지분율 31.3%)인 산업은행의 고위 임원 출신이라는 점과 함께 천 회장과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팀’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에 관한 한 천 회장보다 힘을 더 미칠 수 있었던 사람은 A 씨다. (그가) 천 회장을 통해 정권 실세들과도 만났을 것으로 본다. 물론 A 씨가 몸통은 아니다. 우리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남 사장-A 씨-천 회장으로 이어지는 수상한 관계의 종착점이 누구냐이다”라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세중옛돌박물관 로비 장소 의혹
그에게 잘 보이면 한자리씩?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세중옛돌박물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통 석물 전시관이다. 천신일 회장이 1979년부터 다양한 돌들을 모아 2000년 7월 개관했다. 이 박물관 건립으로 천 회장은 지난 200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평소에도 천 회장은 세중옛돌박물관을 가장 큰 업적으로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 회장과 자식들이 이곳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세중옛돌박물관이 천 회장에 대한 로비 장소로 쓰였다는 의혹이 정치권과 재계를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다. 정권 초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로 여겨지던 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이 세중옛돌박물관을 방문했다는 진술들이 검찰 조사 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세중옛돌박물관을 찾았던 이들은 주로 재계와 금융권 인사들이었고, 간혹 정치권 관계자들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일요신문>은 실제로 2008년 2월 옛돌박물관에 찾아갔었다는 한 금융권 인사와 접촉해 당시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청탁을 하러 간 건 아니었고 인사 차원이었다. 다들 천 회장을 만난다기에 우리만 안 가면 손해를 볼 것 같아서 방문했었다”면서 “(당시 손님들은) 기업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이름은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도 의자에 앉아 천 회장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CEO로 오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그에게 잘 보이면 한자리씩?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세중옛돌박물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통 석물 전시관이다. 천신일 회장이 1979년부터 다양한 돌들을 모아 2000년 7월 개관했다. 이 박물관 건립으로 천 회장은 지난 200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평소에도 천 회장은 세중옛돌박물관을 가장 큰 업적으로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 회장과 자식들이 이곳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세중옛돌박물관이 천 회장에 대한 로비 장소로 쓰였다는 의혹이 정치권과 재계를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다. 정권 초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로 여겨지던 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이 세중옛돌박물관을 방문했다는 진술들이 검찰 조사 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세중옛돌박물관을 찾았던 이들은 주로 재계와 금융권 인사들이었고, 간혹 정치권 관계자들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일요신문>은 실제로 2008년 2월 옛돌박물관에 찾아갔었다는 한 금융권 인사와 접촉해 당시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청탁을 하러 간 건 아니었고 인사 차원이었다. 다들 천 회장을 만난다기에 우리만 안 가면 손해를 볼 것 같아서 방문했었다”면서 “(당시 손님들은) 기업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이름은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도 의자에 앉아 천 회장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CEO로 오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