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변화 먼저 읽고 전략 세우는 ‘역산 경영’…통신·모빌리티·에너지 결합 플랫폼 현실화 목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2017년 일본 도쿄에서 그룹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한국에서 손정의 회장은 성공한 재일교포 3세, IT 사업가,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의 구단주 정도로 알려졌을 뿐이다. 사실 손정의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투자가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가장 큰 주목을 투자가라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CEO(최고경영자)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아이폰의 아버지인 스티브 잡스, 전기차와 우주를 바라보는 일론 머스크와 견줘 손정의 회장의 화제성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그는 1998년 미국 ‘타임’ 사이버공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명, 1999년 미국 ‘비즈니스위크’지 인터넷 시대를 주도하는 25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공한 IT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다나카 미치아키의 저서 ‘손정의 투자 대전략’에서 그의 투자 전략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현재 릿쿄대학교 경영대학원 비즈니스 디자인 연구과 교수이자 주식회사 머징 포인트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기업 전략 및 마케팅 전략, 매니지먼트와 리더십이 그의 전공이다. 저자에 따르면 손정의 회장의 투자 전략 핵심은 가까운 미래에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테크놀로지 기업 집단을 일구는 것이다. 투자한 기업이 가져다 줄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이미 투자한 기업들과의 융합과 시너지 역시 주요 투자 기준이다. 다나카 교수는 크게 손정의 회장이 ‘통신’ ‘모빌리티’ ‘에너지’ 플랫폼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나카 미치아키의 저서 ‘손정의 투자 대전략’. 사진=서울문화사 제공
1981년 PC용 소프트웨어 유통업을 시작으로 일본 인터넷 시장의 혁신를 이끈 야후재팬 설립(1996년), 일본 전역의 브랜드밴드화를 견인한 야후-BB 개시(2001년), 일본 통신사업 진입의 발판이 된 일본텔레콤 인수(2004년), 모바일 통신사업 진출을 알린 보더폰 일본법인 인수(2006년), 미국 통신사업 진출을 알린 스트린트 인수(2013년)로 이어지는 소프트뱅크의 굵직한 도약 지점마다, 한 발 앞선 결정으로 결국 시장을 주도했다. 새로운 서비스는 모험일지라도 발 빠르게 선보이고 경쟁자가 자리잡은 사업에 진출할 때는 후발주자라는 한계를 인수를 통해 극복한다. 이른바 ‘타임머신 경영’이다.
‘손정의 투자 대전략’에 소개된 소프트뱅크 2012년 연간보고서 내 손정의 회장은 발언은 이 같은 경영 전략을 집약한 것이다. 손 회장은 “경쟁력의 원천은 시대의 변화를 먼저 읽어, 높은 목표를 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역산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한 뒤, 필요한 전략을 세우고 이뤄가는 ‘역산의 경영’에 있다”고 강조했다.
손정의 회장에 대한 평가에서 쉽게 놓치는 것이 있다. 그는 탁월한 금융재무전략가다. 소프트뱅크그룹의 부채 규모를 두고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덩치가 큰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최적의 자금 조달 방법을 찾아내는 그의 능력은 소프트뱅크 성장의 최대 동력 중 하나다.
비전펀드를 통한 손정의 회장의 전략은 ‘군전략’으로 요약된다. 다나카 교수는 이에 대해 시장 1위 사업자들이 분산된 형태로 포진해 있고 자기증식과 자기진화를 통해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분석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재벌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투자는 시장의 1등 기업에 집중된다. 다만 ‘기업을 지배하는 형태가 아닌 투자’라는 원칙은 지킨다. 유니콘 기업에 집중 투자해 고성장을 이끌고 그 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매각을 통해 이익을 챙긴다. 알리바바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어떤 경영자도 보여주지 못했던 방식이다. 이것이 소프트뱅크그룹을 단순 투자회사가 아닌 전략적 투자회사로 규정짓는 바탕이라고 다나카 교수는 평가했다. 통신 부문에서는 야후와 라인의 경영통합, 모빌리티에서는 우버와 그랩 등 차량공유업체 투자와 도요타, GM 등과의 협력이 대표적인 투자 사례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클린 에너지 분야 투자가 꼽힌다.
손정의 회장은 통신·5G·비욘드 캐리어가 속한 통신 산업, 차량공유·자율주행 등이 속한 모빌리티 산업, 클린 에너지·생태계·아시아 그리드 구상이 속한 에너지 산업이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하나의 구독 서비스로 통합되는 새로운 산업 플랫폼을 현실화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AI)이다. 기존 군전략에서 한 발 더아간 AI 군전략이 최근 손정의 회장이 보여준 방향성이다. AI는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을 바꿀 전망이다. AI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가격을 결정하고 즉각적인 서비스를 가능케 한다. 그의 투자가 진행된 곳은 AI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기업이다. 이와 관련, 손정의 회장은 “AI 혁명의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나카 교수는 손정의 회장의 ‘허풍’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풍은 다른 표현으로는 비전이다. 2010년 발표한 ‘소프트뱅크 새로운 30년 비전’에는 2040년까지 시가총액을 200조 엔으로 끌어올려 세계 톱10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9년 기준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은 10조 엔, 세계 100위권이다. 단순히 시총만 놓고 보면 20배 이상 성장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실현 가능한 것일까. 힌트는 있다. 손정의 회장이 예상하는 미래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그는 분명 좀 더 멀리 보고, 한 발 앞서나가고 있다.
‘인간 손정의’는? 대학 시절 번역장치 개발 일화도 손정의 회장은 1957년 일본 규슈의 사가현 도수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넘어왔다. 가난과 재일조선인이라는 차별에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파친코 사업 등을 통해 재산을 모으면서 손정의 회장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1974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나선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쳤다. 대학생 시절, 일본어를 입력하면 영어로 번역해 주는 번역 장치를 개발해 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팔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981년 일본으로 귀국한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 초기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앞에 두고 “매출을 한 모, 두 모 세듯이 1조, 2조를 세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허풍처럼 들렸겠지만 그는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개인적인 시련도 있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마자 만성 B형 간염이 발병했다. 당시에는 별다를 치료방법이 없었다. 그 시기, 손정의 회장은 3000여 권의 책을 읽는다. 이 당시 만들어낸 것이 손자병법과 란체스터 법칙을 근거로 투자와 실행의 원칙을 정리한 ‘손의 제곱 병법’이다. 이 병법에는 70%의 가능성만 있으면 투자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성공신화만을 쓴 것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위워크에 대한 대규모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1990년 국적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6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밝혔지만 뜻을 바꿔 여전히 현장을 뛰고 있다. |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