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주도한 대약진운동에 반기를 든 것으로 생각한 마오는 이 편지를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부주석 류사오치(劉少奇)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두 사람은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이 자칫 마오의 역린(逆鱗)을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편지의 저의에 대해서만 한마디씩 했다. 저우 총리는 “이 편지에는 남을 공격하여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군요”라고 대답했고, 류 부주석은 “야심이 보인다”고 했다. 마오는 자신에게 보낸 이 사신형식의 의견서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공개한 뒤 펑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아 숙청했다.
이 자리에서 새삼 중국의 권력투쟁, 그것도 50여 년 전의 과거사를 들먹이는 것은 우리 정치권에도 남을 비판하여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키우고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초·재선의 소장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공격하고 정권의 실세를 비판하는 것으로 정치적 비중을 키우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행이다. 장차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대통령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이명박 정권의 몇몇 ‘창업공신’들이 청와대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것도 자신의 당내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한 전략인 경우가 많다.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대여(對與) 강경투쟁을 주도하는 것은 자신만이 현직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굴러온 전향자(轉向者)’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고 취약한 당내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이 있다. 대통령을 향한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독재의 길로 들어선 이명박 대통령과 그 형제들”이니 “노무현 대통령을 검찰 권력으로 죽일 때 그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손이 됐다”는 등 독설에 가까운 비판도 바로 그러한 속셈에서 나온 정치적 수사(修辭)라는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또 봉하 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산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가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을 때 국가원수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결례를 범한 사실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지난날을 참회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지난날 참여정부 출신들의 당심(黨心)이 쉽게 돌아설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당원들 중 상당수는 손 대표가 한나라당 시절,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경포대)’이니 ‘산 송장’, ‘무능한 진보’, ‘새로운 정치의 극복대상’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던졌던 비수(匕首)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손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나 과거를 참회하는 발언도 차기 대선후보가 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의 하나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정치인의 세 치 혀 밑에 숨은 비수(匕首)는 정적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된다는 교훈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