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술 부린 ‘만리장성’ 발 아래 눕혔다
▲ 11월 26일 중국 광저우 체스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바둑 단체전 결승에서 동반 우승해 금메달을 획득한 남녀바둑대표팀이 시상식 후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금메달 싹쓸이는 뜻밖이었다. 하나면 보통, 두 개면 대성공. 목표는 두 개였다. 하나도 못 따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들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하나도 못 따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남자 단체전에 중국은 구리와 콩지에가 있었다. 구리와 콩지에는 이창호 이세돌과 호각. 최근의 성적은 오히려 반걸음쯤 앞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리, 콩지에 뒤에는 또 한국 선수에 강한 씨에허가 있었다.
중국이 확실히 상승세였던 것에 비해 우리팀, 강동윤과 박정환은 미지수였고, 대들보 이창호는 결혼을 전후해 뭔가 좀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3 대 2냐, 2 대 3이냐를 놓고 계속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중국에는 루이나이웨이가 있었다. 루이의 1승을 전제한다면 나머지 둘이 다 이겨야 한다. 2 대 1이냐, 1 대 2냐. 혼성복식은 대만이 변수였다. 장쉬-씨에민은 객관적 전력에서 한-중에 뒤질 것이 없었고, 저우쥔쉰-헤이쟈쟈는 다크호스가 될 것 같았다. 혼성복식은 3파전, 4파전일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염려는 기우였던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의 올림픽. 한국 바둑이 올림픽 첫 패자의 영광을 안았다. 1989년 세계 최초의 프로바둑 국제대회인 제1회 잉창치배에서 조훈현 9단이 단기필마로 출전해 초대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20년 전 조훈현 9단 때와는 달리 외롭지는 않았다. 이창호 이세돌 조한승 최철한 강동윤 박정환과 조혜연 이민진 김윤영 이슬아 10명이 역할을 분담했다. 아니, 양재호 감독과 김승준, 윤성현 코치가 있었으니 13명이었다.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격려하면서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완벽에 가까운 힘과 솜씨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박정환을 보면 박태환이 연상된다. 이슬아를 보면 정다래가 연상된다.
모두들 잘 싸웠던 중에도 박정환이 돋보인다. 단체전과 복식전 전 경기를 소화하며 우리 상승세의 견인차 역할을 해 주었다. 팀의 막내였지만 역할은 리더였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도 마지막 대국에서 구리를 잡아 준 이창호를 보면 콧날이 시큰하다. 이겨야 할 판은 이겨주는 이창호. 그에 대한 팬들의 신뢰는 바다 같고 태산 같지만 본인의 짐이 너무 무겁다.
최철한 강동윤 조한승도 저렇게 잘 싸워줄 줄은 미처 몰랐다. 이들은 개인전 없이 단체전만으로 대회를 만든 중국의 전략을 부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선수들은 연금을 받게 되었고 열일곱 박정환은 군대를 면제받으며 현재 군복무 중인 조한승은 바로 제대하게 된다. 군대를 안 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여자팀은 네 사람의 공이 똑같지만 굳이 보너스를 준다면 이민진과 이슬아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관장의 여인’ 이민진은 루이를 잡았다. 중반 이후 오랫동안 불리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버티면서 한집반 역전승을 일구었다. 스타는 결정타 한 방인 것. 막내 이슬아는 깜찍한 외모로 빛을 발하면서 반외에서 먼저 스타가 되었고 박정환과 함께 복식조에서 우승하면서 우리 팀에게 첫 번째 금메달을 안겨 주었다. 선수들의 긴장을 녹여 준 분위기 메이커, 행운을 부르는 마스코트였다.
우리 바둑이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에 시달리면서 좀 가라앉았던 바둑계의 분위기가 일신되면서 바둑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다시 한 번 크게 높아질 것이고 정부나 대한체육회에서도 이제는 바둑을 달리 보아야 할 것이니 지원도 대폭 증강될 것이며, 그러면 어린이 청소년 바둑도 예전같이 활기를 띨 것”이라면서 바둑계는 벌써 들떠있다.
또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참가는 대한바둑협회 소관이고 선수는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이니 지금 좀 뜨악한 사이가 되어있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관계도 상호 우호-협조 체제로 개선될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짚고 넘어갈 사안도 있다.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좀 높여야 한다는 것. 우리의 실력, 위상에 걸맞은, 보다 당당한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 겸손이 능사는 아니다. 중국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대회의 대국이 실시간 중계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부 중국 심판이 보인 비상식 행위는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룰과 용어의 정립과 세계적 통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또 하나, 거듭 말하지만 이제는 인천 아시안게임이다. 그리고 그 다음 인도 아시안게임이다. 바둑이 아시안게임에서 자리를 잡느냐, 못 잡느냐. 계속 경기를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이번 한 번으로 그치고 마느냐. 생각하면 아슬아슬하다.
북한이 참가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북한 바둑을 도왔으면 좋겠다. 바둑이 정치색을 띠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둑이 세상의 평화와 세상 사람들의 친선에 기여하는 것은 바랄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오늘 금메달 세 개의 현장에서 새삼 돌이켜보면 한국 바둑에서는 주술의 힘이 느껴진다. 후광처럼 그런 기운이 보인다. 어떤 운명의 그늘 같은 것. 조치훈의 바둑 인생, 승부 역정은 상식을 초월한 괴이함의 연속이었다.
조훈현의 잉창치배 우승은 몇 번을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잉창치배 제1회부터 4회까지 네 번을 거푸,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차례로 차지한 것도 ‘믿기 어려운 우연’이었다. 1997년 서봉수의 진로배 9연승은 명실상부 전무후무, 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리고 오늘 유례없는 몰상식의 시대, 웃을 일 없는 상황에서 등장한 사상 최초의 바둑 아시안게임 전 종목 우승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바둑 60년은 뭔가 주술의 힘이 작용한 역사다. 우리 바둑의 힘과 공로가 이렇게 큰데, 승리의 여신이 앞으로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할지.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