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서 통기타 레슨강사까지’
‘버스퀸 틸다’ 전민수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심중석 제공)
[대구=일요신문] “언제나 가정과 직장에만 빠져살면서 정작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내 인생에서 확 빠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죠. 저는 그게 ‘통기타’였습니다.”
여성, 그것도 50대 여성이 홀로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길거리에 스피커와 마이크 스탠드를 설치할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쑥스럽다는 그녀. 하지만 통기타만 들면 돌변한다. 그 순간만큼은 ‘버스퀸(BusQueen) 틸다’가 된다. 통기타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전민수씨를 ‘일요신문’이 만났다.
“아이들 키우다가 회사에 다니게 됐는데 거기 여름캠프에서 통기타 치면서 몇 곡 부른 것이 첫 계기였던 것 같아요. 당시 동료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회사에서 기타를 가르치게 됐죠.”
전민수씨는 남편과 함께 자녀들을 키우는 전형적인 주부였다. 그녀가 통기타를 접한 것은 2011년. 우연히 문화센터에서 기타를 배운 그녀는 이후 틈틈이 골방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독학했다.
‘버스퀸 틸다’ 전민수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심중석 제공)
“몸이 안 좋아서 수술을 크게 한 적이 있었어요. 한번 아파보니까 ‘인생 별거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오롯이 내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한 것 같아요.”
아마추어 동호인으로 음악회를 1년간 이어간 그녀는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통기타 레슨을 하게 됐다. 취미가 직업이 돼버린 것이다. 덕분에 기타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됐다고 한다. 출장 레슨만 하던 그녀는 2019년 12월 레슨실까지 마련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처음엔 코로나19로 월세만 그냥 나갔죠. 금전적인 타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쁘게 살다가 가만히 있는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19에 지친 분들이 하나둘씩 일대일로 배우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레슨이 다시 시작됐어요. 물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요.”
현재 그녀는 개인레슨은 물론 한샘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기타수업도 하고 있다. 일주일 2~3회씩 동아리와 방과후로 운영하는 기타수업이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특히 기타의 운지법과 손놀림은 아이들의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통기타는 어느 정도 악력이 필요해서 여성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겐 좋은 점이 더 많았어요. 우선 학부모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기타 레슨으로 뛰는 강사가 대부분 젊은층이고 50대 여성은 거의 없는 것도 유리했던 것 같아요.”
그녀의 딸도 기타를 수준급으로 친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수행평가로 기타를 선택한 것도 엄마의 영향일 것이다. 현재 대학교에서도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 활약을 하고 있다.
6인조 혼성밴드 ‘느티나무’. (사진=심중석 제공)
코로나19 이후로 공연은 거의 못하고 있지만 지난해 가을 6인조 혼성밴드 ‘느티나무’를 결성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잠시 머물러 듣고 갈 수 있는 휴식같은 밴드’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대부분 버스킹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강우혁, 김상철, 전민수, 박미정, 정다정, 임주완 씨로 구성됐다. 솔로 라이브가 가능한 실력파 6명이 모여 7080 대중적인 곡부터 다양한 선곡과 레파토리를 선보여 특히 인기가 높다. 이들은 지난달 13일 첫번째 정기공연에 이어 5월1일 김광석다시그리길에서 두번째 정기공연을 준비중이다.
영화 레옹을 좋아해서 ‘마틸다’에 ‘마’를 뺀 ‘틸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중 인 전민수씨. 지난해 6월 ‘나를 사랑한 버스커’ 오프닝 무대에 선 모습 . (사진=심중석 제공)
“특히 지난해 6월 김광석길 콘서트홀에서 ‘나를 사랑한 버스커’ 오프닝 무대에 선 것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코로나19에도 마스크끼고 거리두기하면서 즐긴게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겠죠.”
카페에서 매주 라이브를 하면서 무대 감각을 키운 그녀는 이제 아줌마에서 통기타 강사이자 버스커로 우뚝섰다. 현재는 카페 라이브는 물론 플리마켓이나 타지로 버스킹을 나간다. MR없이 오로지 통기타 하나로만 무대를 만드는 그녀는 동호인 사이에서도 인기인이다.
“통기타는 일단 아무데서나 칠 수 있어요. 특히 MR처럼 꽉 채워지지 않는 통의 울림은 가슴을 뛰게 만들죠. 약간 덜 채워진 빈 소리에 내 목소리를 얹어 채우는 것, 그것이 제일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녀의 기타 열정에 자녀들은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한다. “제가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물론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공연이나 밴드 때문에 나갈 일이 많으니까요.”
코로나19 시대에도 그녀는 바쁘다. “30~40대는 먹고 살기 바쁜 것 같아요. 특히 여성은 아이 낳고 갱년기에, 우울증에, 이후에는 알바 하나 하기도 힘들죠. 40대 중반까진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일만 할수는 없고 언젠가는 은퇴하잖아요. ‘반쯤 미칠 수 있는’ 취미 하나는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전민수씨는 이러한 환경을 만든 자신과 주변인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사실 저는 행운아예요. 100세 인생. 이러한 끼를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신 사람들에게 감사하죠. 물론 그 환경을 만들어간 스스로도 뿌듯하고요. 가족과 친구 그리고 기타 레슨 받겠다고 와주시는 수강생분까지 모두 감사하고 늘 행복하세요.”
오늘도 그녀는 곁에 통기타를 끼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