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방…○○○ 바지…그건 얼마짜리 광고니?
지난 4월부터 시행된 간접광고(PPL)로 인해 방송가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그 방향이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그동안 불법적으로 이뤄져온 간접광고를 합법적인 틀 안에서 육성하기 위해 국회에서 통과된 방송법 개정안이 오히려 간접광고를 더욱 음성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착용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간접광고까지 등장해 이젠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아닌 스타의 주머니만 채워주고 있다.
지난 4월 SBS <인기가요>를 시작으로 문을 연 합법적인 간접광고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간접광고 수입을 올린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벌써 여러 편의 드라마 제목이 머릿속을 오간다. 해외 명품 브랜드가 등장했던 드라마가 여러 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간접광고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측이 내놓은 정답은 예상을 완벽하게 깨버렸다.
코바코 관계자는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누계 간접광고 수익을 가장 많이 올린 프로그램은 MBC <섹션TV 연예통신>이고 2위는 SBS <인기가요>”라며 “이 두 프로그램이 그나마 조금 수입을 올린 편이고 <무한도전>을 비롯한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도 간접광고를 수주하긴 했지만 순위를 매기기 애매할 정도로 저조한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예상 외로 간접광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로 이뤄졌을 뿐 가장 큰 시장이던 드라마에선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지난해까지 암암리에 이뤄져 온 간접광고의 중심이 드라마였던 데 반해 합법화된 뒤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위주로 간접광고 시장이 재편됐다는 해석이다.
더욱 놀라운 대목은 방송 3사를 합산한 간접광고 수주 누계액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간접광고 합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에선 간접광고 시장을 무려 1600억 원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김국진 미래미디어연구소장이 작성한 코바코 연구용역 보고서 ‘매체환경 변화에 따른 광고시장 전망’에도 간접광고가 현재 500억 원대에 이르고 2013년까지 1184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나와 있다. 코바코 역시 간접광고 시장 규모가 500억 원대라 밝히며 시행 첫 해인 탓에 2010년 시장 규모는 300억 원대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11월 누계 방송 3사 간접광고 수주액은 40여억 원에 불과했다. 시행 첫 해라는 점을 감안할지라도 너무 적은 금액이다. 그렇다면 500억 원대이던 간접광고 시장이 합법화하면서 오히려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얘기일까.
그렇다고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간접광고가 지난해 대비 10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 까닭은 드라마를 중심으로 여전히 합법의 틀이 아닌 음지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간접광고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SBS 드라마 <부자의 탄생>은 간접광고가 허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간접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 제재 조치를 받았고, 케이블 TV 온스타일에서 방송됐던 <티아라닷컴>은 간접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방송 중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코바코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적인 간접광고에 대한 감시와 징계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은 여전히 코바코를 통하지 않고 간접광고를 하고 있다. 드라마제작사협회 측은 “드라마의 80%가량을 외주제작사가 제작하는 데 반해 간접광고 영업권을 지상파 방송사로 국한한 방송법 개정안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면서 “코바코를 통하는 합법적인 간접광고는 광고액 등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얘기한다.
그동안 간접 광고는 공중파 방송사에서 외주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가 실제 제작비보다 턱없이 모자란 터라 외주제작사에서 부족한 제작비 마련을 위해 시행해 왔다. 그런데 합법화되긴 했지만 코바코를 통한 현재 시스템을 통하면 광고 수익은 외주제작사가 아닌 공중파 방송사의 몫이 된다. 따라서 드라마를 실제 제작하는 외주제작사에선 합법적인 간접광고를 포기하고 감시와 징계를 감수해가며 음성적인 간접광고를 강행하고 있다. 결국 코바코를 통해 40억 원대의 간접광고 합법 시장이 형성된 이면에선 그 10배 규모의 음성적인 시장이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음성적인 시장 역시 크게 요동치고 있다. ‘착용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간접광고 방식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 ‘착용비’란 업체와 스타가 직거래하는 방식의 간접광고다. 예를 들어 한 의류브랜드가 홍보를 위해 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배우에게 의상을 협찬해준 뒤 해당 의상이 방송에 노출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바로 착용비다. 과거에도 착용비는 어느 정도 존재했지만 패셔니스타로 분류되는 일부 톱스타들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착용비가 연예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드라마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외주제작사와 간접광고 계약을 체결할지라도 이제는 코바코를 통하지 않으면 명백한 불법인 터라 로고 노출 등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졌다”라며 “어차피 로고가 노출되지 않는다면 주연급 스타들에게 착용비 형식으로 지급하는 게 광고비도 낮아지고 스타와의 관계 개선에도 좋다고 생각하는 업체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착용비는 상의, 바지, 가방 등으로 세분화해 스타들이 드라마 등에 해당 업체에서 협찬 받은 의상을 입고 나올 때마다 금액이 계산돼 스타에게 지급된다. 한 유명 스타일리스트는 “착용비는 업체들이 의상을 협찬해준 뒤 해당 스타가 드라마에서 그 의상을 입고 출연할 때마다 어느 정도의 광고비를 지급해주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요즘에는 의상 협찬을 받으며 업체들과 친분이 있는 스타일리스트들이 광고 영업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방송에서 제품이 부각되거나 로고가 노출되는 효과는 포기한 채 ‘유명 스타가 즐겨 입는 의상’이라는 광고 효과를 노리는 간접광고인 셈. 그러는 사이 여자 연예인 A가 한 드라마에서 꾸준히 같은 업체 가방을 들고 나와 해당 업체에서 1억여 원의 착용비를 받았다고 알려지는 등 스타들의 주머니만 채워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드라마 등에 등장하는 간접광고는 방송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결국 국회를 통해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간접광고는 합법화됐지만 결과적으론 음성화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는 사이 간접광고로 부족한 제작비를 채워오던 외주제작사들은 더욱 힘겨워졌고, 스타들만 가만히 앉아 돈 버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