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뛰던 고참도 겔겔대면 ‘지못미’
▲ LG트윈스의 서열 파괴 연봉제 도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 훈련 중인 LG 선수들. 사진제공=LG트윈스 |
지난 11월 말.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훈련 중이던 LG 선수단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선수가 훈련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몇몇 선수는 아예 “더는 팀 훈련에 동참하지 않겠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며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이들이 훈련 거부와 조기 귀국의 강수를 빼든 건 연봉 협상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단이 새로 도입한 연봉 고과 산정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까닭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올 시즌 LG는 선수단에 수차례에 걸쳐 새로운 방식으로 연봉 고과 산정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른바 ‘신 연봉제’로 불리는 LG의 새로운 연봉 고과 산정법은 개인 성적과 팀 승리 공헌도를 5 대 5 비율로 섞어 고과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한 시즌 동안 팀 승리에 이바지한 선수에겐 파격적인 인상을 보장하되 기여도가 적은 선수는 연봉을 대폭 깎겠다는 게 신연봉제의 기본 뼈대다.
시즌 전 LG 이영환 단장은 신연봉제 도입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까지 어린 선수는 아무리 잘해도 연봉 인상에 제한이 있었다. 역으로 선참 선수는 아무리 부진해도 과거의 기여도를 고려해 큰 폭으로 (연봉을) 깎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라면 연차와 과거 기여도가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구단도 잘하면 신인이라도 연봉을 대폭 올려주고, 못하면 베테랑이라도 크게 깎아야 한다. 그러나 LG뿐만 아니라 어느 구단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올 시즌 우리가 도입한 신연봉제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을 수정하고, 더욱 프로다운 길을 가자는 뜻이다.”
야구계는 “프로야구 출범 이래 최초의 연공서열 파괴”라며 LG의 신연봉제를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모 야구해설가는 “과거의 이름값과 영광을 배경 삼아 아직도 연봉협상에서 ‘자존심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베테랑들이 있다”며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후진적 프로리그에서 탈피하려면 LG의 신연봉제가 반드시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해설가는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연봉산정방식이 허술하면 선수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할 수 없다”며 “신연봉제도 도입 초반, LG가 만만치 않은 역풍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이 적중했다. 구단이 충분한 사전예고를 했음에도 LG 선수들은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불만을 털어놨다. 특히나 신연봉제의 형평성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모 선참 선수는 한 예로 고졸 2년 차인 오지환의 연봉을 들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지환이 구단으로부터 제시받은 내년 연봉이 1억 원이다. 올 시즌 (오)지환이 연봉이 얼마였는지 아나? 2400만 원이었다. 1억 원으로 오른다면 무려 313% 인상이다. 한화 류현진의 400%에 이어 프로야구 역대 두 번째 최고 인상률이자, 고졸 3년차 야수로는 첫 억대 연봉이라고 한다. 신연봉제가 ‘개인 성적+팀 기여도’임을 고려할 때 올 시즌 지환이의 성적 타율 2할4푼1리, 13홈런, 61타점이 과연 313% 인상 근거로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여기다 지환이의 팀 승리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올 시즌 27개나 되는 지환이의 실책 때문에 진 경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나? 최소 7경기 이상이다. 지환이의 실책 때문에 잘 던지고도 승수와 세이브를 챙기지 못한 선발투수와 마무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신연봉제는 공정성과 근거가 빈약한 연봉산정방식이다.”
LG 선수들은 313%나 연봉이 뛴 오지환과는 반대로 정재복(1억 원→4000만 원), 심수창(7000만 원→3000만 원), 경헌호(6500만 원→3100만 원) 등 50% 이상 삭감 통보를 받은 선수들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혹여 자신에게 연봉 삭감 불똥이 튀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다행히 LG 신연봉제는 서서히 정착하는 분위기다. LG 김진철 운영팀장은 “연봉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성과에 따라 큰 폭의 연봉상승도 가능하단 희망을 품은 까닭인지 선수들의 훈련 열의가 FA(자유계약선수)를 눈앞에 둔 선수들만큼이나 진지하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LG가 신연봉제를 도입하기 전까지 한국프로야구 연봉 협상은 말만 ‘협상’이지 구단의 일방적 통보와 선수들의 읍소만 있을 뿐이었다. 모 구단 사장이 야구단에 부임하자마자 “대기업이 모그룹인 야구단의 연봉 협상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며 혀를 찬 건 유명한 일화다.
물론, 협상 테이블에 자료와 데이터가 준비되긴 한다. 구단은 선수 개인별로 정리된 누적 고과 자료와 각종 데이터를 출력해 협상 때 선수에게 내보이며 적정 연봉을 제시한다. 구단 제시 연봉이 최대한 객관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일부 선수도 자신이 직접 데이터를 출력해 구단 측에 제시하곤 한다.
지방팀의 A 선수는 자신이 준비한 자료와 구단 측의 자료를 비교분석하며 구단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해 운영팀장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봉협상은 10분을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협상 테이블 위에 자료와 데이터가 넘쳐도 결국, 마무리는 “너니까 특별히 얼마를 더 챙겨주겠다” “다른 선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깎였을 것”이라는 구단의 회유와 엄포에 선수가 마지못해 계약서에 사인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3번 이상 협상이 진행되면 전체적인 훈련 일정에도 차질이 생겨 귀찮은 심정에서라도 구단 측의 의사를 따르게 된다”며 “구단이 제시한 금액에 수긍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선수는 “감독이 ‘넌 왜 그렇게 연봉협상이 늦어?’라고 한마디 하면 주전 경쟁에서 뒤처질까 서둘러 계약할 수밖에 없다”며 “구단 고위관계자가 ‘연봉협상이 늦은 선수는 스프링캠프에 데려가지 않겠다’라고 압력을 넣는 건 일상”이라고 털어놨다.
현장의 연봉협상 책임자들은 “우리도 구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며 “지나치게 연봉을 많이 주면 구단에서, 적게 주면 선수에게 욕을 먹는 괴로운 역할”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국내 구단 가운데 단장의 간섭 없이 연봉 협상 책임자가 전체 연봉 협상을 주도하는 건 삼성라이온즈뿐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5분짜리 연봉협상’ 대안은 무엇
선수협 “대리인제도 필요” 구단측 “아직은 시기상조”
“올 시즌 성적이 지난해만 못하다.”(구단) “팀을 위해 연투하다가 부상으로 1달 정도 쉬지 않았습니까?”(선수) “다른 선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1000만 원 삭감 선에서 끝내자.”(구단) “베테랑의 자존심을 세워주십시오.”(선수) “나는 그러고 싶은데 윗분들이 난리다. 1000만 원 삭감 받아들이면 내년엔 꼭 올려줄게.”(구단) “됐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당분간 개인 훈련할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자꾸 그러면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뺄 거다.”(구단) “….”(선수)
지난해 모 선수의 실제 연봉협상 과정이다. 구단 관계자와 이 선수가 마주한 시간은 7분 남짓. 이 가운데 5분은 날씨, 가족 안부, 근황 등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데 소비했다. 정작 연봉 협상과 관련한 대화는 단 2분이었다.
이렇듯 연봉 협상 시간이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선수와 구단의 계약은 당사자들이 1 대 1로 만나 협상하는 대면계약의 형태지만, 선수 대부분이 협상의 노하우가 없을 뿐 아니라 세부적인 법률 조항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권시형 사무총장은 “구단 프런트야 협상의 달인이지만, 선수들은 운동만 하는 통에 협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며 “복잡한 데이터와 온갖 자료를 분석해 자신의 적정 연봉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어도 선수들이 그럴 만한 시간적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권 총장은 이러한 선수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선수를 대신해 연봉 협상을 주도할 대리인(에이전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수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구단과 연봉 협상을 진행하는 대리인제도는 미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선 평범한 제도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는 KBO 야구규약 30조에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한다’는 문구를 명시했음에도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대리인제도가 자리 잡으면 미국, 일본처럼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할 것이란 구단들의 우려가 시행이 지체시키는 가장 큰 이유다. 전체 프로야구선수 가운데 연봉 7000만 원 이하 선수가 72.7%인 한국프로야구에서 과연 대리인제도가 꼭 필요하냐는 의문도 한몫했다.
하지만 선수협은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고, 자신의 몸값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대리인제도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수협은 내년부터 KBO와 구단이 반대해도 대리인제도를 강행할 방침이다. 반면 구단은 대리인제도가 “시기상조”라며 어떤 대리인과도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자세다.
야구선수도 빈익빈 부익부
알고보면 무늬만 화려?
선수협이 공개한 2010시즌 프로야구 등록선수 전체연봉은 358억 9005만 원으로 지난해 347억 9700만 원보다 10억 9305만 원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8개 구단 가운데 SK가 58억 1300만 원으로 팀 연봉총액이 가장 높았고, 한화가 28억 2200만 원으로 가장 낮았다. 특히나 한화는 전 해보다 총 연봉이 12억 8200만 원 줄어 연봉 감소율이 -31.2%나 됐다. 김태균(지바롯데), 이범호(소프트뱅크)의 국외진출로 고연봉자가 팀을 떠났지만 별다른 전력보강을 하지 않아 총 연봉이 눈에 띄게 준 것으로 보인다.
KBO에 등록된 458명의 선수 가운데 30.6%에 해당하는 140명이 1군 최저연봉인 연봉 24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확인됐다. 7000만 원 이하는 전체 선수 가운데 무려 72.7%로 프로야구선수가 생각보다 ‘화려한 직업’이 아님이 밝혀졌다.
1억 원을 초과하는 선수는 62명으로 13.5%, 2억 원 이상의 고연봉자는 39명으로 전체 프로야구선수 가운데 8.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억 원 이상의 고연봉자가 프로야구 전체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9%로 매우 높았다. 39명의 연봉 총합이 225억 8450만 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선수협 “대리인제도 필요” 구단측 “아직은 시기상조”
“올 시즌 성적이 지난해만 못하다.”(구단) “팀을 위해 연투하다가 부상으로 1달 정도 쉬지 않았습니까?”(선수) “다른 선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1000만 원 삭감 선에서 끝내자.”(구단) “베테랑의 자존심을 세워주십시오.”(선수) “나는 그러고 싶은데 윗분들이 난리다. 1000만 원 삭감 받아들이면 내년엔 꼭 올려줄게.”(구단) “됐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당분간 개인 훈련할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자꾸 그러면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뺄 거다.”(구단) “….”(선수)
지난해 모 선수의 실제 연봉협상 과정이다. 구단 관계자와 이 선수가 마주한 시간은 7분 남짓. 이 가운데 5분은 날씨, 가족 안부, 근황 등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데 소비했다. 정작 연봉 협상과 관련한 대화는 단 2분이었다.
이렇듯 연봉 협상 시간이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선수와 구단의 계약은 당사자들이 1 대 1로 만나 협상하는 대면계약의 형태지만, 선수 대부분이 협상의 노하우가 없을 뿐 아니라 세부적인 법률 조항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권시형 사무총장은 “구단 프런트야 협상의 달인이지만, 선수들은 운동만 하는 통에 협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며 “복잡한 데이터와 온갖 자료를 분석해 자신의 적정 연봉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어도 선수들이 그럴 만한 시간적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권 총장은 이러한 선수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선수를 대신해 연봉 협상을 주도할 대리인(에이전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수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구단과 연봉 협상을 진행하는 대리인제도는 미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선 평범한 제도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는 KBO 야구규약 30조에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한다’는 문구를 명시했음에도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대리인제도가 자리 잡으면 미국, 일본처럼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할 것이란 구단들의 우려가 시행이 지체시키는 가장 큰 이유다. 전체 프로야구선수 가운데 연봉 7000만 원 이하 선수가 72.7%인 한국프로야구에서 과연 대리인제도가 꼭 필요하냐는 의문도 한몫했다.
하지만 선수협은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고, 자신의 몸값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대리인제도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수협은 내년부터 KBO와 구단이 반대해도 대리인제도를 강행할 방침이다. 반면 구단은 대리인제도가 “시기상조”라며 어떤 대리인과도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자세다.
야구선수도 빈익빈 부익부
알고보면 무늬만 화려?
선수협이 공개한 2010시즌 프로야구 등록선수 전체연봉은 358억 9005만 원으로 지난해 347억 9700만 원보다 10억 9305만 원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8개 구단 가운데 SK가 58억 1300만 원으로 팀 연봉총액이 가장 높았고, 한화가 28억 2200만 원으로 가장 낮았다. 특히나 한화는 전 해보다 총 연봉이 12억 8200만 원 줄어 연봉 감소율이 -31.2%나 됐다. 김태균(지바롯데), 이범호(소프트뱅크)의 국외진출로 고연봉자가 팀을 떠났지만 별다른 전력보강을 하지 않아 총 연봉이 눈에 띄게 준 것으로 보인다.
KBO에 등록된 458명의 선수 가운데 30.6%에 해당하는 140명이 1군 최저연봉인 연봉 24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확인됐다. 7000만 원 이하는 전체 선수 가운데 무려 72.7%로 프로야구선수가 생각보다 ‘화려한 직업’이 아님이 밝혀졌다.
1억 원을 초과하는 선수는 62명으로 13.5%, 2억 원 이상의 고연봉자는 39명으로 전체 프로야구선수 가운데 8.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억 원 이상의 고연봉자가 프로야구 전체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9%로 매우 높았다. 39명의 연봉 총합이 225억 8450만 원이나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