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1 다큐온
기나긴 고생 끝에 찾아온 행복. 이제 좀 쉴 법도 한데 아흔 하나인 지금도 여전히 일손을 놓지 못한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내가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아흔한 번째 봄을 맞고 있는 강명식 씨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꿈, 잊고 살아왔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제도 남단. 자동차 길도 끊긴 가파른 산길을 숨차게 넘어가면 문득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산으로 가로막혀 비밀처럼 숨겨져 있는 비밀의 정원 공곶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는 정원을 찾는 관광객들로 들썩이지만 예전에는 1년에 한 명 볼까 말까 사람 구경조차 힘들던 곳. 그 흔한 가게는커녕 함께 사는 이웃도 없는 거제도 섬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강명식(91), 지상악(87) 부부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것은 오십여 년 전. 진주 출신인 강명식 씨에게 섬은 그저 죄지은 사람들이 귀양살이 가는 곳이라고만 여겼던 곳이었다.
하지만 부모님 뜻 받들어 거제도 섬처녀 지상악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혼례를 치르던 날 산책길에 들른 공곶이는 그의 운명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황무지나 다름없는 산을 맨손으로 일구어 지금의 수선화천국을 만들기까지 굽이굽이 고비요 시련이었다. 빚까지 내서 5-6년 공들여 심은 귤나무 2,000 주는 수확을 앞 둔 1976년 60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거듭된 실패와 시련의 연속에 추운 겨울을 지내야 예쁘게 피어나는 수선화처럼 그는 이제 가장 찬란한 봄을 맞고 있다.
평생 꽃만 바라보고 산 남편. 하지만 아내는 꽃보다 바다가 좋다. 오랫동안 돈도 되지 않았던 꽃. 하지만 바다에 나오면 미역, 김, 우뭇가사리, 성게, 전복 등 물때만 잘 맞추면 먹을 것이 지천에 자식들 고픈 배도 채우고 아쉬운 생활비도 됐다.
답답한 거제도 섬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보고도 싶었지만 그래도 옛 어른들 말씀대로 남편 뜻 거스르지 않고 함께 정원을 일궜다.
이발하러 한번 나갔다 오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남편을 위해 이발사도 되고 낡은 작업복을 수선하는 재봉사도 됐다. 하지만 이제 문득 남편이 야속하다. 좀 쉬엄쉬엄 살 법도 한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손을 놓지 않는 남편.
그래서 오늘도 부부는 티격태격이다. 그러다가도 또 언제 싸웠냐는 듯 금세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자연산 돌김을 만들기 위해 바다로 간다. 남편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귀가 어두워지는 아내가 걱정이다.
아흔한 살에도 여전히 꽃보다 찬란한 봄날을 살고 있는 강명식 씨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삶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