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김일성은 신년사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인민들이 흰 이팝에 고깃국을 먹고 거북이 등 같은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김일성 생전에는 물론 정권수립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천되지 않고 있다. 2010년 1월 “인민들에게 흰 쌀밥과 고깃국을 먹여야 한다는 수령님의 유훈을 아직까지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는 김정일의 연설이 이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대째 세습 지도자 수습 중인 김정은이 비록 ‘3년 안에’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쌀밥과 고깃국’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김정은의 이 발언을 보도한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할아버지의 위광(威光)을 업고 경제재건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발언에 무게를 둔 것은 그가 ‘총알’보다 ‘식량’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정은은 “과거에는 식량은 없어도 총알이 없으면 안됐지만 지금은 총알은 없어도 식량은 있어야 한다”는 등 경제중시 발언을 자주 해왔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쌀밥과 고깃국’ 타령을 하고 있는 판에 남쪽에서는 묵은 쌀, 이른바 재고미(在庫米)를 개사료로 쓰겠다고 발표했다가 농민단체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친 사건이 있었다. 지난 7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005년도에 생산된 재고미를 개사료로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른 것이다. 5년이나 묵은 쌀을 식용으로 풀 수는 없고 가축사료로라도 방출하면 1년에 3500억 원에 이르는 재고미 보관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묵은 쌀을 식품가공용이나 주정용(酒精用), 가축 사료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당국의 방침이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북녘 땅에는 식량이 모자라 60여 년 동안 쌀밥과 고깃국 타령을 하는데 남쪽에서는 묵은 쌀을 처분할 길이 없어 개사료로 쓰느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 ‘한 핏줄을 나눈 단군의 자손’이라는 말이 부끄럽다.
앞으로도 북녘 땅의 식량난은 특단의 조처가 없는 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쌀을 싣고 북녘 땅으로 가는 화물트럭 소리도 끊어진 지 오래고 진남포 등지로 떠나는 뱃고동 소리도 멈춘 지 오래다. 다만 쌀을 실은 트럭이 다시 북녘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은 총알은 없어도 식량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후계자 자리를 굳히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修辭)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