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그룹까지 나서 선수·감독 목줄 꽉꽉
이영환 LG 전 단장은 프로농구 LG 세이커스 단장을 맡아 두 시즌 연속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이였다. 능력을 인정받은 이 단장은 2008년 9월부터 프로스포츠의 꽃인 야구단 단장을 맡았다.
하지만 야구단은 농구단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야구단을 맡자마자 대형 악재들이 터졌다. 포수 조인성과 투수 심수창이 마운드 위에서 싸우질 않나 몇몇 선수들은 도박과 여자문제로 잡음을 일으켰다. 여기다 지난 시즌엔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스카우트 팀장이 신인지명대상자를 불러내 메디컬 체크를 받게 한 통에 타 구단의 원성을 샀다. 선수들의 추문과 프런트의 무리수가 결합해 LG는 프로야구 선도팀에서 하류팀으로 전락했다.
성적도 시원찮았다. 2009년 LG는 7위에 그쳤다. 지난해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했지만 성적은 6위였다. 이 단장이 거둔 업적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현장중심의 야구였다. 과거 LG는 사장 단장의 입김이 셌다. 경기를 관전하다가 감독의 작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을 쏟아냈다. 선수기용까지 참견했다. 감독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해임 카드를 집어 들었다. 지금도 야구계가 LG를 ‘프런트 입김이 센 구단’으로 평하는 건 과거의 원죄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장 체제에서 프런트 입김은 확 줄었다. 박 감독 취임 이후는 더 그랬다. 이 단장은 박 감독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팀 성적이 나빠도 일절 잔소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LG 내부에서조차 ‘오랜만에 현장중심의 야구가 펼쳐진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부진하며 현장중심의 야구는 힘을 잃었다. 프런트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LG가 도입한 신연봉제도가 신호탄이었다. 신연봉제의 주요 골자는 선수들의 입단 연차에 상관없이 그해 성적에 따라 파격적인 연봉 인상, 인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 구단의 연봉책임자는 “한마디로 신연봉제는 선수들의 목줄(연봉)을 프런트가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하겠다는 뜻”이라고 규정했다.
2011시즌 4강 진출을 공언했던 이 단장은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끝나고 6일 뒤 전격 해임됐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신연봉제로 떠들썩했던 야구단을 보고 모그룹 고위층에서 진노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연봉제는 모그룹의 작품이었다. 모그룹이 경영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신연봉제도를 만들고선 구단에 ‘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야구계는 “LG가 이제 프런트를 넘어 모그룹의 입김까지 받기 시작한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 현장-프런트 분리 무너지나
삼성은 LG만큼이나 다난했던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구단 사장과 단장에 이어 감독까지 해임됐다. 야구계는 삼성발 해임 사태를 보고 “과거 삼성의 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우려하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삼성은 프런트 중심의 야구를 펼쳤다. 감독은 파리목숨이었다. 어느 감독은 아침에 사장의 해장국이나 먹자는 부름을 받고 나갔다가 그 자리에서 해임을 통보받았다. 2000년까지 삼성 감독들의 평균재임기간은 고작 1.6년이었다.
감독들은 프런트 고위층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선수들을 혹사하는 건 다반사였다. 하지만 삼성은 프런트의 지대한 관심과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도 2001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창단 20년째인 2002년이 돼서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삼성 우승의 원동력은 단연 현장중심의 야구였다. 2001년 삼성 사령탑으로 취임한 김응용 감독은 처음부터 프런트의 현장 간섭을 철저히 배제했다.
2000년 삼성구단 사장으로 취임한 신필렬 사장의 적극적인 수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 사장은 “프런트는 후방지원이 임무다. 현장은 현장에 맡겨야 한다”며 선수 트레이드, 성적 등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선수단 문제는 철저히 감독을 위시한 현장에 맡겼다.
2005년 김 감독이 구단 사장으로 승진하고, 선동열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으면서 삼성의 ‘현장중심 야구’는 더 빛을 냈다. 김 사장은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면서도 절대 조언 이상을 하지 않았다. 1999년부터 단장직을 수행한 김재하 단장은 모그룹의 외풍과 야구계의 견제를 막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광주 출신 감독을 달갑게 보지 않던 지역 여론을 순화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김 단장 역시 김 사장처럼 절대 현장을 간섭하지 않았다.
선 감독 체제 아래서 삼성이 6년 동안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차지한 건 현장중심의 야구를 프런트가 잘 지원했기 때문이다. 삼성 감독 출신 야구인들이 입을 모아 “내가 감독일 때 프런트가 간섭하지 않고 지원만 해줬으면 우승을 밥 먹듯이 했겠다”고 푸념은 결코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삼성의 현장중심 야구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갑작스레 류중일 신임 감독이 취임하며 현장의 힘이 많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구단에서 외풍을 막아줄 김 전 사장, 김 전 단장 같은 이가 보이지 않는다.
신임 김인 사장은 이미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선 감독이 해임될 때 이를 막지 못하며 방패로서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송삼봉 단장 역시 모그룹 실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었던 전임 단장과 달리 그룹 내 후원세력이 많지 않다.
한 야구해설가는 “신임 사장, 단장, 감독은 우승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자칫 무리수를 둘 수 있다”며 “‘우승만 하면 그만’이란 생각 때문에 현장과 프런트의 분리원칙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야구계에선 롯데 한화 넥센 등도 프런트와 모그룹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는 구단으로 분류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