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꿴 이’ 시민단체 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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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정부기관장과 6개 금융협회장이 모두 참석하는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이 기자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김 위원장은 지난 2003년 론스타 펀드가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할 당시 자격 심사를 담당했던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이었다. 이런 연관성으로 인해 시민단체와 외환은행 노동조합 등은 김 위원장이 외환은행 부실 매각 논란을 야기한 장본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과 론스타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봤다.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는 ‘론스타 펀드’가 가지고 있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약 4조 6888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지난 11월 25일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하나금융 측은 2월까지 론스타에 매각 대금을 지불하고 인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경제 관련 시민단체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외환은행지부(노조·위원장 김기철) 등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론스타 펀드가 애초부터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다’며 지난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인수가 원천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비금융 자본’이 총자본의 25% 이상이거나 총자본이 2조 원 이상이면 이는 ‘산업자본’에 해당해 은행 지분을 9%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 론스타 펀드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자본인지가 최대 쟁점이 되어 왔다. 시민단체에서는 론스타의 전 세계 투자 현황이나 투자자들의 성격을 볼 때 산업자본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왔다.
시민단체들이 이번 개각과 관련해 가장 반발하는 부분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이를 주도했던 정부 측의 핵심 인사가 바로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대주주 자격 심사를 담당했던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이었다. 외환은행 노조는 개각 후 곧바로 성명을 내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도록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정부관료 중 한 사람”이라며 그의 금감위원장 임명에 우려를 나타냈다.
언론 보도나 시민단체들의 자료를 보면 당시 김 위원장은 론스타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2003년 7월 15일 김 위원장은 조선호텔에서 열린 청와대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외환은행 관계자 등이 모인 관계기관 회의에 금융위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일종의 리베이트가 오갔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김 위원장은 함께 참석한 인사들에게 “원래 도장값도 있는 겁니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서 도장값이 비싸야 될 텐데…. 1안(론스타를 금융기관으로 인정하는 안), 2안(은행법이 인정하는 예외 승인), 3안(일본 은행과 합작하는 방안), 4안(외국계 금융회사와 합작 방안)이 다 비슷한 도장값이죠”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며 물의를 빚자 김 위원장은 “인수 가격 인상을 위한 협상용이었으며 실제 최종 인수가격이 (주당) 50원 상승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도장값은 자격 요건이 안 되는 론스타가 지불해야 하는 승인 대가로 주어지는 리베이트”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와 관련해 2007년 3월 감사원으로부터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 한도초과 보유 승인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는 이유로 ‘주의 촉구’ 조치를 받았다.
2003년부터 제기되어 온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논란은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된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지난 12월 주식매매 계약이 체결되자 진동수 전 위원장이 ‘시간을 가지고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갑작스런 교체로 인해 공이 김 위원장에게로 넘어간 상황이다.
현재 금융위는 론스타 대주주 자격 심사 이전에 하나금융지주의 인수 승인 심사가 먼저라는 입장이다. 반면 시민단체는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심사가 인수 승인 심사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만약 대주주 자격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인수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논란과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까지 받았던 김 위원장이 도리어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때문에 사실상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회의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사건의 당사자로서 당시 정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김 위원장이 취임한 만큼 이 문제에 대한 금융위의 판단이 더 늦춰져야 할 이유가 없다”며 “금융위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심사 이전에 납득할 만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김 위원장은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으로서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기보다는 개인의 잘못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환은행 노조도 “결자해지 측면에서 과거 불행한 역사의 시초가 된, 잘못 끼웠던 첫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끼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공정한 심사를 촉구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취임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충 보고만 받았다. 좀 더 파악하고 보고받아 처리하겠다. 도망가면서 처리하진 않겠다. 납득할 만한 방향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 김준환 사무처장은 김 위원장의 말을 받아 “론스타에 대해 제일 많이 아는 분이고 은행법의 대가인 ‘구관’이 왔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말은 좋은 쪽으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결론을 내리겠다는 말로 생각하고 싶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김 위원장의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론스타와 관련해 김석동 위원장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