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슬이여 감자 밭에 앉은 은하수’. 감자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달빛에 반짝이는 것에서 우주를 본 일본인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하이쿠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작고 사소해 보이는 사물에 눈높이를 맞추면 큰 세상이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말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소확행’이란 표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말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 유명해졌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단순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정신적 다이어트 현상이다. 예술에서도 이런 흐름이 두드러진다. 특별한 의미나 거창한 사상을 담기보다는 인테리어 같은 장식성에서 정신적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심리다. 그렇다고 이러한 흐름이 결코 가볍고 감각적인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술의 본 모습인 감성에 호소하면서 삶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일상의 하찮은 대상에서 삶의 지혜가 담긴 세계를 표현하려는 그림 중 하나가 화조화다. 꽃을 중심으로 새나 곤충을 소재로 삼는 전통 회화의 한 장르다. 장식성이 강하고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홀대당하고 있다. 미술대학 교육과정에서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 안타까운 현실이다.
화조화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조선 중기 여성화가 신사임당의 ‘초충도’다. 그는 율곡의 어머니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남성 중심의 당시 사회에서 가족 제도의 규범과 여성의 도리를 지키면서도 개인적 진실과 존엄성을 지켜서 예술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신사임당 회화는 화조화의 가치를 입증하는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유산이다. 자신이 가꾸고 매일 보았던 안마당을 관찰해 큰 세상을 열었다. 꽃이나 곤충의 정밀한 묘사를 바탕으로 당시 사회 정서를 훌륭하게 소화한 걸작이다.
정선아의 회화도 이런 맥락을 이어가는 작업이다. 그는 전통 회화 방법을 그대로 따르며 현대적 감각의 화조화를 추구한다. 전통 제작 방법을 이어간다는 작가의 자세가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작가의 확실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고유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통을 따르는 데 머물지 않고 이 시대 감성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정선아의 화조화는 관심을 끈다. 그가 소재로 택하는 꽃은 장미나 제라늄 같은 요즘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는 것들이다. 그리고 새나 곤충도 그렇다. 새들은 모자나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의인화한 형상이다.
소소한 주변 사물을 빌어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