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남들이 들어주길 바란다.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적극적인 동조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런 영향력이 우리가 사는 시대엔 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만들어왔다.
이야기를 입으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정치가나 방송인이다. 배우는 연기로, 무용가는 몸짓으로, 문학가는 글로, 학자는 학문 연구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를 예술에서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표현하려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전달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전달하는 기술에 따라 예술의 장르가 나누어지는 것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전달 기술은 너무나 다양하다. 재료도 많고 기법도 구구 각색이다. 그래서 전달 기술만으로도 미술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 미술계에서는 ‘방법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용이 없는 전달이었기에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갖추는 것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는 일이다. 특히 자신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독창성 있는 작가’로 평가한다.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평생을 두고 자신만의 기법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표현 방식을 갖는 일. 화가라는 이름을 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도달하고 싶은 목표다. 예술가에게 표현방식은 말투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결과물을 표현어법으로 부른다. 화가의 표현어법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회화적 요소인 점, 선, 면, 색채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짜임이 그것이다. 여기에 붓이나 물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가 연출하는 다양한 표정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김근정은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춘 작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분명하고 자신만의 기법을 가지고 있다. 전통 소재인 십장생을 내세우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전통 차용일 뿐이다. 자연 친화적 품성을 갖고 있는 작가는 자연스럽게 자연물에다 좋은 의미를 덧붙인 십장생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김근정 회화의 장점은 기법에 있다.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색채의 깊이와 추상적 구성 방법이 그것이다. 전통 염색기법을 바탕으로 개발한 색채언어는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 있는 표현 언어로 보인다.
그는 십장생으로 환치된 자연친화적 소재를 자신만의 표현어법으로 다듬어 이 시대 감성에 맞게 표현하는 작가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