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제2의 노민상을 기르고 싶다”
▲ 수영에 빠진 남자 노민상 전 대표팀 감독이 ‘태릉 5년’ 생활을 정리하고 방 두 칸짜리 소박한 집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수영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그는 내심 아내에게 미안한 맘을 내비쳤다.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노민상은 원체 마른 사람이다. 줄곧 179㎝에 체중은 60㎏ 전후였다. 체지방이 없다 보니 1~2㎏만 줄어도 큰 문제다. 많이 힘들다는 얘기다. 지난 해 광저우아시안게임 때는 간신히 58㎏이 나갈 정도로 많이 피곤했다. 하지만 13일 대표팀 감독 사퇴 후 체중이 61㎏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그만큼 편하다는 얘기다. 햇수로 6년, 만 5년의 태극마크는 지극히 영광된 시간이었지만 심신을 몹시 혹사한 시기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후 자비를 들여 노민상수영연구소를 올림픽공원 근처에 열었지요. 그런데 보증금 2000만 원이 1년 만에 봄날 눈 녹 듯 사라졌어요. 사무실이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워커힐에 있는 정립회관에서 좋은 일을 한다며 회관 안에 사무실 공간을 내줬어요. 이곳에서 4명의 제자(지도자)들과 함께 노민상수영연구소를 열어 놓고 있습니다.”
노 감독의 제자들은 1년 전부터 ‘윈(WIN)수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클럽 이름 자체가 원래 노민상 감독이 운영하고, 또 그 속에서 박태환을 발굴했던 예전 것 그대로다. 노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 태릉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스레 없어졌던 것을 제자들이 복원했다. 노 감독은 수영연구소와 윈클럽을 통해 본업인 풀뿌리 지도자로 되돌아 온 것이다. 달라진 것은 모태로 하는 ‘노민상수영연구소’라는 게 생겼고, 제자들이 늘었고, 또 ‘박태환의 스승’으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브랜드파워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 두 가지다.
노 감독은 “며칠 안 됐지만 수영장에서 꼬마 선수들을 보면 한국도 참 좋은 자원을 많이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제2, 제3의 박태환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자원은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입니다. 제가 다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죠. 그래서 제 노하우를 바탕으로 노민상보다 나은 젊은 지도자들을 많이 길러내고 싶습니다. 좋은 지도자 5명을 키우고, 5명이 10명의 기대주를 길러내면 그것만 해도 50명이 아닙니까?”
노 감독은 은퇴 이유 중 하나로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스로는 광저우아시안게임 직후 마음 속으로 은퇴를 결심했고, 대표팀 코치진들에게는 광저우에서 좋은 지도자가 될 덕목을 전해주는 등 자신의 사퇴를 시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가 운동을 잘했던 것도 아니고, 뭐 특별히 가진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한을 선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무명지도자들을 참 좋아합니다. 예컨대 정다래를 키운 안종택 코치도 제가 대표팀 코치로 추천했습니다. 그 친구도 원래 근대 5종을 하는 등 수영계에서는 비주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이 뛰어나고, 또 노력을 합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노 감독의 은퇴 후 언론에서는 주로 “제2의 박태환을 찾아 나섰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 노 감독의 계획은 제2의 박태환도 있지만 우선 순위에서 제2의 노민상을 더 키워내고 싶어했다.
#내과(생활)
노민상 감독은 20일 인터뷰 날도 새벽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나가 ‘미래의 박태환’을 꿈꾸는 꼬마 수영 선수들을 체크했다. 그리고 집 근처 문정동에 연 개인 사무실 정리에 땀을 쏟다가 오후 인터뷰 시간에 딱 맞춰 나왔다.
“태릉에 5년이나 있다 보니 방에 짐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집이 방 두 칸짜리 아파트라 놔둘 곳이 없어 월세로 10평짜리 사무실을 집 근처에 얻었습니다.”
집 얘기가 나왔으니 지금 문정동에 있는 노 감독의 아파트는 거실에다 방 두 개짜리다. 노 감독의 아내와 두 딸이 살고 있는 이곳에 ‘꼬마 박태환’이 가끔 합숙을 하는 등 수시로 들락거리며 세계제패의 꿈을 키운 바 있다.
“전 수영밖에 몰라요. 그렇지 않아도 가정에 소홀했었는데 대표팀 생활 5년 동안은 말할 나위가 없었죠. 솔직히 이번 은퇴는 (박)태환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는데 아내와는 논의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제 성격과 생활을 잘 아는 아내가 대표팀 감독 사퇴를 종용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잘 아니까요.”
노 감독은 “정립회관에 있는 노민상수영연구소는 제자들의 공간이다. 수영장과 멀기도 하고 해서 문정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이다. 곧 사무실 정리가 다 돼 가니 선수들의 부모건, 미디어건, 팬이건 수영 발전과 관련해 날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이곳으로 찾아오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정신과(추억)
▲ 2009로마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노민상 전 감독은 당시 참패를 딛고 재기한 박태환이 정말 대단하다며 제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합뉴스 |
이어 노 감독은 2009년 세계선수권(로마)에서 박태환이 참혹한 부진을 겪은 후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완벽히 부활할 때까지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태환이가 대단한 겁니다.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국내대회에서 선수들이 재기하기 힘든데 태환이는 해냈죠. 돈도 많이 벌고, 연예인들까지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끈 까닭에 힘든 운동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태환이는 그런 걸 딱 끊고 정말 훈련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노 감독은 박태환에 대해서는 가능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싶어 했다. “태환이와 제 스토리를 모두 쓰면 아마 ‘삼국지’가 될 겁니다. 부부도 살다보면 싸울 때가 있는데 태환이나 부모님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외부에다 대고 서로 욕을 하지 않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태환이는 결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자기도 은퇴를 하고 그러면 저를 찾게 될 것입니다. 뭐 그 이전이라도 가능하고요. 이번 은퇴 발표 때도 태환이가 ‘빨리 컴백하시라’, ‘감독님이 하시는 꿈나무 발굴 일이라면 무조건 돕겠다’라고 말해 준 것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노 감독은 일본의 수영 영웅 기타지마 고스케(28)의 몰락도 설명했다. 아테네와 베이징올림픽에서 2회 연속 남자 평영 100m와 200m를 제패했지만 광저우에서 주종목인 평영에서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도자를 수시로 교체하는 등 훈련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제 박태환한테서 떠나지만 박태환이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안과(비전)
노 감독의 눈빛은 예전에 어디선가 본 느낌을 전해줬다. 황영조, 이봉주를 키워낸 고 정봉수 감독이다. 왜소한 체격, 선수로는 불행했던 과거, 하지만 집념 하나로 세계제패를 이루는 등 닮은 점이 많다. 어쨌든 노민상 감독의 눈은 항상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뭔가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아우라를 풍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할 때는 눈빛이 더 강렬하다.
“1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밀집한 서울에 선수들이 훈련할 만한 수영장이 많지 않아요. 태릉선수촌은 대표선수들을 위한 공간이고, 나머지는 올림픽공원, 잠실학생수영장, 88체육관, 한체대와 서울체고 등 손에 꼽을 정도죠. 그나마도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시간은 피해서 써야 하는 까닭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수영 선진국에 비하면 정말 열악합니다. 수영장은 꿈나무 발굴 등 선수들에게도 좋지만 일반인들의 여가선용에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뭐든 호화롭게 지으려고 하는데 많은 돈 안들이고, 실속 있게 지을 수 있습니다.”
이어 노 감독은 ‘쓰레기 소각장 수영장’이라는 신선한 발상도 소개했다. <일요신문>이 이런 것 좀 널리 알려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소각장은 주민들이 싫어하는 혐오시설 아닙니까? 소각장에서 나오는 열로 난방을 하도록 소각장 옆에 수영장을 지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친환경적으로 말입니다. 천정도 자연광을 활용하면 더 좋고요. 이 수영장에 부대시설이 들어서고 하면 혐오시설이 아니라 최고의 주민시설이 될 겁니다. 비싼 타일이나 인테리어 필요 없습니다. 수영장은 따뜻하고, 물만 깨끗하면 됩니다. 지자체에서 이런 수영장 좀 많이 지어줬으면 합니다.”
노민상 감독은 소주를 참 좋아한다. 박태환의 스승을 알아보고 사인요청이 들어오면 ‘늘 처음처럼’이라고 써주기도 한다. 이제 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셈이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제2의 박태환을 찾고, 또 지도자를 육성하고, 수영연구를 하는 것 말이다. 정말이지 맑은 물 하나는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