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남친·학업‘스리 쿠션’ 칠래요
▲ 광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얼짱 스타로 인기를 모은 차유람. 선수촌 시절 그녀의 스타는 추신수 였다고 한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차유람은 1월 10일부터 15일까지 제주도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그는 당구장에서 벗어나 큐대를 놓고 올레길을 걷고 또 걸으며 체력훈련과 명상을 통해 몸을 채우고 생각을 비워냈다. 흔히 당구 선수들은 테크닉만 배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온전한 테크닉을 발휘하기 위해선 체력훈련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특히 하체 단련은 지구력을 강화하는 데 빠트릴 수 없는 훈련이다.
“올레 7코스가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길을 선택한 뒤 산도, 바다도, 섬도 접하며 걷기를 반복했어요. 모처럼 자연을 체험해서 그런지 기분이 색다르더라고요. 체력훈련을 위한 여정이었는데 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너무 많은 행사들이 있어서 제 자신과 대화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마지막 아시안게임
지난 도하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마저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던 차유람. 금메달 기대주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그로선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마지막이었어요. 2014년 인천 대회 때는 당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기 때문이거든요. 따라서 당구대표선수들은 모두 ‘우리가 잘 해야 당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 강했어요. 그런데 너무 심적인 부담이 컸었나봐요. 제가 갖고 있는 실력은 다 발휘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는 바람에 결과가 좋지 않았던 거죠. 내용면에서는 최고의 경기였다고 자부해요. 단,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하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어요.”
선수촌 생활
▲ 차유람이 작년말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포켓8볼 16강전에서 큐로 볼을 겨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야구나 축구 농구 등 단체 종목 선수들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어요. 당구는 레슬링이나 유도처럼 상대랑 부딪히며 싸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공과 승부하는 거잖아요. 공을 노려보면서 말이죠(웃음).”유명한 선수가 또 다른 유명 선수를 봤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차유람은 TV로만 봤던 한국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직접 보고 많은 느낌표를 가질 수 있었단다.
“선수촌에서도 인기 스타가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제일 많은 사인 공세를 받은 사람이 추신수 선수였어요. 너무 멋지셨어요. 외모, 분위기, 여러 가지 면에서요. 웨이트트레이닝하는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이랑 다르더라고요. 우르르 몰려다니지도 않고. 솔직히 그 분의 다큐멘터리 보고 반했거든요.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죠. 추신수 선수가 노력한 과정을 보니까 전 아마추어 수준이더라고요. 자극 많이 받았습니다. 그 분과 사진 찍고 싶어서 몇 번이나 다가갔다가 두 번 그냥 지나치고 세 번째 용기내서 사진 찍자고 부탁드렸어요. 물론 흔쾌히 응해주셨고요.”
스타화보를 찍은 이유
항상 화이트 셔츠에다 조끼를 입은 단정한 차림으로 당구 대회에 나섰던 차유람이 어느날 스타화보를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 속에선 당구 선수 차유람이 아닌 성숙한 이미지의 차유람이 존재했다. 벌써 2년 전 얘기였지만 당시 기자는 ‘왜 그가 이런 화보집을 냈을까’하는 궁금증이 컸었다.
“그 사진들 때문에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좋은 반응도 있었고 나쁜 반응도 있었죠. 어느 정도 예상은 한 부분이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처음 경험한 일이라 후유증이 있더라고요. IB스포츠 말고 이전 소속사에서 진행한 일이었어요. 소속사도 저도 실수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다시 그런 제의가 온다면 절대 안 할 거예요. 저랑 그런 화보집이랑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대답하기가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질문을 ‘남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차유람의 태도가 참으로 건강하게 보였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가 공부를 많이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학습보다는 인생 공부를.
라이벌 김가영
차유람과 김가영은 한국 여자 당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빼어난 실력과 함께 섹시한 몸매로 남성 팬들을 사로잡은 김가영과 ‘당구 요정’ ‘얼짱 스타’ 등으로 불리며 스타플레이어의 반열에 오른 차유람의 대결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3월 대만에서 벌어진 암웨이배 세계여자오픈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두 사람. 우승은 차유람의 몫이었다.
“당구를 시작하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김가영이란 선수는 제가 넘어서야 할 벽이었어요. 그 언니를 넘어서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죠. 한국에서 최고가 되려면 그를 꺾어야 하니까요. 정말 피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그러면서도 피하고 싶은 상대예요. 그만큼 강하고 실력이 출중한 선수죠. 감히 넘어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요. 이전에는 열 번 싸워서 두 번 정도 이겼는데, 요즘은 50:50인 것 같아요. 언니의 존재 덕분에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저한테는 아주 고마운 선배죠.”
언니 차보람
차유람이 당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작용한 언니 차보람. 두 자매의 당구 대결 또한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번번이 앞에 나선 이는 언니가 아닌 동생. 그로 인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두 자매의 ‘애정전선’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전에는 좀 힘들었어요. 저보단 언니가 더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편해진 것 같아요. 언니는 지도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고요. 그러다보니 경쟁자이기보단 조력자로 관계 정립이 되더라고요. 다툼이요? 언니랑 매일 싸워요. 우리 가족들이 어디다 전화하는 걸 무지 싫어하거든요. 치킨 배달 시킬 때도 서로 미루고 서로 안 하려 하고…, 유일하게 마음 통하는 게 드라마 볼 때예요. 이번에 <시크릿가든> 보고 서로 ‘주원앓이(현빈)’했잖아요(웃음).”
이성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차유람은 “지금까진 남자 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너무 없다고만 말하는 게 민망하다”면서 “앞으론 만들고 싶다. 이성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사귈 기회와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애써 회피했다.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사람이 생긴다면 사귈 의향은 있다”는 대답으로 변화된 생각을 내보였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한 차유람. 올해 한국체육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필리핀전지훈련과 3월부터 계속되는 대회 출전으로 수업을 충실히 받기는 어렵겠지만 뒤늦게 시작하는 대학 생활이 그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모양이다.
“해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걸 극복해 가면서 제 자신이 조금씩 강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숙한 당구, 고급스러운 당구를 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무척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은데, 올 시즌 더욱 도약하는 절 기대해 주세요. 학교도 자주 가고 싶고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