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등 로또’ 사들여 아주 특별한 로비
▲ 1등에 당첨된 로또가 대기업 로비용으로 쓰인다? 실제 전문 브로커와 사채업자들이 1등 복권을 대기업에 팔아넘긴 정황이 포착됐다. 해당 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거액에 당첨된 로또는 로비 혐의를 잡기가 힘들고 희귀하다는 점에서 최고의 로비 선물로 꼽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로또 1등 복권을 구하기만 하면 단단히 ‘한몫’ 챙길 수 있다.”
명동의 한 사채업자 K 씨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그 이유를 묻자 K 씨는 지난해 초에 있었던 한 사례를 공개했다. “사채업자 중 한 명이 당첨금 27억 원 정도 되는 1등 당첨 로또복권을 어디선가 가지고 와서는 20억 원에 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달 뒤에 다시 사간다는 조건이었다. 그런 큰돈이 없어 거절하긴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해 그 후에 수소문을 해봤더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등 당첨자로부터 로또복권을 20억 원에 구입했던 그 사채업자가 그것을 다시 굴지의 한 대기업에 25억 원에 팔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채업자는 앉은 자리에서 5억 원을 번 것”이라고 전했다. K 씨는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사정이 어려운 사채업계에서 로또 얘기가 부쩍 많이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수의 사채업계 및 사정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첨 로또복권이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유통과정’은 몇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단계는 사채업자와 결탁한 전문 브로커들이 당첨 로또복권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명 ‘로또 브로커’라고도 불리는 이들 브로커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로또 고액 당첨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낸 뒤 그들로부터 당첨 복권을 매입하는 게 주 임무다. 이를 위해 브로커들은 로또와 관련 있는 금융권 및 사업체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첨자 신상명세를 파악한 브로커들이 로또를 구입하기 위한 설득 논리는 간단하다. 금융기관보다 더 비싸게 로또복권을 사준다는 것이다. 가령, 27억 원짜리 1등 로또를 금융기관에서 교환할 경우 33%의 세금을 제외한 18억 원가량만을 받을 수 있는데 브로커들은 20억 원 이상을 부른다고 한다. 1·2등 당첨금액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당첨자들로선 더 많은 돈을 준다는 브로커의 제안이 솔깃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브로커가 사들인 고액당첨 로또복권은 사채시장에서 본격적인 거래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수천만 원대의 ‘수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채업자 K 씨는 “(로또 거래는) 사채시장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얘기다. 일부 힘 있는 사채업자가 브로커와 손을 잡고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브로커로부터 로또를 사들인 몇몇 사채업자들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이것을 자기들끼리 사고팔며 ‘회전’을 시킨다고 한다. 일종의 ‘로또 세탁’인 셈이다. 또 다른 사채업자 L 씨는 “로또 거래는 액수가 커 영세한 업자들은 엄두도 못 낸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몇몇 인사들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브로커들 역시 그 사채업자들에게 고용된 자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한 로또 브로커 역시 “내가 돈이 어디 있어서 수십억 원대의 1등 로또를 살 수 있겠느냐. ‘큰손’들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받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채업자들이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로또를 사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K 씨와 L 씨를 포함한 여러 사채업자들은 “일부 대기업이 그 로또를 다시 사들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L 씨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한 대기업이 사채시장에서도 ‘큰손’으로 꼽히는 모 인사에게 당첨 로또복권을 구할 수 있는지를 의뢰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 사채업자가 복권을 구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그 대기업이 재구입했다”면서 “그 이후 몇몇 대기업과 사채업자들이 로또복권을 거래해 왔고 지금은 일정한 ‘거래선’까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거래선’까지 갖춰져 있다는 말은 적어도 수년 전부터 로또가 거래되기 시작했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채업자가 1등 당첨 로또복권을 대기업에 되팔 때 거두는 차익은 매회 당첨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억~5억 원 수준이라고 한다. 2등 당첨 로또복권의 경우 그 액수는 대폭 낮아진다. 사채업자들이 로또복권 거래에 군침을 흘리는 것도 이처럼 큰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채시장에서는 특정 대기업 두 곳을 ‘로또 구입처’로 지목하고 있다. 사채업자 K·L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 대기업이 ‘로비용’으로 로또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그룹의 ‘잘나가는’ 계열사다. 해당 기업들은 로또 거래에 대해 “처음 들어본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내부 고위 관계자들을 접촉해본 결과 관련 내용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로또 거래를 처음 고안했다는 대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로또 거래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직접 관여하고 있는 소수 직원들 외에는 모를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우리 그룹이 로또를 사들였다는 것이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퍼지고 있다. 이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로또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비보도’를 전제로 로또 구입을 ‘인정’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로비를 하기 위한 것이다. 당첨 로또는 안전할 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으냐. 일석이조”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또를 거래한 의혹을 받고 있는 두 곳 외에도 한 대기업 역시 지난해 로또 구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기업은 일부 그룹이 로또를 로비에 활용한다는 소문이 돌자 사채시장과 금융권 등을 상대로 자체 진상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그 기업은 로또를 사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전언이다. 특이한 점은 당시 그 대기업은 ‘로비용’이 아닌 ‘총수 헌납용’으로 로또 구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사채업자 K 씨는 “1등 로또복권을 구하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공급도 적고 극도로 비밀리에 거래되고 있다. 그 대기업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포기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로또 거래에 대한 의혹은 금융권 일각에서 지난해 말 처음 불거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통 로또복권 1등 번호가 발표되면 당첨자가 일주일 전후로 당첨금을 교환해가게 마련인데 이례적으로 당첨금 지급 마감 시기가 가까이 돼서야 당첨자가 은행을 찾는 일이 잦아지자 의문을 품은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로또사업자인 ㈜나눔로또 관계자는 “1등 당첨금액은 거의 바로 수령된다. 몇 달이 걸리는 건 특이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2007년 12월부터 KB은행에 이어 로또 당첨금 지급을 맡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한 임원 역시 “드물긴 한데 (늦게 찾아가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 로또에 당첨되면 바로 찾아가지 않느냐”면서 “2008년 말부터 1등 당첨자가 늦게 나타나는 일이 늘어나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 말과 올해 들어서 이를 몇몇 금융권 인사들이 대기업 및 사채시장과 연관 지어 거론하더라. 사채시장에서 여러 차례 돌았던 당첨복권을 교환하러 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채시장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로또 거래’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사정기관도 최근 첩보 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새로운 로비 방식이 등장한 것 같다. 사채시장에서 여러 번 오갔다면 추적이 어려울 것 같다. 찾아간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혀낸다 하더라도 본인이 사서 당첨됐다고 주장하면 ‘로비용’으로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정기관들은 대기업들이 구입한 로또가 어느 곳으로 유입됐는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선 로또 1등 당첨금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만큼 ‘특별한 인사’가 로비 대상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는 “로또 1등은 돈도 돈이지만 희소성이 대단한 것 아니냐. 로비용으로선 최고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만큼 받는 사람도 대단한 실세일 것이다. 만약 실체가 드러나면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