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주총에서 소버린의 M&A 공세를 간신히 막아낸 최태원 SK(주) 회장이 7개월 만에 다시 퇴진압력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린동 SK 본사 건물. | ||
지난 3월 주총에서 최 회장은 국내 기관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당시 최 회장 측은 소액주주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개 숙인 덕에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그때와는 좀 다르다. 내막은 이렇다. 소버린은 지난 25일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SK(주)측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공식 요청했다. 임시주총 소집이유에 대해 소버린측은 ‘더욱 강화된 기업지배구조 기준을 SK의 정관에 반영하기 위하여 이사의 자격에 관련된 두 개의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소버린이 추진하고 있는 정관 변경안을 구체적으로 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형사범죄 혐의로 기소된 이사의 경우 형의 선고가 확정될 때 까지 이사로서의 직무수행을 정지하고, 금고 이상이 형의 선고가 확정된 이사의 경우 그 직을 상실케 하여 주주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SK(주)에서 소버린의 이 같은 요구에 ‘위협적인 요구’라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 이유는 이 정관변경안이 최태원 회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문제제기 시점도 최 회장의 재판기일과 맞물려 있다. 지난 27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에서 SK사태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SK 고문에 대한 재판이 열렸기 때문이다.
SK쪽에선 이런 일련의 ‘오비이락’에 대해 불쾌감을 내비치고 있다. 증시에선 연말을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런 소버린의 임시주총 요구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증시는 SK(주)의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징후로 해석하고 SK(주)의 주가가 6만선을 넘는 등 주가에는 호재로 작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버린은 1만원대 미만에 SK의 주식 14.9%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현 주가수준에서도 이미 소버린은 6배의 차익을 확보한 셈.
소버린으로선 ‘투명경영’을 소리높여 주장할수록 투자수익이 커지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물론 소버린쪽에선 이미 지난 3월 주총 이후 SK의 투명경영을 통한 회사가치 높이기에 대해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표명하고 있다.
‘지난 주총 이후 소버린은 SK 이사회에 기업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련의 근본적 문제들을 다루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투명성 제고와 책임경영 구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SK 이사회의 공적인 다짐에도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는 게 소버린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지난 6월 ‘SK(주)의 이사회 대표자들을 만났으며 이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는 서면으로 요청사항을 전달’했지만 ‘소버린의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치 않았으며, 그나마 답변된 내용도 핵심을 회피해 둘러대는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임시주총을 소집한 이유가 그간의 협상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임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SK쪽에선 “지난 6월 IR담당 이승훈 상무가 런던으로 날아가 소버린쪽 책임자를 만났고, 그들의 질문에 대해 20쪽 이상의 답변서를 만들어 전달했고, 부족한 점에 대해 추가로 질문하면 답변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소버린쪽에서 더 묻지 않았다”고 정황을 공개했다. 또 SK에선 지난 10월19일 소버린이 두바이에 지사를 개설했을 때도 관련 임원들이 날아가 접촉을 시도하는 등 소버린의 요구사항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버린이 이사 개개인과 접촉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주총에서 유일하게 소버린과 SK가 공동으로 지명한 케이스인 남대우 사외이사는 “지난 3월 이후 한번도 소버린과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소버린은 지난 3월 주총 무렵 공개질의를 하고, 6월께 ‘SK 이사회 대표자’를 만난 뒤 그 결과에 만족치 못하고 이번에 다시 임시주총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된다.
▲ 최태원 회장 | ||
소버린은 “정기주총 이후 지난 7개월 동안 SK의 이사회에 우리가 제기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SK 이사회가 기업의 건강한 기능을 저해하는 이러한 핵심적 문제들을 다룰 능력과 진정한 의지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SK 이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들이 결과적으로 공동지명했던 남대우 사외이사의 활동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 그렇다면 소버린의 상태는 경영권 분쟁이 공식화된 지난 3월 정기주총 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지분도 더 늘어난 게 없다.
바뀐 게 있다면 주가가 올라 주식 평가액이 좀 더 올라갔을 뿐이다. 이번 임시주총 소집건으로 주가는 또 올랐다.
때문에 이번 소버린의 임시주총 요구에 대해 증시에선 소버린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증시에선 이번 임시주총 요구가 기업인수합병전 재료라는 성격으로 주가가 오르는데 한몫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로 이번 임시주총 요구가 SK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소버린 입장에선 내년 정기주총을 앞두고 내부 ‘표단속’과 세과시를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소버린이 갖고 있는 14.99% 외에 외국인 큰손을 얼마나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였는지 이번 임시주총을 통해 SK그룹 안팎에 과시하며 최태원 회장측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버린으로선 이번 임시주총에서 특정인(최태원)의 진퇴와 관련된 정관개정을 시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내년 정기주총에서 중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기 주총에선 참석자의 50%의 승인만 얻으면 이사회 멤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임시 주총에서 정관변경의 건은 전체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산술적으로 소버린 입장에선 내년 정기주총에서 최 회장의 이사 선임건에 50%의 반대를 모으는 게 더 쉽다.
그럼에도 소버린은 이번 임시주총의 의제를 정관변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정기 주총이 ‘최태원 회장 압박’이라는 그림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버린의 제임스 피터 대표는 임시주총을 요구하는 성명에서 “이번 임시주총을 통해 SK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로 판단하고 있는 경영진의 윤리성과 능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중대한 범죄행위로 유죄를 선고받은 인물에게 상장기업 경영을 맡기고 공공의 자금을 관리토록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해 주주들은 곰곰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며 최 회장이 실형을 살고 보석으로 풀려나와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또 한 가지 소버린에서 SK의 현 경영진에 대한 불만은 주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소버린은 이번 성명서에 SK와 세계 정유업계 기업들의 시장가치를 비교하는 표를 실어 그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줬다. SK는 이들이 예시한 기업에서 가장 낮은 시장가치를 보였다. 즉 SK의 주가가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이런 소버린의 ‘연말 기습 공격’에 대해 SK측에선 정면 대응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미 최 회장이 올 하반기 내내 외국인 기관투자가들과의 만남에 동행해 회사 경영에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서는 등 내년 주총 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오는 11월5일 SK 이사회에선 소버린의 임시주총 요구를 정식 안건으로 올려 다룰 예정이다.
소버린의 공격에 대해 SK가, 최태원 회장이 어떤 방책을 쓸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