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재판 지연으로 인도 주정부 허락 아직”…시민단체 “재판은 핑계, 치료 제공 등 약속 안 지켜”
#안하는 것이냐, 못하는 것이냐
LG화학은 1996년 인도 최대 폴리스타이렌 수치 제조업체 힌두스탄 폴리머를 인수했다. 인수 후 사명을 LG폴리머스인디아로 변경했다. 현재 LG화학은 LG케미칼인디아를 통해 LG폴리머스인디아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20년 5월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사카파트남 인근 LG폴리머스 공장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스타이렌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인근 지역 주민 15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인도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4월 LG폴리머스 공장에서 가스 누출 징후가 있었지만 회사 측은 이를 무시했다. 또 공장의 경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경영진의 부주의와 관리 태만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인도 경찰은 2020년 7월 한국인 직원 2명을 포함해 직원 12명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후 한국인 직원 2명은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사측의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는 “LG화학의 과실로 인한 가스 누출 참사의 비극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안전시스템과 강력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LG화학도 사고 직후 “환경과 안전 분야에서 글로벌 기준을 중시하고 있으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번 사고로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 분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하며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LG화학은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피해 복구를 위해 △유가족 및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 기관과 협의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보장 △지정 병원에서 주민 건강 검진과 향후 치료 제공 △전문기관을 선정해 건강과 환경 영향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지역사회와 함께할 중장기 사회공헌활동(CSR) 사업 적극 추진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현재 보상과 치료를 두고 회사 측과 피해자 측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ANROEV, 아시아모니터링센터(AMRC),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5월 공동으로 LG화학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LG화학 사과문의 내용과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고 립서비스에 불과했다”며 “LG화학은 사고 초기 부사장급을 대표로 한 현지지원단을 인도로 보냈지만 실질적인 피해지원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법적 책임회피에 몰두하다 인도 경찰에 의해 출국 금지됐고, 이후 도망치듯 귀국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6일에는 피해자들의 온라인 증언대회도 열렸다. 당시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카말라카 씨는 “신체 여러 기관에 영향을 받아 다리가 마비됐고,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다”며 “우리가 지출하고 있는 의료비를 누가 배상해 줄 것인지에 대해 LG폴리머스는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인도 주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주고, 재판을 통해 LG화학에 보상금을 청구할 예정”이라며 “CSR 활동 등 여러 보상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재판이 지연되면서 인도 주정부의 허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시민단체는 재판 일정 지연은 핑계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공동 성명에 참여한 환경보건시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재판과 무관하게 LG화학이 당초 약속했던 치료는 고사하고 피해자들은 LG화학 관계자를 만나지도 못한다고 한다”며 “애초에 기본적인 것도 알아보지 않고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중되는 부담…철수설도 불거져
가스 누출 사고 영향으로 LG폴리머스는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은 사업보고서에서 “고등법원의 명령에 따라 현재 (LG폴리머스) 공장은 봉쇄됐고, 일부 인원의 출입만 가능하다”고 전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폴리머스의 매출은 2019년 2228억 원에서 2020년 617억 원으로 급감했다. 또 2019년 63억 원의 흑자를 거뒀지만 2020년에는 62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자본도 크게 줄어 2019년 말 기준 LG폴리머스의 자본은 총 843억 원이었지만 2020년 말에는 17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향후 LG화학이 LG폴리머스를 매각하거나 철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고 발생 당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환경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은 절대 추진하지 않으며 현재 운영하는 사업도 환경안전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철수까지도 고려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시민단체뿐 아니라 주주들도 LG화학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사고 후 LG화학에 사고 원인, 경영진의 대응현황, 복원방안, 향후 사고 방지를 위해 회사가 계획 중인 노력 사항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블랙록은 LG화학 주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지분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철수설과 관련해 앞서의 LG화학 관계자는 “인도 주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공장을 가동할 수 있고, 현재로는 철수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