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교통정리’ 뒷짐 지면 ‘대형사고’
▲ 지난해 12월 27일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 한 참석자와 악수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사실 박 전 대표의 대선 승리 공식은 내·외적 변수의 이차방정식이 동시에 풀려야만 가능하다. 야당의 후보 단일화 등 외적 변수는 박 전 대표 영역 밖의 일이다. 친박계 내부 권력투쟁 관리와 같은 내적 변수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손을 봐놓지 않으면 경선 통과도 장담할 수 없다. ‘박근혜 대세론 붕괴’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친박계 내부의 권력투쟁을 추적해봤다.
이른바 대세론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전력의 120%를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가는 사람이 굳이 무리수를 둬 안정된 판을 흔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수한 변수가 명멸하는 대권 경쟁에서 ‘가만히 있으면 왕관은 우리 차지인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전략은 자폭에 가까운 안일한 자세다. 이는 지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두 번 연속 역전패 당했던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대표의 예에서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세론에 취해 저마다 한자리씩 차지하려다 내부 파열음을 냈고 그것이 국민들로부터 ‘오만하다’는 거부감을 낳아 결국 김대중-노무현 후보에게 연속 역전패하는 빌미가 됐다. 이 대표는 최근 이에 대해 “당시엔 나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지”라며 쓴웃음을 지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친박계 진영의 전략 관계자들을 대하다 보면 대세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는 지지율에 취해 ‘무리만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함을 느낀다. 이회창 대표가 걸었던 패배의 길을 그들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8·21 이명박-박근혜 전격 회동은 친박계를 대세론으로 마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친박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를 보면 위대한 마라토너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당분간 대권 행보는 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지금 페이스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충실하고 지금 페이스대로 균열 없는 대선 지형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심산이다.
이는 대세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성 전략이긴 하지만 정치권의 전략 관계자들 대부분은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형국”이라며 박 전 대표의 역전패를 경고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가 야권의 후보 단일화 같은 외적 변수보다 내부의 권력투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자멸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친박계 내부의 권력투쟁은 두 가지 갈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의 대선네트워크를 엮어내는 조직그룹과 전략참모들 사이에서 오는 권력 갈등, 그리고 친박계가 오래 전부터 노정해온 신·구파 간의 충성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친박계 주변에서는 특히 조직-전략그룹 간의 내부 권력투쟁이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직 작업을 하는 그룹에서는 대선의 성격상 미리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댄다. 반면 전략참모들은 “아직 박 전 대표가 치고 나갈 때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당연히 조직그룹이 전국을 들쑤시며 네트워크 작업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만 하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조직 구축에 땀을 흘리고 있는 ‘일꾼’들의 활동을 마뜩치 않게 여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직 대선이 2년이나 남았는데 괜히 조직 사업 한다며 박근혜 전 대표 이름 팔고 다녀봤자 골치만 아프다”(친박계 핵심 전략 관계자)는 반응도 그래서 나온다. 반면 직접 발품 팔아 가며 네트워킹 작업을 하는 조직 관계자들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는 뿌리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갈등은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면서 더욱 극에 달해 박 전 대표 대권 가도의 최대 화약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에서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조직 관리를 해온 A 씨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조만간 출범시키기 위해 사비까지 털어가며 뛰고 있다. 하지만 그의 활약에 대한 전략그룹의 평가는 싸늘하다. 한 친박 핵심 전략 관계자는 내부의 갈등 요인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자기 혼자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것만 알아 달라”라고 말했다. A 씨의 조직 사업을 평가 절하하는 목소리 속에는 ‘잡음 없이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친박계 일각의 반응에 대해 A 씨는 “남의 일에는 원래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묵묵히 나의 일을 착실히 해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관계없이 내 길을 가겠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도 A 씨는 같은 친박계에서 그런 냉소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에 대해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서운해 하고 있다.
이는 현재 대세론에 취해 있는 친박계 내부 권력 갈등의 한 작은 예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크고 작은 갈등이 조만간 박근혜 대세론을 옭아매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바로 지난 연말 국가미래연구원이라는 대선 조직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상종가를 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친박계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국가미래연구원을 보면 박근혜 사단 전력의 10%도 안 되는 미미한 조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큰 조직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에 의해 과대포장된 성격이 짙다. 현재 박 전 대표가 직접 관리하는 의원 중심의 포럼도 몇 개가 되는데 그곳에 이름을 올려놓은 전문가그룹도 상당히 많다. 아직 대외적으로 공개되기를 꺼리는 교수도 상당수다. 그런데 국가미래연구원이 마치 친박계의 대표적 조직처럼 비쳐지자 전국에 산재해 있던 조직들이 잇따라 들썩거리고 있다. 이때 제대로 위에서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중구난방으로 조직이 겹치고 과잉되면서 오히려 박 전 대표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국가미래연구원 출범 성공에 자극받은 전국의 친박 조직이 저마다 네트워크 구축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혼선과 파열음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세론이 굳어질 때 미리 자리를 잡아놓지 않으면 권력출범 때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친박계는 의원 중심의 포럼조직과 박 전 대표의 팬클럽 등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상태인데 그것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에 대해 “주변에서 박 전 대표에게 ‘이제 서서히 조직 관리를 해야 한다’고 수십 차례 건의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도 김무성 현 원내대표가 정치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조직 관리를 수도 없이 요구했지만 거부됐고 결국 패배했다. 당시 김 대표가 그 문제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도 박 전 대표의 원칙은 그대로다. 박 전 대표가 개입하게 되면 힘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전국 단위의 조직들이 ‘개별적으로’ 속속 출범할 것인데 방목 상태로 놔둘 경우 더 큰 권력형 비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박 전 대표가 대표적인 조직 몇 개를 선정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 안국포럼을 베이스 기지로 전국 단위의 여러 조직을 직접 관리하며 견제와 경쟁을 유도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철저하게 무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럴 경우 서로 ‘박심’을 내세우며 조직 간 반목과 질투가 도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 확실한 교통정리가 돼야 서로의 역할이 명확해지고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세론은 견고하게 구축된 철옹성이다. 웬만한 외부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건한 대세론도 내부 권력 투쟁 심화와 박 전 대표의 무개입 원칙이 맞물리면서 스스로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 과연 박 전 대표는 조직 관리를 하지 않는 대선 주자로서 대권까지 거머쥐게 되는 정치실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선진언론포럼 출범 계획 막후
‘언론 인재풀’로 자리매김?
박근혜 전 대표는 조직 관리를 하지 않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1년에 몇 차례 공식 모임에 직접 참석해 제대로 ‘관리’를 하는 곳도 있다. 바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회장인 선진사회연구포럼(선진포럼)이 그곳. 선진포럼은 지난 2008년 출범, 박 전 대표를 포함해 50여 명의 현역 의원이 소속된 친박계 최대 조직이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이 책임연구의원으로 활약 중이다. 앨빈 토플러 초청강연과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 및 원안의 중요성’에 대한 강연회를 여는 등 박 전 대표의 실질적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특히 각계 전문가 18명이 전국 조직망 구축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직 산하 언론단체 ‘선진사회언론포럼’이 2월 중순경 출범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선진사회연구포럼의 전문가그룹에 속한 이 조직은 김형태 전 KBS 국장이 전국의 언론인과 교수 등을 결집시켜 대권 조직으로 키우는 중이다. 원래 ‘전국언론특보단’이라는 명칭으로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이후 계속 활동해왔는데 최근 그 이름이 선거법에 걸린다는 지적이 제기돼 ‘선진사회언론포럼’으로 개명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특히 박 전 대표 핵심측근의 친인척도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실세조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김형태 전 국장은 “‘21세기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언론인 모임’ 혹은 ‘21세기 선진사회 정착을 위한 언론인 연구 모임’임을 대외적으로 표방하며 박 전 대표의 실질적인 언론문제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오는 2월 셋째 주에 정식 발족하기로 내부 합의가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김 전 국장이 밝힌 선진언론포럼 명단에는 지방언론사의 편집국장, 사장 등 현직 언론인과 전국의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이 대거 포함돼 있어 중립성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현직 언론인이 특정 대권 후보의 조직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언론사의 객관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순수 언론연구모임이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와 결부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언론포럼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스탠스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언론장악에 나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 또한 박 전 대표가 집권하게 되면 이 언론 싱크탱크가 이명박 정권의 ‘김재철(MBC 사장)-김인규(KBS 사장) 사단’과 같은 ‘언론인 인재풀’로 자리매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파괴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친박계 일각에서는 이 포럼 출범에 대해 “박 전 대표에게 부담을 주는 지나친 정치조직 구축은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이런 조직 간 내부갈등에 대해 전혀 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친박계의 또 다른 파열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언론 인재풀’로 자리매김?
박근혜 전 대표는 조직 관리를 하지 않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1년에 몇 차례 공식 모임에 직접 참석해 제대로 ‘관리’를 하는 곳도 있다. 바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회장인 선진사회연구포럼(선진포럼)이 그곳. 선진포럼은 지난 2008년 출범, 박 전 대표를 포함해 50여 명의 현역 의원이 소속된 친박계 최대 조직이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이 책임연구의원으로 활약 중이다. 앨빈 토플러 초청강연과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 및 원안의 중요성’에 대한 강연회를 여는 등 박 전 대표의 실질적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특히 각계 전문가 18명이 전국 조직망 구축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직 산하 언론단체 ‘선진사회언론포럼’이 2월 중순경 출범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선진사회연구포럼의 전문가그룹에 속한 이 조직은 김형태 전 KBS 국장이 전국의 언론인과 교수 등을 결집시켜 대권 조직으로 키우는 중이다. 원래 ‘전국언론특보단’이라는 명칭으로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이후 계속 활동해왔는데 최근 그 이름이 선거법에 걸린다는 지적이 제기돼 ‘선진사회언론포럼’으로 개명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특히 박 전 대표 핵심측근의 친인척도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실세조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김형태 전 국장은 “‘21세기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언론인 모임’ 혹은 ‘21세기 선진사회 정착을 위한 언론인 연구 모임’임을 대외적으로 표방하며 박 전 대표의 실질적인 언론문제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오는 2월 셋째 주에 정식 발족하기로 내부 합의가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김 전 국장이 밝힌 선진언론포럼 명단에는 지방언론사의 편집국장, 사장 등 현직 언론인과 전국의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이 대거 포함돼 있어 중립성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현직 언론인이 특정 대권 후보의 조직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언론사의 객관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순수 언론연구모임이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와 결부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언론포럼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스탠스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언론장악에 나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 또한 박 전 대표가 집권하게 되면 이 언론 싱크탱크가 이명박 정권의 ‘김재철(MBC 사장)-김인규(KBS 사장) 사단’과 같은 ‘언론인 인재풀’로 자리매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파괴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친박계 일각에서는 이 포럼 출범에 대해 “박 전 대표에게 부담을 주는 지나친 정치조직 구축은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이런 조직 간 내부갈등에 대해 전혀 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친박계의 또 다른 파열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