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아파트단지의 부정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나 건물안전을 위한 보수공사 등에서 그들 사이에 오가는 돈은 부실공사로 이어져 주민생명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주민들은 관심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단 임원 중에는 주민대표에게서 상품권을 받는 재미로 그 일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김 목사는 아파트의 문제점을 글로 써서 세대별 우편함에 넣었다. 얼마 후 그는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했다. 담당 형사는 그에게 주민대표의 비리를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증거를 대지 못하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돼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수사해 보면 바로 진실을 알 수 있는 아파트의 고질적이고 일반적인 부정이었다.
증거를 국민인 그에게 가져오라고 한다면 경찰은 왜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담당 형사는 아파트의 부정에 대한 수사를 원한다면 별개의 고소장을 접수시키라고 했다. 그가 고소장을 써가자 사건을 맡은 형사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형사는 다시 써오라고 고소장을 반려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사건은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왜 수사가 안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담당 형사는 다른 사건이 바빠서 미루어 두고 있다고 했다. 형사는 다시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는 관련된 자백진술서를 받아 담당 형사에게 가져다주었다. 담당 형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좀 더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형사가 아니라 판사 같았다. 경찰 수사라는 게 묘했다. 진실은 분명해도 증거를 대지 못하면 허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걸 법치주의라고 한다고 했다.
결국 김 목사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부정을 알려도 증거를 대지 못하면 거꾸로 처벌을 받는 게 현실이었다. 그는 허위가 진실이 되고 진실이 허위가 되는 법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법이 바뀌어 경찰이 수사의 주체가 됐다. 고소의 대부분인 사기 사건이나 민생범죄는 이제 검찰의 관할이 아니다. 경찰이 사건을 뭉개면 사실상 형사사법절차는 마비된다. 변호사를 하다 보면 담당 형사의 전문성이나 인격이 부족한 걸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고소대리인인 변호사가 담당 수사관에게 법리 특강을 하면서 그게 왜 죄가 되는지를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 각 분야가 워낙 다양해졌다. 담당 수사관들이 고소장에 써있는 분야에 대해 기본용어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형사에게 기본사실을 이해시키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기도 했다. 수사란 날카로운 질문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모순을 유도해야 하는데 뭘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다 보니 수사관들도 사건에서 도망하고 싶은 것 같았다. 더러 비뚤어진 인격의 수사관도 있었다.
고소를 당한 한 대학교수와 함께 경찰서 수사과에 간 적이 있었다. 변호사로 입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담당 형사가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내뱉었다. “누구는 공부 잘해서 변호사가 되고 나는 공부 못해서 형사가 됐네.”
그의 콤플렉스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가 덧붙였다. “변호사가 없으면 조서를 잘 써주고 옆에 붙어 앉아 있으면 나쁘게 만들 거야. 그게 내 권한이니까.”
경찰이 염원이었던 독립된 수사권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뒤틀리고 실력 없는 수사관이 현장에 있으면 경찰의 위상이 흔들리고 법치주의가 불신을 받게 된다. 국가라고 하는 추상적인 개념은 주민센터 직원과 경찰서의 고소를 담당한 형사에 의해 구체화된다. 그들의 행동으로 국민들은 국가의 온도를 체감할 수 있다.
수사권은 경찰조직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일선의 담당형사가 성실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핑계를 대고 고소장을 반려하거나 자기가 편하자고 증거를 가지고 오라면 안 된다. 그 자체가 직무유기다. 겸손하고 성의 있는 경찰 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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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