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 과정의 책임을 지는 제작자 입장에선 불안감을 영화에 참여하는 투자자, 스태프, 배우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래서 현장에 가면 가장 많은 농담을 한다.
혹 화가 나거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스태프나 배우 앞에서 내색하지 않는다.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에게도 마음 좋은 형처럼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격려를 한다. 배우나 스태프 어깨를 두드려주고 수고한다는 고마움을 전한다. 맛난 것을 사주려고 한다. 영화에 참여하는 동료들 사기 진작에 많은 신경을 쓴다.
배우들에게는 “편집본을 미리 봤는데 영화가 너무 잘 나오고 있어. 이거 아무래도 크게 흥행할 것 같아”, “오 당신의 연기가 진짜 최고야. 팔에 소름이 돋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라고 칭찬한다.
각 분야의 스태프에게도 “촬영이 너무 수려해서 한국 영화 아닌 줄 알았어”, “이게 정말 당신이 디자인한 미술이야? 너무 만족해” 등 구사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고 그들을 격려한다. 투자사 동료들에게도 “이 영화 무조건 흥행할 거야. 걱정하지 마. 아마 당신 내년에 승진할 것 같아”라는 덕담을 한다.
이러면 동료들이 아주 좋아할 줄 알았다. 모두 다 행복해 할 줄 알았는데 많은 동료가 내 이런 행동을 보면서 “대표님, 너무 과장이 심하세요”, “대표님 아직 다 찍지도 않았는데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에요?”, “대표님이 막 칭찬하면 오히려 저희들은 안 믿겨요. 자중하시고 좀 진정하세요”라고 오히려 자제를 요청했다.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 친구들이 왜 이러지? 내 모든 칭찬을 오버나 과장이라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 촬영장에 가면 근엄(?)하게 모니터를 보면서 아무 말도 안하고 진지하게 있었다. 스태프와 배우들을 만나도 식사는 잘하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정도만 물어보곤 그들이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자중하고 자제했다.
이런 날이 며칠간 계속됐다. 어느 날 주연배우, 투자사 관계자가 촬영이 끝난 뒤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의를 했다. 그래서 촬영장 근처 식당에서 주연배우 두어 명, 투자사 관계자들과 맥주를 곁들인 조촐한 식사를 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주연배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혹 우리 영화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혹시 편집본 보시고 마음에 안 들거나 모자란 점이 보이나요?”
투자자도 내게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대표님 혹시 영화가 대표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찍히지 않고 있나요? 저희 잘 가고 있는 건가요?”
주연배우와 투자자의 걱정 어린 물음에 깜짝 놀랐다. “아니 우리 영화 정말 잘 가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해? 매일매일 편집본 보고 있는데 너무 잘 나와서 오히려 걱정”이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주연배우와 투자자가 “정말이냐”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우리 영화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거죠? 근데 왜 대표님 현장에 와서 전처럼 '영화 잘되고 있어. 걱정하지 마, 야 이거 영화가 너무 잘돼서 오히려 걱정이야!' 이런 말씀을 안 하세요?”
그래서 답했다. “아니, 당신들이 나보고 너무 오버하지 말고 과장하지 말고 자중하라면서? 당신들 말 듣고 대표답게 진중하고 신중하게 행동한 거잖아.”
그렇다. 감정은 전이된다. 특히나 결정권을 가진 사람, 책임이 있는 사람의 감정은 구성원들에게 당연히 전이되게 마련이다. 내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제작자인 내가 좀 오버하고, 과장하고, 허풍을 떨어도 사실은 그게 안심이 되는 거였다. 생각해보자. 집안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매일 한숨을 쉬고, 먼 산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있으면 그 집안의 자녀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술 한잔하고 서로 어깨동무하고 자식들 앞에서 입맞춤이라도 한번 하면 자녀들은 “에이…민망해요”라고 해도 안심을 할 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온 국민이 힘들다. 어렵고 괴로운 상황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이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싸운다면 국민은 불안해한다. 싸우지 말고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고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어깨동무하고 막걸리라도 마시면서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 함께 국민을 위해 힘을 내보자 하며 오버하고 과장해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화합’이란 허풍을 떨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