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이미지 속에서 살고 있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은 가상현실이다. 가장 오래된 시각적인 가상현실은 회화다. 회화는 이미지의 힘으로 모든 예술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가상현실은 인터넷이다. 현대인에게는 만능 해결사 노릇을 하는 존재로 군림한 지 오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서 이미지는 생성되고 확장하고 소멸한다. 이제 실체, 실존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것 같은 추억거리쯤 되지 않았을까. 이렇듯 위험한 생각이 서슴없이 드는 것은 이 시대가 이미지에 너무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스컴은 이미지의 힘을 만들고 인터넷은 이를 확장한다. 현대인은 이 두 가지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생각을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의 감성까지도.
이미지의 꽃을 ‘스타’라고 부른다. 연예인이든 스포츠맨이나 예술인, 정치가 등 모든 분야에서 이미지에 힘을 얻어 스타가 된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규정한다. 그래서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재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진짜가 아니다. 스타의 이미지가 본 모습과 다른 것처럼. 가짜가 진짜를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구인성이 찾아가는 작업의 핵심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미지의 또 다른 모습을 파헤치는 것이다. 가상현실 뒤에 숨은 실존을 향한 도발적인 행보다. 이미지 만능 시대에 웬 뚱딴지 같은 소릴까 하겠지만, 적어도 순수예술만큼이라도 이런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고집에서 나온 작업이다.
그의 화면에는 드러난 이미지와 숨어 있는 이미지가 함께 있다. 더블이미지가 한 화면에서 교묘한 시각적 효과에 의해 겹쳐 있는 셈이다. 그래서 회화의 매력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착시 효과를 만들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구인성의 회화는 담긴 내용의 심각성보다 착시 효과에 의한 시각적 관점이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기발한 방법론 때문에 ‘골판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회화 영역을 개척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골판지 내부는 ‘U’ 자형으로 반복적인 요철 구조로 돼 있다. 작가는 이런 구조를 활용해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그려 넣는다.
골판지 위에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 위에 칼질을 해 마치 텔레비전 주사선 같은 효과를 만든다. 그리고 칼질로 뜯어낸 골판지 안쪽의 요철 부분에 변화를 주어 다른 이미지를 새겨 넣는다. 이렇게 새겨지는 이미지는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을 스쳐 지나면서 보면 서서히 드러난다. 마술처럼. 움직이는 이미지가 보이는 그의 작업은 디지털 감성 회화인 셈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