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도 제대로 굴러가면 이상하지”
▲ 국정원 요원들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묵고 있는 호텔에 잠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사진은 국정원 전경. |
그렇다면 국정원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원로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일요신문>은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A 씨를 어렵게 만나 이번 사건에 대한 그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 속에 드러난 국정원의 총체적인 문제점에 대해 요목조목 따졌다.
지난 2월 24일 기자는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A 씨를 어렵게 만났다. 그는 1999년 퇴직할 때까지 국정원에서도 핵심 요직으로 꼽히는 대공수사 파트에서만 오랜 기간 몸담았던 공작 전문가였다. 그는 “원칙적으로 퇴직한 입장에서 이러한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무엇보다 국정원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할 말을 하는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입을 떼기 시작하면서 그는 2월 16일 오전에 있었던 인도네시아 특사단 객실 잠입사건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A 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어설픈 공작이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물론 국익을 위해서 이러한 작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행위 자체에서부터 방법까지 모두 틀렸다. 제대로 된 작전이었다면 직원들이 직접 작전에 투입되는 것보다는 안전을 위해 주변 협조자를 활용했어야 한다. 국정원의 사후 대처능력도 미흡했다. 이럴 경우 무조건 모르쇠로 나갔어야 하는데 모든 것을 국정원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정보공작 기관이 이래서야 되겠나. 중간에 정보 홀딩도 안 되고 경찰까지 신고된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매우 초보적인 대응이다”라고 쏘아붙였다.
A 씨는 또 이번 작전의 중요도를 볼 때 차장급은 물론 원세훈 국정원장까지 사전 보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원세훈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원세훈 국정원장은 물론 문제가 있다. 그 사람은 태생적으로 행정관료 출신이지 정보공작통이 아니다. 전문성이 결여된 사람이다”며 ‘원세훈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더 나아가 A 씨는 이번 사건을 단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국정원이 안고 있는 총체적인 병폐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먼저 그는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국정원의 독립성 문제를 꼽았다. 그는 “한국의 국정원은 다른 국가의 정보기관과 다르게 독립성이 없다. 대통령 직속이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을 너무나도 많이 받는다. 일종의 시녀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정원의 인사라인 자체가 바뀌지 않나. 지역주의에 큰 영향을 받고 전문성보다는 인맥에 영향을 받는 것이 한국의 국정원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현재 원세훈 원장을 봐라. 그는 MB(이명박 대통령)가 서울시장 시절 부시장을 역임한 행정 관료다. 그 밑에 구성된 간부들 역시 비슷하지 않겠나. 최소한 정보맨은 15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된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기관은 결국 직원 전체의 자질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보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결국 인사 난맥으로 이어지고 전문성과 실력을 겸비한 우수한 인재들을 장기적으로 양성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에 A 씨는 “이번 사건 역시 이러한 병폐적인 국정원의 환경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어설픈 작전은 정보공작원으로서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다른 무엇보다도 오로지 개개인의 실력과 전문성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또 지나친 공개주의를 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 역시 일이 벌어진 지 며칠 되지 않아 국정원 직원이 범인으로 밝혀졌고, 이를 국정원이 인정하는 꼴이 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정보에 대한 홀딩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되겠냐는 비판 여론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A 씨는 “정보기관은 정보기관다워야 한다. 현재 국회 답변이나 언론에 대한 정보공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지나친 공개주의는 정보기관의 역할과 위신에 큰 해가 될 수 있다. 지난 과거와 비교해도 문제가 심각하다. 예전에는 그나마 국정원에 대한 주변 호응도가 매우 높았다. 요즘은 국정원의 정보공개가 많이 이루어지면서 호응과 협조는커녕 오히려 오해의 소지만 더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가의 정보기관은 나라의 국익을 위해 필히 존재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나 큰 이견이 없다. 더군다나 현대와 같은 정보화 시대에 국정원의 존재는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주변 곳곳에서는 이번 사건을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A 씨 역시 앞서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국정원의 쇄신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난 이번 사건이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국정원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라고 본다. 특히 중간 간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부터의 개혁보다는 중간 간부들이 자체적인 개혁을 주도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국정원 직원 ‘특사단 잠입 사건’재구성
무기 팔려다 ‘얼굴’ 팔렸다
지난 2월 15일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한국-인도네시아 양국 간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특사단에는 장관급만 5명이 포함되었으며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이번 방문에는 FTA추진 원칙에 대한 대화 등 단순한 경제적 논의뿐만 아니라 고등전투기 T-50 수출이라는 중요한 국가적 세일즈 협상이 걸려있었다. 그 어떤 외빈 방문 일정보다도 중요도가 높았다.
그런데 특사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당일(2월 16일) 엉뚱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특사단이 머물고 있는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 내에 남성 2명과 여성 1명으로 구성된 괴한이 침입한 것이다. 신원미상인 이 세 명의 괴한은 특사단장 라자사 경제조정장관의 측근 아크마트 드로지오 보좌관(40)이 머물고 있던 1961호로 향했고, 잠긴 방문을 열어 객실에 침입했다. 하지만 이 괴한들은 객실로 돌아온 아크마트 보좌관과 마주쳤다. 그들은 당시 노트북 컴퓨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T-50 훈련기의 협상 자료가 들어있는 노트북이었다. 당황한 아크마트를 뒤로한 채, 이 세 명의 괴한은 애써 태연한 척 노트북을 돌려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오전 9시 27분경이었다.
특사단은 사건이 벌어진 후 당일 11시쯤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을 담당한 남대문경찰서는 문제의 노트북과 CCTV 녹화장면을 확보한 뒤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돌연 특사단 측은 경찰조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노트북 내 정보접근을 거부한 채 ‘이의제기포기서’를 작성하고 18일 출국했다.
특사단 객실 잠입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무엇보다 아무나 알 수 없는 특사단의 방한일정을 간파했다는 점과 경호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특급호텔의 객실에 괴한들이 유유히 잠입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다. 결국 여러 특이점과 사건 정황에 미뤄 범인은 단순 절도범이 아닌 국정원 3차장 소속 정보산업팀 요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20일 이후 경찰과 롯데호텔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국정원의 이번 실수를 ‘3류 스파이짓’이라며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여전히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이번 사건에 대해 ‘국익’을 거론하며 쉬쉬하고 있고,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책임자 문책론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모든 것이 오해’라며 오히려 우리 정부를 두둔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국이 상호간의 실익을 담보로 이 사건에 대해 모종의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무기 팔려다 ‘얼굴’ 팔렸다
지난 2월 15일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한국-인도네시아 양국 간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특사단에는 장관급만 5명이 포함되었으며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이번 방문에는 FTA추진 원칙에 대한 대화 등 단순한 경제적 논의뿐만 아니라 고등전투기 T-50 수출이라는 중요한 국가적 세일즈 협상이 걸려있었다. 그 어떤 외빈 방문 일정보다도 중요도가 높았다.
그런데 특사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당일(2월 16일) 엉뚱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특사단이 머물고 있는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 내에 남성 2명과 여성 1명으로 구성된 괴한이 침입한 것이다. 신원미상인 이 세 명의 괴한은 특사단장 라자사 경제조정장관의 측근 아크마트 드로지오 보좌관(40)이 머물고 있던 1961호로 향했고, 잠긴 방문을 열어 객실에 침입했다. 하지만 이 괴한들은 객실로 돌아온 아크마트 보좌관과 마주쳤다. 그들은 당시 노트북 컴퓨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T-50 훈련기의 협상 자료가 들어있는 노트북이었다. 당황한 아크마트를 뒤로한 채, 이 세 명의 괴한은 애써 태연한 척 노트북을 돌려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오전 9시 27분경이었다.
특사단은 사건이 벌어진 후 당일 11시쯤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을 담당한 남대문경찰서는 문제의 노트북과 CCTV 녹화장면을 확보한 뒤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돌연 특사단 측은 경찰조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노트북 내 정보접근을 거부한 채 ‘이의제기포기서’를 작성하고 18일 출국했다.
특사단 객실 잠입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무엇보다 아무나 알 수 없는 특사단의 방한일정을 간파했다는 점과 경호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특급호텔의 객실에 괴한들이 유유히 잠입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다. 결국 여러 특이점과 사건 정황에 미뤄 범인은 단순 절도범이 아닌 국정원 3차장 소속 정보산업팀 요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20일 이후 경찰과 롯데호텔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국정원의 이번 실수를 ‘3류 스파이짓’이라며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여전히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이번 사건에 대해 ‘국익’을 거론하며 쉬쉬하고 있고,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책임자 문책론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모든 것이 오해’라며 오히려 우리 정부를 두둔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국이 상호간의 실익을 담보로 이 사건에 대해 모종의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