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연히 한국인 대표팀, 불러만 주세요”
▲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추신수와 첫 만남서 둘다 안타
―최현 선수를 만나기 전에 추신수 선수와 인터뷰를 했었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 경기 때 처음 얼굴 보고 무척 반가웠는데, 최현이 영어를 너무 완벽하게 구사하는 바람에 더 다가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
▲나도 처음에는 ‘형,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고 어설프지만 한국말로 대화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말을 잘할 줄 모르니까 신수 형이 영어로 대답해 주셨다. 한국말도 어눌한 데다 내가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여기까지 올라올 때 롤 모델로 삼았던 분이 추신수 형이다. 내 입장에선 그런 하늘같은 선배를 직접 만나봤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가슴 떨린 감동이었다. 만약 내가 한국말을 잘했다고 해도 신수 형 앞에선 그냥 ‘어버버’했을 것 같다(웃음).
―지난해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추신수 선수를 상대팀 선수로 만났다. 첫 만남에서 둘 다 안타를 쳤는데.
(9월 15일(현지 시간) 추신수와 최현은 클리블랜드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맞대결에 선발 출장해서 나란히 1안타씩을 기록했다. 최현은 1회 초 2사만루 기회에서 좌전 안타를 뽑아내 2타점을 올렸고, 추신수는 4회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우전 안타를 기록했다. 경기는 에인절스가 7-0으로 승리했다)
▲그날 경기는 빅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출장한 경기였다. 9월 8일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 후 9월 11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후 9월 15일 경기에서 선발 출장한 것이다.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우상인 신수 형과 함께 경기를 치르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난 빅리그 데뷔 후 첫 안타를 쳤고, 우리팀 투수가 제레드 위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클리블랜드 선수들을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 중이었다. 그 노히트노런 피칭을 안타로 무너뜨린 사람이 신수 형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상당히 흥분되는 상황이었다.
―추신수 선수가 본격적인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 최현 선수와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3월 중순 정도 마이너리그 캠프에 합류하는 한국 선수들과 다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떤가.
▲나야 당연히 오케이다. 신수 형이 내일 만났음 하셨지만, 우리 가족들이 날 보러 이곳으로 오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다른 선수들과 다 같이 만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나도 전에 정영일이랑 함께 지내면서 한국 야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나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개막전 로스터 진입 예상
―올 시즌 스프링캠프는 최현 선수에게 남다른 의미를 전하는 것 같다. 벌써부터 언론에서는 개막전 로스터 진입을 예상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빅리그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이번 캠프는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특별한 변화를 주기보다는 작년 캠프에 임했던 자세로 이번 캠프를 치르고 싶다.
―그동안 에인절스의 주전 포수였던 마이크 나폴리가 트레이드됨으로써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예상한다.
▲음, 내 생각에는 에인절스 팀에는 좋은 포수들과 유망주 선수들이 많은 것 같다. 뭐랄까…, 빅리그 잔류 여부는 내가 결정한 부분이 아니지 않나. 굳이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훈련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이 나한테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자, 다시 한 번 시간을 거슬러 지난해 메이저리그 데뷔했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에인절스 입단 당시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으로 들어왔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비교적 빠른 빅리그 데뷔라는 얘기도 있었다.
▲처음에는 게임을 뛰지 않고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는데, 관중들부터 경기장 시설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마이너리그 때와는 크게 달랐다. 9월 11일, 당시 마쓰이 히데키 선수의 대타로 생애 최초의 빅리그 타석에 들어섰다. 대기 타석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그제야 비로소 긴장이 되고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9월과 10월에 느낀 메이저리그가 오프시즌 동안 게을러지지 않고 훈련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됐던 것 같다.
―좀 흔한 질문일 것 같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점은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다. 특히 투수들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꾸준히 던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빅리그로 승격되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빅리그에 올라가서 본인 뜻대로, 본인이 마이너리그에서 하던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2006년 LA 에인절스 입단 후 4년동안 겪은 마이너리그 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
▲입단 후 계속해서 허리와 어깨수술,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독히 아팠었다. 한마디로 ‘힘들었다’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재활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내 자신을 하루하루 조금씩만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건강한 몸으로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그 악몽 같았던 시간들을 버텼다. 너무 힘들었을 때는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 이겨냈던 과정들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이너리그 시절 정영일 선수와 굉장히 친했던 걸로 알고 있다. 최현 선수한테 정영일은 어떤 존재인가.
▲영일이는 나한테 친구라기보다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내가 영일이한테 별명을 하나 지어줬다. 당시 부모님께서 즐겨보시던 드라마가 생각이 나서 영일이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바로 ‘임꺽정’이었다. 하하.
―한국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보다는 당연히 영어가 편할 것이다. 혹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해 본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내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난 당연히 한국 사람이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 않나. 한국말이 많이 부족하지만 항상 더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소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인가.
▲물론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뉴스를 봤을 때가 박찬호 선배님이 일본의 프로팀과 계약했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LA 에인절스에 입단했을 당시 박찬호 선배님이 나한테 정말 잘해주셨다. 김병현 선배님과도 식사한 적이 있었다. 두 분 다 나한테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는데, 모두 일본으로 옮겨가신 게 신기할 따름이다.
―만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같은 국제 대회를 앞두고 한국대표팀으로부터 제의가 온다면 응할 생각인가.
▲당연한 일 아닌가. 나한테는 너무나 영광스런 일이 될 것이다. 2013년에 WBC대회가 열리는 걸로 알고 있다. 정말 그 대회에 꼭 참가하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또 다른 소망이 있다면 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을 위해 뛰는 것이다.
미국 이름 ‘행크 콩고’는
―미국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행크 콩고(Hank Conger)다.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
▲행크 콩고는 잘 알려졌다시피 할아버지께서 당시 유명했던 야구선수 행크 에런을 좋아하신 나머지 나한테 지어주신 일종의 별명이었다. 아직도 내 여권에는 ‘최현’이라고 적혀 있다. 자라면서 사람들이 ‘행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동양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겠다. 굳이 왜 야구선수라는 직업을 택했나.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야구를 직업삼아 매일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다. 단지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내가 이 일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45세까지 건강하게 선수로 뛸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 끔찍한 사고를 당해 부상으로 팀에서 방출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부분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런 것 역시 야구의 일부분이다.
한때 룸메이트였던 정영일을 통해 한국의 걸그룹에 대한 소식과 노래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는 최현.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손담비와 원더걸스라고 말한다. 손담비를 거론할 때는 노래 ‘미쳤어’를 흉내 내는 바람에 한참을 웃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건강한 마인드’에 푹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애리조나=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