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40>
▲ 강화군 마니산 기슭에 위치한 정수사 대웅보전의 꽃창살. 화병에 연꽃과 장미를 담아놓은 형태로 조각돼 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조선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창살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빗꽃창살이다. 빗꽃창살은 45도로 비스듬히 짜인 빗살의 교차점 위에 꽃을 조각해 넣은 것을 말한다. 꽃과 잎을 구분해서 색을 입히고, 선을 그어서 명확성을 나타냈다.
내소사 대웅보전 정면 여덟 짝의 창호에는 빗꽃창살이 가득하다. 연꽃, 모란, 국화꽃이 조각되어 있다. 꽃 문양이 간살 위에 떠 있어서 입체적이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꽃잎이 살아 움직여 꽃밭에 와 있는 느낌이다. 원래 채색이 되어 있었으나 세월에 씻겨, 엷고 희미하게 속살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무 빛깔과 나뭇결(木理)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문가는 16~17세기 목공예 양식이 잘 드러나 있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꽃창살이 내소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사찰 창살(문살)에는 목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꽃창살이 많다. 이들은 창호지를 바르기 위한 버팀대라는 실용적 기능을 뛰어넘었다. 예술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인천 강화 정수사 대웅전 꽃나무살은 모란과 장미를 꽃병에 담아놓았다. 꽃나무살은 보통처럼 가로살, 세로살, 빗살 위에 새기지 않고 꽃나무를 통째로 새겨 짠 것을 말한다. 보통의 창살처럼 연속적인 형태를 띠지 않고 화병에 연꽃이 꽂힌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좌우 두 쌍의 문양이 대칭을 이룬다.
선암사 원통전 꽃나무살(모란 꽃문)은 투각기법을 썼다. 투각기법이란 ‘묘사할 대상의 윤곽만을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은 파서 구멍이 나도록 만들거나, 윤곽만을 파서 구멍이 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위로 촘촘하게 뻗어 오른 줄기 위에 모란꽃과 잎사귀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꽃창살은 일반적으로 궁궐의 정전(正殿)과 주요 전각(殿閣), 사찰건축에서 쓰였다. 정교하고 화려한 꽃창살을 장식함으로써 장엄함과 신성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반 민간에서 사용됐던 용자(用字)살, 아자(亞字)살, 띠살같이 단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과는 달랐다.
꽃창살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나타났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정자살, 빗살문 등 단순한 창살이 일반적이었다.
꽃창살에 새겨진 연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오니(汚泥)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낸다고 해서 청정무구를 상징한다. 모란은 탐스러운 생김새와 향기 때문에 부귀, 화목, 풍요, 영광을 상징한다. 국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군자의 기개, 절개, 지조를 지녔다. 매화, 도화(살구꽃), 해바라기 등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관념적인 형태의 꽃도 새겨졌다. 잎사귀는 모란이나 국화 잎사귀가 대부분이었다.
꽃병 문양은 보배가 가득 찬 병(寶甁), 바라는 것이 한껏 채워져 가득해졌다는 만병(滿甁), 불로불사의 묘약이 가득한 감로병(甘露甁), 상서로운 기운이 담긴 길상병(吉祥甁), 뜻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여의병(如意甁)을 의미했다.
꽃창살은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때로는 화려함을, 때로는 단아함을, 때로는 조화로운 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무심코 들른 산사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상관없이 피어나는 모란꽃, 국화꽃, 연꽃, 매화, 살구꽃을 문득 만난다면, 그래서 꽃비가 내리고,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이 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어찌 넉넉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