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두 호랑이 ‘종말’ 올수록 커지는 ‘간극’
▲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달 18일 두 달여 만에 개회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 내에선 최고 실세들 간 신경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내년 4월에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이 의원과 이 장관 세력의 정면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대책 마련을 주장하는 참모진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돼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득-이재오’ 세력 간의 파워게임, 그 내밀한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2월 22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의 ‘정계은퇴’를 촉구했다. 이로 인해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박 원내대표 연설에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여기에 민주당도 맞받아치면서 고성이 오갔던 것이다. 당시 박 원내대표를 향해 소리를 높였던 강석호·장제원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상득 의원계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 원내대표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강석호·장제원 의원에게 “조용히 좀 하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날의 해프닝을 두고 최근 이재오 장관 진영에서 불거지고 있는 ‘이 의원 비토론’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사실 현 정권 출범 이후 이 의원과 이 장관의 관계는 그리 ‘평탄한’ 편이 아니었다. 간혹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 지만 양측이 수시로 물밑에서 이전투구를 벌여왔다는 게 정치권 및 여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 의원에 비해 대선 논공행상에서 소외됐다고 판단한 이 장관 측은 ‘동병상련’ 처지였던 소장파와 손을 잡고 2008년 3월 ‘55인 반란’을 주도했다. 당시 ‘이재오+소장파’ 연합군은 이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주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석 달 뒤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현 지식경제부 2차관)과 류우익 전 비서실장(현 주중대사) 퇴진을 이끌어낸 ‘권력사유화 논쟁’ 역시 이 장관 측과 소장파의 ‘합작품’이었다. 2009년 7월엔 소장파가 국정쇄신을 외치며 이른바 ‘7인 성명’을 발표해 이 의원의 ‘2선 후퇴’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장관과 소장파의 계속되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이 의원 입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 관료는 “이 의원은 이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하며 주요 현안과 인사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대통령과의 거리를 힘의 척도라고 봤을 때 여권 내에서 이 의원을 능가할 인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와대 국정원 총리실 검찰 등에 측근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도 이 의원 영향력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권력의 균형추가 이 의원을 향해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권 내 계파 간 싸움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여권 내에선 ‘더 이상 이 의원 적수는 없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와 관련, 이 장관 라인으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출신 의원은 “이 의원을 의식했다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산적한 과제들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특임장관 취임 후 예산안 4대강 개헌 등으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면서 “하루 이틀 쌓인 감정도 아니고 (이 의원 측과) 쉽게 풀리겠느냐”고 반문했다. 화해 기류가 조성됐다기보다는 일시적인 ‘휴전’ 상태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 장관 측 내부에서는 이 의원 핵심측근인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과 임태희 비서실장에 대한 반감이 감지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이재오계 의원은 “솔직히 박 차관이나 임 실장은 이 장관과 ‘급’이 다르지 않느냐. 대선캠프 때도 그랬고…. 그런데 둘이 이 의원을 등에 업고 정권 실세로 불리더니 이제는 이 장관조차도 무시하는 것 같다. 명확히 서열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불씨’를 안은 채 한동안 잠잠했던 이상득-이재오 양측 간 불협화음은 두 달여 전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내정을 놓고 다시 점화됐다. 이 장관과 가까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연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인사청문회가 무산되자 정치권에서 이 장관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견해가 대두된 것이다. 당시 이 장관 측의 ‘타깃’은 청와대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임태희 비서실장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비공개 회의석상에서는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순 없는 것 아니냐”며 정동기 후보자의 낙마 사태를 여권 핵심부 내 권력싸움으로 이해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안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항명’을 사죄하며 어느 정도 수습됐지만 이 의원 측에서는 “어떻게 이 장관이 그럴 수 있느냐”며 성토하는 기류가 역력했다고 한다.
반면, 이 장관 측은 이 의원과 측근들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감사원장 인사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이를 모면하기 위해 사태를 권력 다툼으로 변질시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이 장관은 자신이 사활을 걸고 있는 개헌 추진에 같은 친이 주류인 이 의원이 동조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의원 최측근인 임태희 비서실장은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개헌 동력을 상실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에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 측은 “개인적 욕심 때문에 개헌하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의원과 임 실장이 너무 비협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의원과 이 장관 측 사이의 감정 대립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귀국(2월 24일)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야권과 언론에서 한 전 청장과 이 의원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고급정보 유출 진원지로 이 장관 측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 전 이미 여권 핵심 관계자로부터 한 전 청장 귀국 사실을 전해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득계 인사들은 이 장관 측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 측 한 현역 의원은 “예전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 발탁에 이 의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담긴 청와대 보고서가 이 장관 최측근으로부터 민주당에 건네졌다는 제보가 있었다”면서 “한 전 청장 귀국 전후 이 장관 측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상득-이재오 양측의 힘겨루기는 공기업 및 주요 기관 인사에서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만 공공 기관장 132명과 감사 125명 등이 교체될 예정인데, 이 대통령이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희망자들로선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또한 국정원장, 검찰총장과 몇몇 부처 장관직도 교체가 유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권 실세인 이 의원과 이 장관에겐 최근 ‘민원’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대선캠프 출신 여권 고위 관료는 “아직도 챙겨주지 못한 대선공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이 장관 측이나 이 의원 진영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리는 한정돼 있고 사람은 넘쳐나니 양측이 갈등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 일각에선 그동안 인사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던 형님 측이 ‘수성’에 성공할지, 아니면 이 장관 쪽의 ‘역전’이 가능할지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기도 하다.
정치전문가들은 이 의원과 이 장관의 ‘대립’을 내년 4월 총선과 연관 지어 바라보고 있다. 어느 쪽이든 파워게임에서 승리할 경우 공천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호석 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은 “이 의원과 이 장관의 공통분모는 ‘정권 재창출’이다. 다만 그 동기는 다르지 않겠느냐. 이 의원은 대선에서 승리해 동생인 이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또 ‘퇴임 후’를 보장받는 것이 최대 목적일 것이다. 이에 반해 이 장관으로선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게 더 큰 과제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양측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큰 명제 앞에 손을 잡을 순 있겠지만 결국은 다른 길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