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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탁 통합거래소 초대 이사장 내정자 | ||
지난 98년 증권가의 최대 이슈였던 ‘냉각캔 사건’이 6년 만에 화제의 중심에 오르고 있다. 최근 통합선물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이영탁씨 때문.
이 내정자는 딱히 이 사건과 연관돼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냉각캔 사건’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마다 늘 거론됐던 사람이다. 냉각캔 사건의 주체는 ‘미래와 사람’이라는 회사였고, 이 회사가 나중에 KTB네트워크를 인수했다. 당시 이 내정자는 KTB네트워크의 대표이사 회장이었다.
지난 9일 통합거래소 추천위원회는 초대 이사장 후보로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초대 이사장 자리는 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말이 많았던 자리였다.
이 자리를 두고 낙하산 인사, 각종 로비설, 정치권의 입김 등 구태의연한 얘기도 끊이질 않았다. 추천위는 이런 잡음을 의식이라도 한 듯, 속전속결로 이영탁씨를 추천했다.
추천위는 이 내정자의 이력이 전체적으로 무난하다는 입장이었고, 또 노조 역시 그에 대해 별다른 반감을 갖지 않는 듯했다. 실제로 이 내정자의 이력을 보면 추천위의 이 같은 결정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내정자는 대구상고, 서울 상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공무원 출신. 그는 지난 69년 행정고시에 합격(7회)해 이듬해인 1970년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첫 직장은 경제기획원 예산국 사무관이었다.
이후 그는 1981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실 행정관을 역임한 뒤 세계은행(IBRD)에 파견 나갔다가, 1987년 재무부로 돌아왔다. 90년 재무부 증권국 국장, 92년 경제협력국 국장 등 다양한 부서의 장을 맡았다가 95년부터 2년 동안 교육부 차관을 맡기도 했다.
그의 가장 최근 공직 경력은 지난 2월로 임기가 만료된 제7대 국무총리국무조정실장이었다. 그동안 공직 생활에서 이 내정자만큼 직함과 감투가 많았던 사람도 드물다.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그가 이번에 통합거래소 이사장에 내정된 것에 대해 적절하다는 시각이다. 한국구조조정협회(CRC) 정지택 회장은 “이 내정자는 소신이 뚜렷한데다 업무 추진력이 높아 새로 출범하는 기관장으로서 모자람이 없다”며 “과거 재무부 증권 국장 시절에도 주위의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내정자는 술을 무척 즐기는 두주불사형으로 과거부터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등 인화가 강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재무부에 재직 중이던 시절 증권국장을 역임했다는 것을 보면 현재의 통합거래소 이사장 자리와 영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냉각캔 사건’이 그 것이다.
증권가 일부에서 이번에 이영탁씨가 내정된 것을 두고 도덕성 시비를 운운하는 것도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 권성문씨 | ||
그가 취임한 지 1년 만에 한국종합기술금융은 ‘KTB네트워크’로 이름을 바꿨고, 그는 2003년 2월까지 이 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KTB네트워크는 잘 알려진 대로 벤처 1세대로 꼽혔던 권성문씨가 이끌었던 창업 투자전문회사. 권성문씨는 지난 98년 ‘미래와 사람’이라는 회사의 오너였는데, 그가 막대한 돈을 벌어 한국종합기술금융을 인수했다.
문제는 이 내정자가 KTB네트워크에 몸담았을 당시 권성문씨 등이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무더기로 쏟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98년 권성문씨는 냉장고에 넣지 않고도 음료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냉각장치 부착형 음료용기를 개발, 상용화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이 냉각캔의 이름은 ‘원더캔’이었다. 음료용 캔 외부에 별도로 냉각컵을 설치해 소비자들이 캔을 열면 1분30초 만에 캔의 온도가 4~0℃까지 떨어져, 마치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시원한 음료를 마시도록 하는 장치였다.
권씨가 이 제품의 개발을 발표하자마자 증권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종합주가지수는 300대를 전전하고 있었으나, 미래와 사람의 주가는 승승장구했다. 98년 초에는 4천원대였으나, 1년 만에 주가가 10배에 가까운 3만8천원대까지 치솟았다. 사실상 이 회사가 한해 증권시장 거래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 회사는 주가가 많이 오르자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시세차익을 남겼으나, 이 회사가 내놓은 핑크빛 미래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래와 사람이 KTB네트워크를 인수할 무렵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 99년 권성문씨는 검찰로부터 고발됐다. 권씨가 회사의 주가를 띄울 요량으로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한 ‘냉각캔’이라는 신기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권씨가 한참 검찰에 들락거리고 있을 무렵, 이 내정자는 KTB네트워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었다. 직간접으로 ‘냉각캔’ 사건이 증권가를 휘몰아치고 있을 때 이 회사의 최고위층 인사였던 것이다.
사건을 알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업계에서는 이 내정자가 냉각캔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권씨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차원에서 회사에 영입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무성했다는 것. 오랫동안 정부 관료로 지냈던 인물이 느닷없이 문제가 생긴 민간업체의 회장으로 간 배경에는 뭔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이런 의혹의 눈길이 이제 초대 이사장이라는 명함을 찍게된 이 내정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실제로 이 내정자의 힘이 작용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권씨가 이듬해인 2000년 기소유예로 풀려나 이 같은 의혹은 더 증폭됐다.
업계에서는 이 내정자가 무난히 ‘내정자’ 꼬리표를 뗄 것에 대해서는 별달리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과연 적절한 인사였느냐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