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중수부 ‘의원님들 칼맛 좀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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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규 검찰청장 |
지난해 2월 출범한 사개특위 6인 소위원회가 오랜 진통 끝에 내놓은 사법제도 개혁안의 핵심은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다. 사개특위는 공청회 및 토론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안을 마련해 4월 중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개혁안이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은 물론, 각 당 지도부가 재검토의 불가피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개혁안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보고 있는 것. 그러나 될 수 있으면 검찰을 자극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라는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집권 후반기 청와대가 가장 신경 쓰는 조직은 국가정보원, 검찰, KBS다.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이 세 곳이 등을 돌리면 치명타를 입기 때문”이라면서 “검찰 구성원들의 의견을 무시한 사법제도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검찰 개혁을 원하는 민심을 받아들여 그대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정치권 역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여권은 부정적 기류가 대다수인 반면, 그동안 중수부 폐지 등을 주장해 왔던 야권에선 개혁안 ‘강행’을 외치는 이들이 더욱 많이 눈에 띈다.
검찰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정치권을 향한 불만도 폭발 일보 직전이다.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수부를 폐지하려 하자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차라리 내 목을 쳐라”며 배수의 진을 쳤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개혁안 발표 직후 비공개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해 ‘수용불가’를 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김 총장은 “몇몇 정치인이 사법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안을 일방적으로 내놓는 게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고 한다. 김 총장은 한찬식 대검 대변인을 통해 “합의안 전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수부 폐지는 부정부패의 파수꾼을 무장해제하자는 것”이라고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김 총장은 3월 11일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가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해 현직 검찰총장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놓고 검찰 안팎에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 최고위급 출신의 한 인사는 “김 총장을 포함한 검찰 간부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번 개혁안을 지난해 청목회 입법로비 수사에 앙심을 품은 정치권의 ‘복수’로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총장 직속부대이자 최정예 엘리트 검사들이 모인 중수부를 폐지한다는 것은 (검찰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일부에선 김 총장의 강경 대응을 두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 총장이 ‘레임덕’을 막고 조직 내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검찰 직원들 사이에선 개혁안 발표 이후 “김 총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말들이 돌고 있다. 그동안 실적 부진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던 김 총장으로선 중수부 폐지를 막고 조직을 지켜낼 경우 어느 정도 홀가분하게 검찰을 떠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현재 검찰은 여러 채널을 가동해 정치권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개혁안의 문제점 등을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라고 한다. 검찰은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는 논의 자체도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개특위 소속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국회에 출입하던 검찰 직원이 지금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의원들과 ‘맨투맨’으로 만나고 있다. 본회의에 올라올 개혁안에 검찰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검찰은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 수사에도 본격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만간 중수부 주도 아래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사전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치권을 압박하는 한편, ‘중수부 무용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앞서의 검찰 최고위급 출신 인사는 “국회의 정치자금법 개정이 결국 여론의 벽에 부딪혀 무산되지 않았느냐. 검찰로선 정치권 비리에 메스를 들이대면 비슷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의 ‘전쟁’에서 검찰의 ‘선봉’은 존폐 위기에 놓인 중수부가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수부는 지난 3월 15일 부실은행으로 지정돼 영업정지 상태인 부산저축은행그룹 소속 5개 저축은행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당초 이 사건은 부산지검이 중수부 지휘를 받아 수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대형 사건을 전담하는 중수부가 직접 수사에 나서면서 그 불똥이 정치권으로 튈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중수부의 한 관계자 역시 “부산저축은행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급격하게 사세를 확장되는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가 있었는지를 확인해 볼 것”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참여정부는 물론 현 정권 인사들까지도 수사 리스트에 오를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밖에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몇몇 지방검찰청에서도 불법 대출 의혹을 받고 있는 2차 금융기관을 수사 중에 있다. 벌써부터 검찰청사 및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들 저축은행과 관련이 있는 정치인들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엔 여권 유력 대권주자의 친인척, 현직 여권 실세 의원, ‘저격수’로 꼽히는 야권 중진 등이 포함돼 있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인들의 ‘쪼개기 후원금’ 수사에도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이미 동부지검과 수원지검 등은 여권 ‘잠룡’ 중 한 명인 김문수 경기지사의 후원회 계좌로 몇몇 단체들이 거액의 후원금을 입금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서부지검에선 KT링커스 노동조합이 정치인들에게 후원한 돈에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현재 여야 의원 13명이 KT링커스 노조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검찰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불법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 명단을 넘겨받아 이미 분석을 끝마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또 다른 사건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원금 수사는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검찰로선 더욱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귀국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조사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큰 타격을 받을 것임을 여권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검찰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민주당에서 ‘정치검찰’ 운운하며 중수부 폐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수사는 예정보다 더 세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 ‘서초동’ 안팎에선 이명박 대통령 주변 몇몇 여권 인사들의 ‘X파일’을 검찰이 쫓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서울중앙지검이 얼마 전 회사 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한 LG가 3세 구본현 전 엑사이엔씨 대표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검찰청 주변에서 구 씨가 빼돌린 돈 중 일부가 이 대통령 주변의 한 인사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고개를 젓고 있으나,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구 씨를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