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손학규 연대 ‘꿈도 못 꾸나요’
▲ 이재오 특임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0월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예방해 손학규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최근 만난 친 이재오계의 한 핵심 의원은 ‘뜻하지 않은’ 말을 했다. “다음 총선 공천은 친이계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8대 때처럼 전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여전히 여권 내 최고 실세로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여의도에 그대로 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안상수 대표를 청와대에 불러 대놓고 꾸짖고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립을 하는 영남권 의원들에게 경고장을 날릴 만큼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이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표도 차기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그 덤터기를 완전히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음 총선 공천에 제한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에서는 대체로 “누가 봐도 다음 총선의 공천도 친이계와 이명박 대통령의 ‘투톱’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친이계 핵심 의원이 공천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친이계는 나름대로의 속사정이 있다. 먼저 18대 총선 때 불공정 공천 후유증을 톡톡히 앓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와 같은 호사를 누릴 공간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당내 반대세력들이 이번에는 실세들의 일방적 공천 독주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유권자들의 높아진 정치의식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의 핵심 의원은 “차기 총선은 나경원 최고위원이 주장한 대로 완전개방형인 오픈프라이머리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가 되더라도 결국 핵심 실세들의 영향력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다음 총선에는 국민들의 정치 눈높이가 일부 실세들의 밀실공천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차기 총선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친이계가 강제로 밀어붙일 수 있겠지만 그 자체로 총선 멸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여권 실세들도 어쩔 수 없이 완전개방형 공천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친이계의 이런 공천 불안감은 이재오 장관 등 여권 실세들의 힘이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표의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도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친이계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예상을 깨고 자신의 책임 아래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대선 승리가 유력하지만 총선은 한나라당에 지옥이다. 박 전 대표로서도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겠지만 원칙이 분명한 정치인인 만큼 당의 위기를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 공천에도 적극 개입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당을 접수한다면 당연히 친이계는 공중분해되지 않겠느냐. 이런 상황을 친이계가 그냥 좌시할 리는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최근 일련의 권력 갈등은 친이계를 더욱 자극시키고 있다. 분당을 재·보궐 선거 공천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강재섭 전 대표를 밀고, 이재오 장관이 정운찬 전 총리를 내세우는 과정에서 치열한 권력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지역구의 공천싸움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역학구도가 깨질 전조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함축된 의미가 크다.
임 실장은 범박계로 분류됐다가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오른 신 주류다. 그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연대를 해야만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로 불릴 만큼 ‘형님’과 친분이 깊다. 최근 들어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임 실장을 두고 당 일각에서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조기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이재오 장관 측도 긴장하고 있다. 이 장관으로서는 대권을 포기하고 당 대표에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임 실장이라는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럽다. 친이계에서야 “고작 서기관 출신이 뭘 하겠느냐”라며 애써 태연해 하지만 ‘형님’이 밀 경우 문제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상득-박근혜 연대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부터 ‘박근혜-이상득 연대설’이 간간이 나오곤 했는데, 친박인 미래희망연대 서청원 전 대표가 가석방되면서 다시 힘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친 이상득계의 한 초선 의원도 이에 대해 “내년 들어 대선 역학구도가 구체화되면 박 전 대표와 이 의원이 각각의 필요에 의해서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표에게는 대선 후보로서 당내 지지 기반의 외연 확대가 절실하고, 당내 연대를 모색한다면 이재오 특임장관보다는 이상득 의원을 선택할 것이다. 이 의원도 이명박 대통령 퇴임 뒤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나아가 향후 국회의장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 의원은 국회의장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로 정계은퇴를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의원은 이재오 특임장관과 등졌다. 그래서 자꾸 박 전 대표와의 연대에 관심이 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진퇴양난의 복합적인 상황이 친이계가 정계개편이라는 돌파구를 찾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앞서의 친이계 핵심 의원은 “총선 전에 야당을 포함한 다양한 조합의 합종연횡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친이계는 지금 모래알이다. 이재오 장관이 나가자고 하면 아무도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며 친이계의 탈당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로서는 박 전 대표 아래에서 정치생명을 유지해나갈 수는 없다. 양측이 화해하기에는 너무 크게 틀어졌다. 당연히 친이계 내부에서 “나가서 죽으나 앉아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주당과의 연대도 적극 모색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사생결단식의 전략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세력분포가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영남권과 이재오 장관 중심의 수도권이 대립하는 형국이 된 지 오래다. 민주당도 박지원-정세균 계의 호남파와 손학규 대표의 수도권파가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이계가 민주당의 일부 수도권 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신당창당이다. 당연히 박 전 대표는 영남군주로 고립된다”라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좀 더 진전된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친 이재오계 의원들이 자주 정계개편 언급을 하더라.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이재오-손학규 조합이 완성될 경우 대권은 내주더라도 총선에서 차기 집권이 유력한 박근혜 전 대표를 영남에 고립시켜 놓고 신당을 통한 내각제 개헌까지도 성사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이계의 정계개편 기대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야권의 대응과 직결돼 있다. 정치권에서는 아직까지 그 성사 가능성을 상당히 낮게 보고 있다. 손 대표는 이재오 장관과 같이 재야활동 경력이 있어 ‘정치 DNA’가 비슷해 연대에 대한 거부감은 덜하지만 한나라당 탈당 경력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친이계의 정계개편 노림수는 박 전 대표를 압박할 유용한 수단으로 꼽힌다. 박 전 대표로서는 친이계가 죽을 각오로 짐을 싸고 나갈 경우 대선 전력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의 행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도권 기반이 약한 박 전 대표로서는 친이계의 협조가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박 전 대표가 재·보궐 선거를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는 친이계와의 갈등 및 그들의 탈당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사전 예방책 성격도 있다.
역대 정계개편은 정권을 창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의 소수파였지만 결국 정권을 잡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다. 이재오 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는 현재 여권의 주류이긴 하지만 이상득-박근혜 계파에 둘러싸인 소수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친이계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덥석 물 수도 있는, 대반란극의 꿈을 정계개편에 투영시키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친이계 안상수 배척설 내막
제 집서도 천덕꾸러기 취급?
얼마 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출판기념회를 연 것을 두고 당내에서 뒷말이 자꾸 나오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지지자, 지역구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의 저서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화운동>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런데 친이계 내부에서마저 “초선도 아닌 당 대표가 후원금 모으려고 이례적으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게 말이 되느냐. 더구나 자신이 마치 6·10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양 선전하는 것도 영 어색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그는 원래 박종철 군 사건 때 사망을 확인해주는 단순한 당직검사였음에도 마치 자신이 박군 사건을 밝혀낸 의리의 검사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특히 자신을 민주화 투사로 연결시키는 것도 지금 시점에서 뜬금없는 얘기”라며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최근 안 대표는 보온병 오인 파동 등으로 당내 위상이 급격히 위축돼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여당 대표가 좀 더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는데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대통령에게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왔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잇단 말실수 등으로 자신감이 없어진 안 대표가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사퇴하는 게 여당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안 대표가 자신의 터전인 친이계로부터도 배척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의원들이 당 대표를 얼마나 우습게보면 출판기념회 개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겠느냐. 이번 재·보궐 선거 공천에서도 당 대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재오 장관과 임태희 실장만 보인다. 당 대표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런 당내 기류 때문인지 안 대표 측은 “재보궐 선거를 철저히 준비해 당 화합을 이루겠다”라며 낮은 자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