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입고 이 악문 그녀는 너무 예뻤다
▲ 이시영이 지난 16일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우승 후보 신소영(양주 백석고)을 만났다. 이날 이시영은 판정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올랐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승부욕으로 3번째 우승
“연기도 복싱도 둘 다 잘하고 싶어요. 앞으로 더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작은 얼굴, 가녀린 팔다리. 그러나 링 위에선 상대 선수를 향해 망설임 없이 주먹을 뻗는 여전사로 변신한다.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6일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7회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48㎏급에 도전장을 내민 이시영은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준결승 상대는 양주백석고 신소영(17).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꼽히는 선수였다. 이시영은 주무기인 왼손 스트레이트를 앞세워 스탠딩 다운을 얻어내는 등 1라운드부터 시합을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상대보다 10㎝가량 큰 키, 긴 팔에서 뻗어져 나오는 펀치가 일품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복싱 관계자들 모두 “왼손 뻗는 거 봐라. 정말 대단하다”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3라운드엔 상대의 반격에 몇 차례 코너에 몰리는 등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나선 4라운드, 위력적인 원투 펀치를 선보이며 판정승(13-7)을 얻어냈다.
이시영을 지도하는 홍수환 관장은 “신소영은 아마추어 중 최고로 꼽히는 선수다. 준결승이 고비였는데 잘해냈다. 오히려 결승에서 쉽게 이길지도 모르겠다”는 평을 내놓았다. 홍 관장의 예상처럼 결승은 싱겁게 끝났다. 정다래의 남자친구로 알려진 성동현의 여동생 성소미(순천 청암고·16)에게 두 차례 스탠딩 다운을 얻어낸 이시영은 3라운드 직후 RSC승(Referee Stop Contest)을 거둬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타고난 체력과 집념 그리고 복싱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홍 관장은 “(이)시영이 아버지가 군인이라 빼어난 신체 능력을 물려받은 데다 팔이 길어 커버가 좋다. 게다가 왼손잡이라 상대 선수들이 공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31세 최고령 출전자인 이시영의 신체 나이를 23~24세로 평했다. 탁월한 신체조건에 더한 꾸준한 노력은 급격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이시영이 복싱계의 문을 두드린 건 불과 7~8개월 전의 일이다. 지난해 여자 복싱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막극에 캐스팅돼 복싱과 인연을 맺게 됐다. 드라마는 무산됐지만 이시영은 다이어트를 위해 복싱을 계속했고, 타고난 승부욕은 그를 링 위로 이끌었다. KBI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 제47회 신인아마추어복싱전, 그리고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까지, 무려 세 차례 우승을 휩쓸었다. 바쁜 촬영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체육관을 찾아 꾸준히 연습했다. 부족한 연습 시간은 경험으로 보충했다. 홍 관장은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꾸준히 링 위에 올라 경험을 쌓은 덕분이다. 7개월 만에 이정도면 타고 난 거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6개월 코스 단 하루에 소화
뿐만 아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시영은 지난 12월 영화 <위험한 상견례> 촬영차 찾은 거제도에서도 강도 높은 복싱 수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백승원 코치의 소개로 ‘거제도 권투 거목’, 이강식 복싱교실을 찾은 이시영은 6개월 코스를 단 하루 만에 소화했다고 한다. 이강식 관장은 “안 그래도 방금 전 (이)시영이로부터 ‘챔피언 됐다. 감사하다’는 전화가 왔다”며 제자의 우승을 축하했다. “미트 잡는 것부터 남달랐다. 새벽까지 영화 촬영이 계속되는데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배우러 왔다. 내가 직접 스파링 상대가 돼서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는데 힘든 내색 없이 이를 악물고 하더라. 매니저가 안쓰러운지 그만하라고 말리는 데도, 잘 안 되는 부분을 다시 물어보면서 악착같이 배웠다. 얼마 전엔 왼손잡이 복서에게 필요한 기술들을 적어 보내달라고 하더라. 본격적으로 준비하나보다 했는데 결국 우승하고야 말았다.”
이번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는 이시영이 앞서 우승한 두 대회와는 수준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위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주어지는 혜택 때문이다. 복싱 관계자들은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4년 장학금을 받고 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다. 또한 한체대· 용인대 등 유명 대학 코치들이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회를 참관하러 온다. 때문에 전국 각지의 실력 있는 고교생들이 2~3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러 몰려들곤 한다. 이시영은 이런 대회에서 챔피언이 된 것”이라며 복싱계에 입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시영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데 대해 놀라워했다.
“연기도 복싱도 잘하고 싶어”
이에 대해 이시영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자세를 낮췄다. “우승까진 예상하지 못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고 영광이다. 복서로서 한참 부족한 신인인 내게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나 때문에 대회에 차질이 생긴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언제까지 복싱을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연기도 복싱도 열심히 잘해내고 싶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복서’ 이시영으로서의 추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복싱 관계자들은 이시영이 이 기세를 몰아 전국체전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홍 관장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전국체전에 출전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 본다. 워낙 체력이 좋아 33~34세까지 링 위에 오를 수 있다. 런던올림픽까지 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시영이를 통해 복싱계에 새바람이 불게 됐다. 진심으로 고맙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이에 소속사 측은 이시영의 전국체전 출전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GNG프로덕션 정광성 실장은 “일단 배우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는 게 먼저다. 다행히 경미한 외상 외엔 다친 곳이 없다고 한다. 이번 대회 출전도 처음엔 만류했지만 워낙 본인 의지가 강해 맘을 바꾸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추후 전국체전 출전에 대해서는 배우와 충분히 이야기한 뒤 결정할 것이다”면서 대답을 유보했다.
링 위의 스타로 떠오른 이시영. 그녀는 과연 영화와 복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안동=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