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흔드는 ‘문’ 거품이냐 현실이냐
▲ 민주당 손학규 대표(왼쪽)와 한명숙 전 총리(가운데),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5월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전시회에서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5일 뉴시스-모노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선 차기 주자들의 지지도가 박 전 대표 34.9%, 손 대표 16.5%, 문 이사장 8.5%로 나타났다.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8.3%), 유 대표(8.1%), 김문수 경기도 지사(6.8%)의 순이었다. 지난 4~6일 헤럴드공공정책연구원-데일리리서치의 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35.7%), 손 대표(19.4%)에 이어, 문 이사장이 8.7%로 지지율 3위에 올랐고, 유 대표(7.7%), 오 시장(6.3%), 김 지사 (5.5%),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4.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문 이사장이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 주자 가운데 2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손 대표와 유 대표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양자 경쟁구도가 ‘삼자 대결’로 재편되는 정치적 함의를 분석해 볼 수밖에 없는 양상인 것이다.
손 대표는 경기 성남 분당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 이후 나름의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민주당의 대표주자로서 부족한 정체성의 약점을 안고 있다. 유 대표 역시 잠재력이 있는 주자지만 독특한 정치 스타일과 지지층의 확장성 결여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의 차지하지 못한 야당 지지층의 공백상태를 문 이사장이 서서히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차기 대선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야당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도 여당 주자인 박 전 대표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민심의 괴리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새로운 야권 주자의 등장으로 그 간극이 줄어들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문 이사장이 대권주자로 부각되는 동력은 ‘부산’이라는 지역성과 ‘노무현 향수’라는 정치성이다. 지역적으로는 영남권에서 박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있고, 야당 지지층에서는 친노 그룹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손 대표를 필두로 정세균, 정동영 최고위원이나 유 대표 등 지난 대선에 얼굴을 내밀었던 정치인들의 식상감과는 달리 문 이사장이 야당 지지층 사이에서 참신한 인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한 방송에 출연,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경력의 소유자로 영남 지역에 상당한 신뢰와 기반을 갖고 있는 데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영호남을 아우르는 정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후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문재인 돌풍’은 민주당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단은 기대와 경계가 교차하는 듯하다. 정세균 최고위원과 가까운 김진표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은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 정치라는 게 본인의 열정이 넘쳐 ‘대통령병’에 걸려도 될까 말까하다”며 ‘문재인 대망론’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할 때도 문 전 실장은 항상 뒤에 숨지 않았느냐”면서 “문 전 실장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천성이 어디 가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들을 옆에서 관찰해보면 본인의 선택이니 받아들이는 것이지 안 그러면 견딜 수 없는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며 “대통령은 측근이 박해받고 잡혀가기도 하는 분노를 삭여야 하는데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문 이사장이 현실정치에 소극적인 기질인 만큼, 권력의지가 누구보다 강해야 하는 대권주자의 ‘체질’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권도전 의사를 밝힌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해 “손 대표가 갖고 있는 제일 큰 문제점은 정체성 문제고, 일관성 문제”라며 “문 이사장이 손 대표보다 도덕성이나 명분이나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낫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문 이사장에 대해 “대단히 경쟁력이 있는 분이고 아주 훌륭한 분”이라며 “이런 분들이 정치 해준다면 우리 야권에선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손 대표의 최대 약점이 정체성 문제임을 짚으면서, 이로 인한 야권 내 분열을 막을 수 있는 카드로 문 이사장을 꼽고 있는 것이다.
손 대표 측은 공개적으로 ‘문재인 대망론’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손 대표의 ‘대북특사론’이 문 이사장에 대한 견제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돌았다.
당초 ‘손학규 대북특사론’은 김영춘 최고위원이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대화를 거부당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야당 대표에게 대북 대화를 중재하는 특사 역할을 요청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어 손 대표가 하루 뒤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서 ‘정부가 특사를 요청한다면 수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남북 협력과 교류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바라는 정당의 대표로서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대북특사론이 증폭되는 양상이 됐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손 대표의 대북특사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이 대통령이 그런 제안을 할 리 만무하다는 관측이 다수다. 다만, 손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한 데 이어 특사론에 대해서도 여지를 열어둔 것을 두고 ‘문재인 견제’ 의미도 담겼다는 해석이 상당수다. 문 이사장이 대권주자로 부각되고, 야권통합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초초해진 심경이 그러한 돌출 제안으로 표출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문 이사장은 야권통합을 위한 이해찬 전 총리 그룹의 원탁회의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실정치 참여를 고사해온 그가 정치권의 다양한 검증을 견뎌내면서 새로운 포지셔닝을 해낼 수 있을지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