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길로 서화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법을 의미한다. 특히 배첩은 옛 서화의 보존뿐만 아니라 훼손된 서화를 복원해 되살리는 기술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적인 배첩 기술 또는 그 기술을 지닌 장인을 가리켜 ‘배첩장’(褙貼匠)이라 부른다. 오늘날에는 배첩 대신 ‘표구’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지만, 표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로, 전통 배첩의 다양한 기능을 다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서화에 대한 배첩은 중국 한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배첩 기술이 어느 시대에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병풍 그림으로 보아 적어도 4세기 중엽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배첩이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때 유교·불교·도교가 전래되었는데, 당시 경전 및 종교의식용 그림 등을 보존, 보급하면서 한국 배첩의 기초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배첩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꾸준히 발전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전문가인 ‘배첩장’이 등장할 만큼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의 공장(수공업에 종사하던 장인)에 관한 기록 등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공조에 2인, 상의원에 4인, 도화서에 2인의 배첩장이 배정돼 활동했다. 이들은 어진(임금의 얼굴 그림), 서화, 서적의 배첩뿐 아니라 복식류의 자수와 같은 장식품도 담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배첩장은 배첩을 완료한 후에 작업의 종류와 중요도에 따라 다양한 보수를 받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임금이 비단이나 말 등의 물품을 하사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천민에서 평민으로 신분을 올려주거나 관직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내각일력’과 ‘일성록’의 기록에는 배첩장이 화사(도화서에 소속된 종팔품 잡직)보다 두 배나 많은 급여를 지급받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그만큼 배첩이 중요한 작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배첩은 제작기법 및 형태에 따라 액자, 병풍, 족자, 서책의 장정, 고서화의 보존처리 등의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액자를 배첩할 때에는 비단이나 종이를 재단해 그림에 덧붙이는 초배, 재배를 거쳐 이를 건조해 액자틀을 조립하는 작업 과정을 거친다. 병풍의 한 폭을 배첩하는 경우에도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종이나 비단을 수차례 발라 서화를 붙일 틀을 만드는 기본적인 과정을 거치게 된다. 두 폭 이상 연결된 병풍을 연병풍이라 하는데, 조선의 배첩장들은 종이나 천을 각 폭의 가장자리에 엇갈리게 붙여 서로 연결하는 ‘돌쩌귀식’ 또는 ‘종이날개식’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해, 불필요한 장식으로 인해 작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또한 병풍의 뼈대가 되는 속틀을 짤 때에도 끌로 홈을 파서 서로 연결하였으며, 어쩔 수 없이 못을 사용하더라도 철못이 아닌 대나무못을 사용해 나무의 산화를 방지하고 작품의 변화를 최소화하도록 처리했다.
‘배첩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족자의 작업 과정은 비단의 재단·초배·겹배·건조·삼배·건조를 거쳐 축목(軸木)·반달(족자의 맨 위에 붙이는 나무)의 부착과 축두(족자의 양쪽 끝머리)의 마감 처리로 마무리된다. 서적의 장정은 장지(수명을 늘리기 위해 한지를 여러 겹으로 붙인 종이) 만들기, 표지 제작, 가장(가장정)하기, 최종 장정하기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또한 고서화 처리는 손상된 옛 글과 그림을 되살려내는 작업인데, 한 번 훼손되면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뛰어난 안목과 세밀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우리 전통 배첩 기술의 복원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초대 배첩장인 김표영 선생이다. 그는 1973년부터 문화재수리기능사로서 다수의 국보, 보물급 지류(紙類) 문화재를 보존 처리하는 데 참여했으며, 1996년에는 배첩장 기술 보유자로 인정받아 괘불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되살리는 데 기여했다. 그가 서화를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남달랐다. 밀가루풀을 10년 이상 공들여 삭힌 전분으로 무균 상태의 풀을 만들어 사용했고, 족자의 배첩에 적합하도록 백토가 섞인 종이를 개발해 특허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그가 작고한 이후 배첩장의 자리는 아직 수년째 비어 있는 상태다. 배첩은 흔히 ‘시간을 되돌리는 작업’이라고도 불리는데, 앞으로 우수한 배첩 장인들이 그의 뒤를 이어 우리 문화유산을 옛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참여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료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