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김정일의 열차여행에 대해 열차가 비행기보다 안전하다는 경호상의 이유, 김일성을 흉내 냄으로써 후광을 업으려는 의도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지니기도 한다. 안전 점검용 꼬마 열차를 앞세운 열차행렬하며, 차량에 적의 레이더망을 피하도록 스텔스 쉴즈(Stealth Shields)로 코팅한 것하며, 중국 내의 김일성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모습 등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집권 17년째인 김정일의 7차례 외국 여행 중 다섯 번은 중국이고, 두 번은 러시아였다. 해방 후 1994년 사망할 때까지 49년 동안 54회에 걸쳐 87개국을 여행한 김일성에 비해 김정일의 동선은 짧고도 좁다. 우리 대통령들이 5년 재임 중 대개 30차례 해외 순방하는 것에 비하면 칩거 수준이다. 그나마 지금 같은 광속의 시대에 왕조시대의 마차여행을 연상케 하는 열차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시대착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시대착오를 끝내야 할 때가 왔음을 웅변한 것이 이번 김정일의 열차여행에 대해 중국 네티즌이 터뜨린 불만의 목소리다. 김정일 열차를 위한 교통통제로 지각한 직장인과 학생들, 철로변과 도로변 경호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인터넷에다 토해 낸 불만은 김정일을 넘어 중국 정부로도 향하고 있다.
그가 항공기를 이용했다면 이번에 7박8일이 소요된 그의 일정은 민폐 끼칠 일도 없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면서도 이틀이면 끝냈을 것이다. 북한의 개방은 김정일의 개안(開眼)이 전제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그의 견문의 범위는 더 넓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항공수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 미국에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김정일은 10년 전 상해에 갔을 때 그곳의 발전상을 보고 “천지개벽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뭔가 큰 깨달음으로 북한을 개혁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었다. 10년 후의 결과는 무엇인가. 중국은 G2국가가 됐고, 그는 중국에 3대 세습과 식량을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이번 방중에서 그는 “중국의 개방선택이 옳았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대오각성을 했나 했지만 엉뚱하게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남북대화의 판을 깨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핵개발에 쓸 돈으로 전용기 한 대 장만해서, 그걸 타고 먼저 서울에 오라고 해본들 그의 귀에 들릴 것 같지 않음을 한탄한다.
한남대 교수
한남대학교 사회과학대 정치언론국제학과 임종건 교수가 이번 주부터 일요칼럼 새 필진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신문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임 교수는 <서울경제신문> 발행인과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2006년 중앙언론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