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론 ‘통합’ 분위기는 ‘사분오열’
▲ 지난 2월 민주당 손학규 대표 등 야4당 대표와 시민사회 원로들이 4·27 재보선 승리를 위한 야권연합 공동선언 기자회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근 6·15선언공동실천남측본부 상임대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노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국민참여당 이재정 대표. 연합뉴스 |
‘빅텐트론’에 대한 이 같은 제동 움직임은 지난 5월 31일 열린 민주당의 의원 워크숍에서 공식화됐다. 당시 야권통합을 모색하는 시민사회단체 ‘국민의 명령’의 문성근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야 5당이 통합해 단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즉각 호남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김동철 의원은 “사람도 A, B, AB, O형의 피를 한 번에 다 섞으면 죽는다”며 야권 통합론에 반대했다. 장세환 의원은 “야 5당은 가치와 이념이 달라 통합되는 그날부터 내분에 시달릴 것”이라며 “야권이 통합하면 필패하는 만큼 선거 연대가 효과적”이라고 거들었다. 우윤근 의원은 “야권 선거 연대는 담합 행위”라면서 “연대를 이유로 원칙 없이 특정 지역을 내놓으라는 것은 공갈 협박으로 승복할 수 없다”고 선거 연대에도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김효석 의원도 “통합하면 우리가 종북주의 등과 같은 민주노동당의 이념, 정책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호남 의원들의 반발은 야권 전체의 통합론이 현실화할 경우 지난 전남 순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처럼 야권연대를 명분으로 ‘텃밭’의 공천권을 다른 야당에 양보하라는 압력이 커질 게 분명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되고 있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이른바 ‘통큰 양보’로 야권연대를 성공시킨 것이 4·27 재보선에서 승리한 가장 큰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이해가 상충된 것이다.
호남 의원들은 손 대표가 ‘민주당의 변화’를 강조하면서 공천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결국에는 ‘호남 물갈이론’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당 개혁도 야권통합도 모두 호남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치전략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당 야권통합특위 위원장인 이인영 최고위원은 “연대하면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누구도 스스로 양보는 안 할 것”이라며 “통합하면 총선에서 160석이 가능하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도 “통합 논의에는 양당 구도로 보수와 진보가 경쟁해야 한다는 고민이 반영됐다”면서 “연대와 통합이냐를 넘어 그것(양당 구조)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고민이고 정치”라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손 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미 “대승적 대통합주의가 민주당의 노선이어야 한다”고 ‘빅텐트론’에 방점을 찍었다. “당리당략적 사고에 입각한 소통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야권통합의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빅텐트론’에 대한 적극적 찬성론자이자이지만, 진보색깔을 강화한 자신의 노선에 맞게 통합진보정당과의 합당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반면, 친노(친 노무현) 그룹과 가까운 정세균 최고위원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 문제에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손 대표의 입장에선 두 최고위원이 차기 전당대회나 대선후보경선을 겨냥한 세 불리기 차원에서 야권 통합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이 “당내에서 가장 ‘좌클릭’한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이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주장하고, 다른 세력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대승적 통합이 아니다”고 비판한 것은 이 같은 사정을 두고 한 것이다.
손 대표는 늦어도 10월까지 통합 협상을 마치고, 자신의 대선출마에 따라 치러질 연말 전당대회를 야권 통합정당 창당대회로 치르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호남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의견이 거세질 경우, ‘대통합론’이 길을 잃을 뿐만 아니라 손 대표의 대권전략에도 적잖은 노선변경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우군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세력화해 야권통합에 제동을 걸고 나오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민노당과 진보신당 간의 통합 논의도 겉으로 보면 대통합론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내부적으론 “민주당과 거리만 벌려놓았다”는 평가가 많다. 양당이 지난 1일 내놓은 통합정당 정책 합의문을 보면 내년 대선에서 ‘완주’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통합정당 건설이 아니라 정책연대와 선거연대가 이들이 추구하는 노선이다. 게다가 통합정당이 중도노선이 강한 손 대표 체제의 민주당과 통합을 목표로 한 협상에 적극적일 리 만무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손 대표의 주변에서도 대통합론에 회의적인 기류가 있다. 손 대표의 후원회장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 단일정당은 비현실적”이라며 “선거 연합 후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민의 명령’은 야권 단일정당 추진 로드맵과 운용 방안을 만들기 위한 정책기획실무협의회를 추진하고 있다. 야당들 간 연석회의나 원탁 테이블 구성을 고려하고 있다.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검토 중인 국민참여당도 야권통합과 관련한 움직임을 본격화할 태세다. 민노당·진보신당의 통합작업과 시민사회단체의 야권통합 추진 사이에서 내부 논란만 키우고 있는 민주당에게는 ‘시간’도 ‘여건’도 모두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