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력 물음표 털고 내 축구 느낌표 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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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앤캐시컵 A조 예선 4라운드 인천전에서 2골을 터뜨린 조찬호를 축하하는 황선홍 감독. 사진제공=포항스틸러스 | ||
황 감독에게 ‘어쩔 수 없이’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생각 끝에 어렵게 입을 연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프로 선수라면 프로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어차피 일이 터진 이상, 뿌리를 뽑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재발하지를 않죠. 유야무야 넘기면 또 다시 터질 수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아프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정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종일 기자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지만, 일부러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축구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화제를 바꿨다. 일단,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성적’에 대해서 물었다. 지난해 정규리그 9위였던 포항이었다. 그런데 올 시즌 초반 1위를 내달리다 얼마 전 전북현대에 1위를 내주고, 현재 2위에 올라있다. 그동안 별다른 선수 이동이 없는 상황에서 황 감독 부임 이후 달라진 변화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 배경이 궁금해진다.
“사실 포항으로 오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이전 파리아스 감독이 이뤄 놓은 업적들이 있었고, 팬들 또한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에서, 과연 제가 그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있었죠. 그러나 누구한테 보여지는 축구보다는 제가 원하는 축구를 해보고 싶었어요. 올 시즌보다는 내년을, 내년보다는 그 다음 해를 내다보고 철저한 준비 끝에 그라운드에서 모든 걸 쏟아 붓고 싶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선수들의 응집력과 의지가 대단해요. 감독에 대한 신뢰도 크고요. 그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고 싶지만, 지금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에요. 순위간 점수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방심하면 금세 내려갈 수 있거든요.”
3년간 몸담았던 부산 아이파크 시절 단 한 차례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한테는 ‘성공’보다는 ‘실패’와 연관된 단어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제가 프로 감독으로서 처음 부산과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보자’는 욕심이 있었어요. 이상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도자의 가치는 잘 차려진 밥상을 받아 먹는 게 아니라 밥상에 올릴 재료가 부족해도 음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부산 구단에서도 상당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줬어요. 젊은 지도자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면서 제가 원하는 축구를 하도록 배려해줬어요. 비록 언론에서는 절 ‘실패한 지도자’로 내몰았지만 전 그래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3년이었다고 믿고 싶어요.”
지금이야 이런 설명이 가능하지만, 황 감독은 부산 시절 성적 때문에 잠시 나쁜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고 한다.
“6연패하고 1승1무하고 4연패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제가 능력이 없는 것 같았고, 제가 생각하는 축구가 너무 이상적이었다는 자책감도 들었고, 무엇보다 다른 팀에서 방출되다시피해서 부산으로 온 선수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롭더라고요. 집이 해운대 쪽에 있었거든요. 한 번은 바닷가에 앉아서 이런 저런 고민들로 힘들어 하다가 문득 그 바다 속으로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고요.”
물론 현실로 이뤄지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황 감독이 심적으로 부대꼈다는 얘기다.
지난 5월 8일, 황 감독은 포항 선수단을 이끌고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다. 그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부산 선수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경기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렸어요. 제가 ‘부산 선수들은 전술 이해도가 떨어져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맹세코 전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었어요. 왜 부산 경기를 앞두고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그리고 그 소문들이 선수들한테 어떻게 전달돼서 포항과의 경기를 ‘전쟁’ 치르듯이 결사적으로 몰고 가는지, 정말 알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포항이 졌지만 전 부산 응원단을 향해 걸어갔어요. 그동안 부족한 절 믿고 응원해줘서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응원단측에서 인사를 안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강철 코치랑 같이 가서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땐 정말 형언하기 어려운 심정이었어요.”
황 감독은 지금도 부산 선수들 얘기만 나오면 여전히 그들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선수들이 인사를 하러 오거나 문자나 전화로 연락을 해올 때는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온다는 것.
“같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대부분 축구 인생의 기로에 있을 때 저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그들을 잘 보듬고 축구를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에 다그치며 훈련도 시켰고, 제가 갖고 있는 공격수의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발버둥도 쳤는데,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을 선수들은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수석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신분상승을 한 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을 보면서 황 감독은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고 한다. K리그의 지도자 연령층이 젊어졌고, 그런 젊은 지도자들의 열정과 노력이 경기장에서 더욱 치열한 실력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진짜 경쟁이 시작된 거죠. 이젠 선수가 아닌 지도자 신분으로 또 다른 경쟁을 펼치는 것 같아 재미있고 굉장히 흥미로워요. 팬들도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을 것 같고요.”
이름값으로 선수 생활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름값으로 감독하는 시대 또한 지나갔다. 황 감독은 이런 배경에는 팬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리한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한두 경기만 성적이 안 좋거나, 형편없는 경기를 펼칠 경우 바로 비난과 비판을 가해와요. 포항 또한 초반에는 성적을 내다가 요즘 두 게임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니까 골 결정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거든요. 팬들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기보단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해요. 하지만 주위의 목소리는 참고할 뿐, 휘둘리고 싶진 않습니다.”
포항 감독 부임 후 좋은 일과 힘들었던 일에 대해 묻자, 황 감독은 두 가지의 상반된 예를 들었다. 좋은 일로는 K리그 최고령 필드플레이어인 김기동이 여전히 포항 선수라는 사실과 힘들었던 일로는 올 시즌 함께 갈 것이라고 믿었던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팀으로 사라진 사건이다.
“기동이는 정말 대단한 선수예요. 경기장 안팎에서의 생활이 똑같아요. 모든 게 성실함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훈련 끝나고 개인훈련 때도 절대 요령을 피우지 않아요. 모든 일에 솔선수범합니다.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마흔 살이 돼서도 선수로 뛰고 있죠. 이전에 저랑 룸메이트였던 후배라 친하게 지냈거든요. 물론 지금은 감독과 선수로 만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지만, 기동이의 존재 유무가 포항의 전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선수들한테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설)기현이 얘기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현이도 저한테 말도 못하고 떠나게 된 데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겠죠. 솔직히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젠 다른 팀 선수니까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지난 5월 15일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포항은 0-2로 뒤지다 3-2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전북의 이동국은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포항의 수비 진영을 흔들어놓았다. 이 모습을 지켜본 황 감독은 “이동국이야말로 전형적인 스트라이커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포항을 힘들게 만드는 상대팀 선수지만 이동국이 갖고 있는 스트라이커의 자질은 K리그 최고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다음 전남의 지동원과 ‘포항의 미래’로 주가를 높이는 고무열을 황선홍의 뒤를 이을 K리그의 뛰어난 공격수로 꼽았다.
‘만약’이란 가정 하에 ‘이동국과 지동원을 포항으로 영입한다면?’이란 질문을 던졌다. 황 감독의 얼굴이 금세 밝아지면서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어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제가 업고서라도 모셔와야죠. 요즘 포항이 골 결정력 부족으로 고생 중인데,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림이네요 하하.”
포항=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