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던 ‘외대’ 고수들 여전히 ‘무적’
▲ 대학 바둑의 부활을 실감케 한 이번 대회는 외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왼쪽 사진의 오른쪽 국수는 70~80년대 외대 바둑 전성기를 이끌던 김원태 씨. |
대학 동문 릴레이 대회는 한 팀의 공식 출전 선수가 5명. 5명을 어떤 식으로 조합하느냐가 전략의 포인트이며, 개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실력 못지않게 팀워크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외대는 대학 바둑에서는 전통적으로 알아주는 강호.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대학 바둑에서 외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활약했던 선수들이 한이덕 박윤서 유종수 김원태 씨 등인데, 이들로 이루어진 외대팀이 그 무렵은 가히 무적함대였다. 특히 박윤서 유종수 씨가 돋보였던 인물. 박윤서 씨는 ‘아마국수’를 지냈고 세계아마바둑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강호. 인물로 좋아 여성팬들도 많았다.
경제학을 전공한 유종수 씨는 외대 졸업 후 독일 유학을 떠났는데, 유학 가서도 바둑을 놓지 못해 유럽의 각종 바둑대회에 출전,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1980년대 ‘유럽의 마이스터’로 불렸고, 귀국해서도 결국은 본업을 제쳐 놓고 바둑 관계 일을 했다.
이번 대학동문전은 본선 진출이 20개 팀. 예선까지 합하면 43개 팀이 출전했다. 뜻밖의(?) 숫자다. 1990년대 이후 정체 현상을 보이던 대학 바둑이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1970~80년대의 모습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학바둑연맹이 결성되어 졸업생 바둑 강자들 중 사회적으로 기반을 잡은 선배들이 재학생 후배들을 격려하기 시작한 것이 첫 번째.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대학생 바둑대회가 대학OB연맹전, 대학YB연맹전 등으로 부활한 것이 또한 대학 바둑 활성화에 기폭제가 되었다. 대학 바둑대회 부활에 관해서는 한세실업(회장 김동녕)을 빼놓을 수 없다. 5~6년 전에 바둑TV 주최로 대학동문전이 처음 생겼을 때는 대회 이름이 ‘보노겐배 대학동문전’이었다. ‘보노겐’은 모발치료제 이름인데, 이후 회사 형편이 여의치 않아져 ‘보노겐배’라는 타이틀은 중단되었지만, 아직 대학 바둑이 큰 관심을 끌지 못했을 때, 시동을 걸어 준 공로는 지대하다.
보노겐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이 한세실업. 바둑TV가 대학동문전과는 마치 형제기전처럼 함께 주최한 것이 ‘고교동문전’이고, 고교동문전의 후원사는, 국내에서 인터넷서점 선두주자인 ‘YES24’인데, 한세실업과 YES24가 같은 계열의 회사인 것. 그리고 한세실업-YES24를 바둑계 고마운 후원사로 영입하는 데에는 대학바둑연맹 초대, 2대 회장을 역임한 신병식, 김원태 씨의 역할이 컸다. SBS에서 얼마 전에 정년퇴직한 신병식 씨는 서울대 대표선수로 바둑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둑열정가이며 바둑 관계 세미나-심포지엄 등의 단골사회자다.
이에 발맞추어 최근에는 한국기원도 각 대학 기우회에 여자 프로기사들을 정기적으로 순회 파견해 지도와 강의를 펼치는 등 대학 바둑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군 부대 바둑 보급에 김효정 3단이 앞장서고 있다면 대학 바둑 보급에는 이다혜 4단이 깃발을 들고 있다.
외대와 고려대에서 몇 년 전부터 바둑특기생을 뽑은 것도 대학 바둑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로기사 최철한 한해원은 외대를 졸업했고, 조한승 원성진 박정상 고근태 윤준상 이다혜는 외대 재학 중이다. 이것보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다. 여류 강자 조혜연, 영 파워의 리더였다가 지금은 미국 LA 등지에서 보급활동을 하고 있는 김명완 등은, 특기생이 아니라 자력 입학이지만, 고대를 졸업했다.
외대는 지난해까지 1년에 바둑특기생을 2명 뽑았다. 이들은 물론 장학생이다. 외대의 바둑 사랑 뒤에는 박철 총장, 이인영 교수가 있다. 특기생 모집은 이인영 교수가 부총장으로 있을 때 친구 사이인 총장을 설득해 시작된 것이라는 후문이다. 이 교수는 일본어과. 바둑 특기생들이 대부분 일본어과나 중국어과를 지망한 것은 일본어, 중국어가 바둑 활동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 말고 이런 이유도 있는 것.
대학바둑YB연맹 김진석(명지대 바둑학과 2년) 회장의 말을 들어본다.
“얼마 전까지도 대학 기우회 동아리들은 신입회원 모집에 애를 먹었는데, 작년 올해 사정이 확 달라졌다. 평균 10여 명 이상이 자진해서 가입하고 있다. 우리끼리는 대박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아시안게임이 역시 컸던 것 같다. 금메달 3개를 싹쓸이했다는 것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바둑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것 같다. 바둑은 대학입시와 관계가 없는 종목이라고만 알고들 있었지만, 그런 것만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좀 지엽적인 것일지 모르겠지만, 기우회장을 여학생에게 맡긴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현재 기우회장이 여학생인 서울대 서강대 외대 등이 활발한 것을 볼 수 있다.”
대학바둑연맹이 추산하는 대학 바둑인구는 5만~7만 선. 앞에 말했듯 대회가 열리면 보통 40여 대학이 참가하는데, 이는 서울의 대학들 거의 전부는 물론 지방에서도 상당수가 동참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력은, 바둑 강자들이 모아 놓은 명지대와 체육대학 안에 바둑 전공이 있는 목포(정확히 말하면 목포와 영암의 경계에 있는)의 대불대를 빼면 서울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 외대 한양대 등이 난형난제. 지방에서는 예전에는 경북대가 강세였으나 최근에는 부산대가 서울세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올라와 있다.
어쨌거나 대학바둑, 고교바둑이 활기를 되찾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대학바둑은 학생-청소년 바둑과 일반-성인 바둑을 잇는 가교다. 가교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가능하면 바둑 두는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안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둑은 평생 취미, 일생의 반려일 수 있고 그게 바람직하다. 바둑을 아는 삶과 바둑을 모르는 삶의 그 차이, 그걸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 바둑 보급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승부는 다음, 다음의 문제인 것. 바둑은 어려서 배워, 늙어 죽을 때까지 즐기는 것.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