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는 반도체·바이오 꽂힌 사이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주목…‘라이벌’ 삼성중공업 시가총액도 따라잡아
하지만 2018년 최성안 대표 취임과 동시에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현 시점에선 어느 정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9월만 해도 1만 원을 밑돌던 주가는 지난 6월 한때 2만 8150원으로 2015년 4월 이후 최고가를 찍었다. 크게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나름 그룹 내 라이벌 관계인 삼성중공업 시가총액을 앞지른 것도 삼성엔지니어링 입장에서는 큰 성과다. 두 회사는 2014년 합병이 추진되기도 했다. 10년간 평균적으로 삼성중공업 시가총액이 삼성엔지니어링의 2배에 달했지만, 최근 두 회사 시총은 역전됐다. 지난 9월 6일 기준 삼성엔지니어링 시가총액은 4조 6942억 원, 삼성중공업은 3조 9375억 원이다.
#연내 성과 나오나…삼성엔지니어링, 그린 EPC 박차
삼성그룹은 지난 8월 24일 240조 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기업은 넘볼 수 없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계획인데, 투자처는 기존 투자처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국가 전략산업으로 떠오른 반도체와 미래 유망산업인 바이오,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 로봇, 슈퍼컴퓨터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의 육성 분야에서 제외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친환경 에너지다. 다른 대기업이 수소나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전략을 펴는 데 반해 삼성은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보조하는 역할에 만족하는 것”이라며 “삼성그룹이 2014년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에너지 및 화학기업인 삼성종합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토탈을 매각한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는 에너지 사업과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삼성엔지니어링만큼은 친환경 에너지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6월 30일 글로벌 에너지 기술기업 베이커휴즈와 탄소 중립 및 수소 부문 협력 계약을 맺었는데, 베이커휴즈는 수소 생산·운송에 필요한 수소 터빈과 압축기, CCUS를 위한 탄소 포집 기술과 압축기 등을 보유 중이다. CCUS는 이산화탄소를 배출 단계에서 포집 및 저장하고, 궁극적으로는 활용하자는 기술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300억 원 규모의 벤처투자 출자를 통해 탄소중립·수소 기술 관련 벤처기업 육성에 나서기로 했고, 4월에는 롯데케미칼과 친환경 사업 확대를 위한 그린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수소 전략, 이른바 ‘그린 EPC’는 생각보다 꽤 구체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EPC란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로, 대형 건설 프로젝트나 인프라사업 계약을 따낸 사업자가 설계와 부품·소재 조달, 공사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그린 EPC는 쉽게 말하면 ‘LNG 발전 + CCUS’다. LNG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되,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수소를 만드는 방법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이 스팀 메탄 개질(SMR) 방식으로,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방법이다. 가장 저렴하게 수소를 생산할 수 있지만, 1톤(t)의 수소를 생산하는데 약 8t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하지만 CCUS 기술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다면 가성비는 가장 좋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술 제휴 및 투자는 CCUS 과정을 기존 EPC에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에 집중돼 있다.
연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분석도 나온다. KTB투자증권 박일선 라진성 김영준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삼성엔지니어링은 다수의 파트너사와 함께 총 17건의 프로젝트 및 안건을 파이프라인으로 보유 중이며, 1조 원 이상의 탄소넷제로(탄소중립) 메가 프로젝트 5개가 사전논의 혹은 FEL(Front End Loading) 단계”라며 “수소 관련 EPC 수주는 2024년 이후 가능해 보이지만, 빠르면 연말쯤 1~2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식적으로 오픈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 내 위상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그동안의 삼성엔지니어링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그룹 내 주력 계열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골칫덩이에 가까웠다. 지난 2015년엔 해외 플랜트 사업 부실로 자본잠식 및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해 논란을 빚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데 상장폐지를 피하려고 개인 투자자들에 손을 벌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여론을 무마하고자 직접 유상증자에 참여해 3000억 원을 투자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는 임직원 대상 청약이 흥행에 성공해 이 부회장은 유증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후 시간외시장에서 300억 원 규모 주식을 사들였다. 이 주식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유증 사태 이후로도 해외 사업장 부실이 드러날 때마다 일시적으로 적자, 혹은 어닝쇼크를 기록하면서 고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흘러나오고 있다. 수소라는 신사업을 장착했고, 유가가 회복하면서 본업도 당분간은 순항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올해 6조 원인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 이미 3조 1000억 원의 수주를 기록한 데 이어 하반기 대형 입찰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줄루프(20억 달러), 자푸라(30억 달러) 등 170억 달러에 달하는 입찰이 예정돼 있다. 유가 상승으로 산유국 국영회사들의 투자 여력이 생긴 덕분이다.
이 때문에 삼성엔지니어링의 그룹 내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박일선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은 향후 삼성그룹의 ESG 경영이 본격화될 때 반도체 공장을 비롯한 탄소중립 관련 밸류체인 구축 및 설비 시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