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포스코·SK·한화 등 재계 공감 불구 기술력 걸음마 수준…“흉내만 내다간 태양광사업 되풀이” 경고
#재계 수소 청사진 한가득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 포스코그룹이 공동 의장을 맡는 수소기업협의체는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되는 '2021 수소모빌리티+쇼'에서 'H2비즈니스서밋'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각 그룹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해 수소경제에 대해 논의했다.
협의체에는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를 비롯해 롯데, 한화, 현대중공업, GS, 두산, 효성, 코오롱 등 10대 기업이 참여한다. 협의체는 각 그룹 총수가 돌아가며 간사직을 맡을 예정으로, 향후 정기 총회와 포럼 개최 등을 통해 '탈탄소'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마다 대규모 수소 사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서로 한자리에 모여 의견과 노하우를 주고받겠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내놓은 수소 사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우선 현대차·SK·포스코·한화·효성 등 5개 그룹은 2030년까지 43조 원을 수소경제에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연간 수소전기차 50만 대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에 맞춰 수소전기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등에 11조 1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7일에는 온라인으로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를 열고 글로벌 자동차 업계 최초로 2028년까지 이미 출시된 모델을 포함한 모든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연료전지를 적용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공법이라는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이 기술은 전통적인 쇳물 생산 방식인 고로(용광로) 공법을 대체하는 것으로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 없이 철을 생산할 수 있다. 효성그룹도 효성화학의 울산 공장 부지에 액화수소 공장을 건설하고, 액화수소 충전 인프라도 구축하기로 했다. 효성첨단소재도 2028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해 수소차 연료탱크 등에 쓰이는 탄소섬유를 연산 2만 4000톤 생산할 방침이다. 석유화학과 에너지 기업들도 수소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SK는 SK인천석유화학의 부생수소를 활용해 2025년까지 약 28만 톤 규모의 수소 생산능력을 갖추고, SK에너지의 주유소와 휴게소에서 차량용 수소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5년간 18조 5000억 원을 투입한다. 한화그룹은 한화솔루션을 통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 수소 분야에 투자 중이다. GS칼텍스는 한국가스공사 등과 손잡고 액화수소 공장과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구축할 계획이다.
재계가 이처럼 수소 사업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움직임이 있다. 국회는 지난 8월 31일 본회의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담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제외한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뜻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소발전이나 수소환원제철 등 수소 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석유, 석탄 등 기존 원료를 대체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를 활용하기 위해 투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수소로의 전환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지표를 투자 기준으로 삼아 강조하는 글로벌 투자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도 기업 입장에선 중요하다.
#기술 개발과 정부 지원 절실
재계는 수소사회 구현을 위한 산업계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재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탄소 저감 및 수소 생산을 위한 신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설비를 구축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술들이 아직 개발 단계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수소는 생산부터 배급까지 각 공정마다 새로운 설비를 깔아야 하는 총체적인 인프라 사업이라는 점도 불확실성 요인이다. 인프라 구축에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해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사회적 동의도 수반돼야 한다. 실례로 폭발 우려로 수소저장소 설치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CCUS)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수소라는 원료와 철강 등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들은 아직 이론 단계로 2050년까지 상용화될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며 “기존 에너지원을 수소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거대한 인프라를 누구 돈으로 어떻게 깔 것인지도 물음표가 붙는다”고 짚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수소는 친환경적이지만 생산 과정은 그렇지 않다”라며 “지금 기술로 생산 가능한 부생수소는 석탄 석유 제품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석탄을 태워야만 만들어낼 수 있다”며 “액화천연가스(LNG)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개질수소)도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양광, 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해내는 그린수소가 유일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데, 고가의 전력 비용이 발생하고 재생에너지 전력 보급률이 낮아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수소사회 구현 계획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산·학·연을 연계한 기술 개발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특허청이 지난 9월 5일 발간한 '지식재산과 혁신' 제4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수소차나 수소발전시스템에 사용되는 연료전지 등 활용 분야에서는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그러나 생산, 공급, 이동 등 나머지 분야는 아직 연구 또는 상용화 초기 단계에 그치고 있다.
특히 수소 공급은 부생수소를 고압용기에 넣어 운송하는 수준으로, 아직 물전기분해나 수소액화 관련 상용화 기술은 크게 부족하다. 또 수소 공급과 이동, 활용을 위한 기술은 해외 의존적이며 핵심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를 쓴 조지훈 특허청 동력심사기술과장은 △수소 분야 선진국의 고효율 수소 추출 기술 분석을 통한 자체 기술 확보 △소부장 기술 내재화 및 고도화 등 여러 전략을 제시했다.
산업계의 수소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줄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및 학계와 소통하며 수소 생산 기술의 수준의 현주소와 상용화 여부 등을 현실적으로 고민해보고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 일례로 철강의 경우 현 설비를 세우고 없애는 데 드는 매몰비만 약 70조 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별도로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을 위한 비용으로 3조 원가량 더 필요하다.
철강업계 다른 관계자는 “설비 투자에 드는 비용은 당연히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부분이지만, 설비를 구축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술 개발이다. 기술 개발에 필요한 비용만큼은 정·재계가 함께 부담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 밖에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 보급률을 높여주고, 수소와 전기를 싸게 공급해주는 것 등도 산업계가 요구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수소 인프라 확대 정책 등이 담긴 '수소경제로드맵 2.0'을 발표할 예정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수소 산업은 특정 기업이 아닌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국내 기술이 세계적인 표준이 되는 것을 노릴 만큼 큰 그림을 갖고 정밀하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흉내만 내는 식이라면 과거 공공과 민간의 여러 기업이 너도나도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한 사례를 반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