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LX그룹 분할로 숨통 틔워…삼성·롯데 등은 내부거래 비중 요지부동
공정위는 대기업의 물류·SI 일감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국내 화주·물류 기업을 대표하는 5개 대기업집단(삼성·현대차·LG·롯데·CJ)과 함께 ‘물류시장 거래환경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식’을 진행했다. 물류 일감 나누기 자율준수 기준을 자율적으로 잘 지키는 대기업집단에는 인센티브가 제공될 방침이다. SI 업종의 일감 나누기 자율준수 기준도 연내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중요사항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은 내년 5월부터 시행된다. 대기업집단은 물류·SI 계열사와의 내부거래 현황을 1년에 한 번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 골자다. 시장을 통한 자율적 감시를 위해 공시의무를 강화한 셈이다.
기업 사정과 맞물린 대기업집단의 움직임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LG그룹이 그룹 분할과 지분 매각 등을 단행하며 이와 관련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해 11월 (주)LG는 LX홀딩스를 설립하는 분할 계획을 결의했다. LX그룹은 LG상사, 실리콘웍스, LG하우시스, LG MMA 등 4개 자회사와 LG상사 산하의 판토스 등을 손자회사로 편입했다. 70% 이상을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물류 기업 판토스는 LX그룹에 편입되면서 공정위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앞서 2018년 12월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가 보유한 판토스 지분 19.9%도 매각했다. LG그룹은 SI 계열사 LG CNS 지분(35%)과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부 서브원(60.1%)의 매각 작업도 마무리했다. 10대 그룹 중 가장 빠르게 일감 몰아주기 관련 이슈를 해소한 셈이다.
지난 7월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오일터미널의 지분 90%를 사모펀드인 제이앤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상업용 탱크터미널을 운영하는 현대오일터미널의 물류 내부거래 비중은 69.6%에 달했다. 현대중공업은 블루수소, 화이트 바이오, 친환경 화학·소재 사업 등 3대 미래사업에 매각 대금을 투자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GS그룹은 부당 내부거래 의혹을 해소코자 GS ITM을 사모펀드 운용사 IMM인베스트먼트-JKL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주요 그룹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소하고 있지는 못하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기업집단의 내부거래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0대 대기업집단의 물류와 SI 내부거래 비중은 각각 34.4%, 67.4%에 달했다. 64개 공시대상기업의 전체 내부거래 비중(12.2%)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다.
2019년 기준 10대 그룹의 물류 기업 내부거래 비중을 살펴보면, SK그룹은 △대한송유관공사(32.35%) △보령엘엔지터미널(55.61%) △에프에스케이엘앤에스(43.81%) 등이 있다. GS그룹은 △보령엘엔지터미널(36.37%) △상지해운(100%) △GS네트웍스(94.75%) △피엘에스(71.28%) 등이 있다. 이 밖에 포스코터미널(20.56%)이 있다. SI 업종에서는 삼성SDS(72.24%), 롯데정보통신(85.49%), 농협정보시스템(65.28%)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여전히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지 않고 있다.
특히 삼성과 롯데, 농협은 물류·SI 둘 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올해 상반기 삼성SDS 매출(6조 3121억 원) 중 내부거래 비중은 68%에 달했다. 2019년(72%)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삼성전자의 물류를 도맡는 삼성전자로지텍의 지난해 매출은 1조 4928억 원이었다. 내부거래 비중은 94%로 전년도보다 오히려 2% 증가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롯데정보통신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2조 8584억 원, 8495억 원이었다. 내부거래 비중은 각각 31%, 66%였다. 같은 기간 농협물류의 매출은 4480억 원이었고,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이 65%에 이르렀다. 농협정보시스템의 매출은 2543억 원이었고, 내부거래 비중은 95%였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일감 개방 정책은 좋지만, 민간 기업과 농협은 설립 목적 자체가 다르다. 농협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조직이 아니고, 농업인·농촌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런 차별점을 고려해서 일감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삼성SDS는 그룹사 물량을 더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구형준 삼성SDS 클라우드사업부장 부사장은 “하반기 제조부문은 R&D(연구개발) 클라우드 서비스와 데이터통합시스템 구축 등 신규사업 기회가 있다. 관계사 대상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밝혔다.
오구일 삼성SDS 물류사업부장은 “하반기에도 관계사의 물량 증가와 해상운임 강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면서 “주요 관계사에 대한 적기 배송을 위해 안정적인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 범위를 특송 중심에서 항공·해상 등 국제운송, 풀필먼트까지 확장해 기존 고객 대상 서비스 범위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삼성SDS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9.2%)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9%),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3.9%) 등이 주요 주주로 있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되진 않지만, 일감 몰아주기 관련해 비판 대상이 돼왔다. 오너 일가의 지분이 상속세 재원 마련에 활용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SDS 한 관계자는 “대외 사업에 힘을 실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글로비스도 총수 지분 때문에 주목을 받는 곳이다. 오는 12월 30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현대글로비스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된다. 지난해 현대글로비스는 매출(16조 5198억 원) 중 71%(11조 8694억 원)를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전체 내부거래 중 국내 매출만 따지자면 약 22%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해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이뤄내야 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관련기사 현대차그룹 ‘글로비스 일감 개방’ 허들 넘고 지배구조 개편 나서나).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 한 관계자는 “자동차 해외 물류를 맡을 수 있는 국내 기업이 HMM뿐”이라며 “결국 내부거래를 낮추기 위해선 외국기업에 맡겨야 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