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재주 없는 기술력 장마 그친 뒤 잭팟
▲ PDA, 모바일 컴퓨터 , 모바일 POS 기기 생산업체인 블루버드소프트의 이장원 사장. 블루버드소프트는 산업용 스마트폰 국내시장 1위 회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1995년 삼성SDS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이장원 사장이 월급과 전세자금 등 전 재산을 모아 종잣돈 1억 원을 들고 후배들과 함께 창업한 블루버드소프트는 애초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사명에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중학생 때부터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대학생(서울대 경영학과) 때 이미 200여 개 사업계획서를 만든 이 사장이 회사를 세우고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은 통신 소프트웨어 ‘블루버드메신저’다. 이 메신저는 시쳇말로 잘나갔다. 그러나 이 사장은 다른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시장의 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법복제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돈을 내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드물었습니다. 시장도 작았고. 잘나갈 때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속성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가능성을 약속할 수 있는 아이템을 연구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PDA(개인휴대단말기·Personal Digital Assistants)였다. 극도의 다품종 소량생산이라 대기업이 하기 어려워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안정적 성장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단말기 제조업체로의 업종전환은 창업보다 어려웠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공학과 수업을 들었고 대학원에선 아예 산업공학을 선택해 기본은 갖춘 이 사장은 이리저리 뛰며 제조업 노하우를 배우고 직원들을 재교육하며 조직을 바꿔나갔다. 그리고 1999년 첫 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무명 회사의 PDA를 선뜻 찾는 업체는 없었다.
“시장 개척엔 왕도가 없죠. 당시 외산 제품이 꽉 잡고 있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산업용 제품의 경우 회사의 인프라이기 때문에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회사가 골치 아프거든요. 끊임없이 보여주고 공짜로 주면서 사용해보라고 하고 설득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죠. 매출이 매년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소프트웨어 사업 수익으로 버티며 차근차근 PDA 사업이 제 궤도에 찾아갈 때쯤 이 사장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쳤다. 당시 블루버드소프트는 신세기통신과 단말기를 개발하고 납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하자마자 단말기 납품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게다가 얼마 뒤 삼성과의 합작법인이 IT버블 붕괴와 함께 무너졌다.
“단말기 개발 당시 세계적으로 부품 부족 현상이 빚어져 선주문을 해놨다가 다 폐기해야 했습니다. 수십억 원의 피해가 있었죠. 지금 같아선 손해배상 청구 같은 거라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나이도 어렸고. 정신적 공황상태였죠. 자신감도 잃었습니다. 200명까지 늘었던 직원들도 회사가 흔들리자 50명으로 줄었지요. 솔직히 그렇게 많이 나갈 줄 몰랐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았다.
“학교 다닐 땐 안 보던 경영학 책도 엄청나게 읽었습니다. 성찰도 많이 했죠. 결국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분명히 내가 모자라는 짓을 해서 확대재생산된 거다’라고 다잡으며 스스로 먼저 일어섰습니다.”
2002년 연초까지 거센 폭풍우가 지나가고 거짓말처럼 서광이 비췄다. 그해 가을 처음으로 대량구매가 발생한 것이다. 회장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 만나는 등 그토록 공을 들인 풀무원에서 3000대를 구매했다. 상용 시스템으론 사실상 첫 판매나 다름없었다. 이 사장은 창업 후 16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거래로 이 건을 들었다. 풀무원의 평가는 좋았고 이를 통해 입소문이 많이 났다. 풀무원은 아직도 그때 구매한 단말기를 쓰고 있다고 한다. 뒤이어 백화점 모바일 포스 시스템으로 ‘잭팟’이 터졌다.
“우리가 백화점에서 이런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기획을 하고 현대백화점을 찾아갔다더니 거기서도 점원이 카드를 들고 결제를 위해 돌아다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고객의 니즈와 딱 맞아떨어졌던 거죠. 게다가 다른 거래처의 경우 단말기를 회사 안에서 쓰거나 개인만 쓰는데 백화점은 노출이 돼서 유명세를 타는 계기가 됐죠.”
세계 최초이기에 ‘경쟁사 시스템은 쓰지 않는다’는 백화점업계의 불문율이 깨졌다. 납품 행렬이 롯데, 신세계로 이어진 것. 이후 블루버드소프트의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이듬해인 2003년엔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이즈음 그의 눈은 해외로 향했다. 2004년부터 준비기간을 거쳐 2005년 ‘피디온’(PIDION)을 전 세계에 상품등록을 한 뒤 해외에 본격 진출한 건 2006년. 새롭고 꾸준한 시도를 한 결과 블루버드소프트는 이후 5년 동안 초고속 성장을 거듭, 지난해엔 전년대비 수출액 63%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매출액의 80%를 수출로 달성했는데 현재까지 1천만불·2천만불·3천만불 수출의 탑 3년 연속 수상의 영예도 얻었다.
현재 세계 6위쯤 랭크돼 있는 블루버드소프트, 이 사장의 목표는 ‘빅3’ 도약이다. 1·2위 업체가 시장점유율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목표 달성을 자신한다. 그만큼 기술력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중소기업진흥공단의 ‘글로벌 브랜드 육성 사업’에 선정, 브랜드 매니지먼트에 큰 도움도 받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런 예산을 좀 늘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강소기업은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소기업 위주의 지원책이 많고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혜택을 받죠. 우리나라에 독자 브랜드를 가진 강소기업이 많아요. 그런 기업을 위한 정책이 더 필요합니다.”
이 사장과의 인터뷰는 좀 ‘교과서적’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교과서가 맞다”면서 “사업은 절대 잔재주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를 ‘강소기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