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의원 친인척도 ‘특혜인출’ 했다
▲ 지난 6일 오후 부산저축은행 피해대책위 회원들이 서울 금융감독원 건물 앞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검찰총장 ‘하명’사건을 주로 다루는 중수부가 지난 3월 15일 부산저축은행그룹 소속 5개 저축은행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자 정치권에선 그 ‘불똥’이 조만간 ‘여의도’로 튈 것이라며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실제로 중수부가 수사에 착수한 이유도 부산저축은행 경영진과 정치권의 커넥션 내용이 담긴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정·관계 로비를 벌였고, 여기에 들어가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중수부는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명예회장을 비롯해 그룹 대주주와 주요 임원들을 잇달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대부분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의 불법대출, 배임, 횡령 등에 연루된 자금이 무려 7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부산저축은행 임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어느 정도 마친 중수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금융당국 및 정치권이 관련된 의혹을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중수부는 수사진을 재정비하며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부산지검과 합동으로 진행하던 수사를 중수부로 일원화하는 한편, 부산지검 검사와 수사관 6명을 파견 받아 인력을 보강했다. 또한 중수부 첨단범죄수사팀은 저축은행 영업정지 이전에 이뤄진 특혜인출 건만을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이번 수사에서 특혜인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미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중수부 관계자는 “수사해야 할 범위가 엄청나다. 또한 제기된 의혹도 많은데, 이를 일일이 확인할 계획이다.
중수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특혜인출은 국민들 관심이 높기 때문에 더욱 더 신경을 써서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을 향한 중수부 수사는 로비에 따른 대가성 여부와 특혜인출,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사업체를 늘리며 급성장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은 2006년 4월 서울중앙저축은행(현 중앙부산저축은행), 2008년 9월 대전저축은행, 2008년 11월 고려저축은행(현 전주저축은행)을 연이어 인수하며 규모를 키운 바 있다. 같은 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이 이 은행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박연호 명예회장이 정치권 인사들을 접촉했다는 의혹을 쫓는 중이다. 중수부는 금융당국 관계자들로부터 “인수 당시에 정치권 입김이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중수부는 금융감독원이 부산저축은행 비위사실을 모른 체했던 배경에 실세들 압력이 있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이를 체크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저축은행 로비와 관련해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정치인은 모두 다섯 명이다. 현 민주당 의원 한 명과 전직 고위 관료는 박연호 회장 등으로부터 정기적 금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둘 다 참여정부 시절 실세로 분류됐던 인사들이다. 해당 민주당 의원에 대해선 벌써 계좌 추적이 이뤄지고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 경남지역 의원 세 명도 부산저축은행의 뒤를 봐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친박계 중진으로 꼽히는 한 의원의 친동생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특혜에 가까운 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실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처럼 중수부 칼날이 참여정부 출신과 친박 정치인들에게 먼저 겨눠지자 정가 일각에서는 ‘표적’ 논란이 제기될 조짐도 엿보인다. 이에 대해 중수부 관계자는 “말도 안 된다. 수사를 가려서 하진 않는다. 의혹이 나오는 의원들은 모두 수사할 예정”이라며 ‘원칙대로’를 강조했다.
일단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로비를 하기 위해 조성한 비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이 차명으로 설립한 수많은 특수목적회사(SPC)들을 사실상 박연호 회장의 ‘사금고’로 보고 있다. SPC 대표이사들은 ‘바지사장’에 불과할 뿐, 실소유주는 박 회장이라는 것.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부산저축은행이 만든 SPC는 100개가 넘는다”고 전했다. 이들 SPC는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적게는 수백 억, 많게는 수천 억 원을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대출할 때 심사가 형식적이었음은 물론, 차후에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중수부 관계자는 “SPC나 부산저축은행 모두 박 회장 지배에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SPC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4조 원대에 달한다. 이 돈의 사용처를 찾는 게 이번 수사의 목표”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중수부는 박 회장이 해외 부동산 투자를 통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에 나섰다. 2010년 말까지 부산저축은행의 해외 부동산 총 투자액은 5230억 원가량이다. 박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SPC가 돈을 빌려 사업에 투자하는 형식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사업들 중 대부분이 중단됐고, 일부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출 과정에서 부산저축은행이 심사를 엄격히 했더라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부실채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PC가 해외 투자 명목으로 빌린 돈 일부가 박 회장 차명계좌로 흘러 들어간 것도 확인됐다.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의 해외 부동산 대출 기간이 비상식적으로 길어 금융당국이 쉽게 포착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적발하지 못한 점도 수사하고 있다. 통상 저축은행의 해외 부동산 대출은 상환 기간이 짧은 ‘브리지론’으로 이뤄진다.
정치권 로비와 함께 현재 중수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수사는 바로 특혜인출 부분이다. 중수부 첨단범죄수사팀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인출자, 인출 경위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5월 2일에도 검사 두 명을 포함, 수사진 40여 명을 부산저축은행에 급파한 바 있다. 중수부 측은 “아무리 많은 인원과 시간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영업정지 이전 인출자들을 모두 수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수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정치권도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몇몇 현역 의원들 친인척도 특혜인출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검찰 관계자들 역시 “여야 의원 3~4명(친인척)이 확인됐고,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검찰에 따르면 이미 민주당 중진급 C 의원, 한나라당 K·J 의원의 친인척이 영업정지 이전 예금을 빼낸 사실이 확인됐는데, 이 중 두 명은 차명 계좌를 개설했다고 한다. 해당 의원실 측은 “(검찰 수사와 관련) 전혀 아는 바 없다”고 일축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얼마 전 국회 사개특위가 밝힌 중수부 폐지안을 놓고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을 세게 몰아붙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선 친인척이 특혜 인출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경우 ‘서면조사’ 정도로 수위가 조절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 출신인 민주당의 한 의원 역시 “이번 수사의 특징은 검찰이 여야 의원 모두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어느 정도 압박을 한 후에 ‘딜’을 하겠다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주장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지금 여의도엔 ‘특혜인출에 연루되면 정치인생이 끝난다’는 말이 돌고 있다. 내년 총선 공천은 물론이고 당장에 사퇴 압력을 받을 것”이라면서 “검찰과 정치권이 과연 어떠한 스탠스를 취할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수사의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