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희야, 너 아주 진절머리 나더라”
▲ 허재 감독이 지난 4월 26일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이긴 뒤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바라던 대로 챔프전 우승을 했다. 속이 후련할 것 같다.
▲어느 때보다 이번 우승이 기분 좋고 큰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더욱이 동희랑 함께 한 승부라 더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KCC는 시즌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선 무려 9개 팀의 감독들이 KCC의 우승을 점쳤다. 이런 상황에서 우승을 하면 본전이고 못할 경우 큰 데미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우승하기를 소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희한테 미안했다. 그런데 동희 하는 걸 보니까 동부가 우승하는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5차전, 6차전이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감독 입장에선 굉장히 힘든 경기로 기억될 것 같다.
▲5차전을 KCC가 가져오면서 6차전은 동부가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경기 전 한 코칭스태프에게 동부 선수들 어떻게 워밍업하고 있는지 보고 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스태프가 하는 말이 “선수들이 굉장히 열심히 훈련하는데요, 아예 질 거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라. 사실 6차전 전에 주위에서 이런 얘길 했다. 윤호영이 부상으로 뛸 수 없을 거라며 6차전은 KCC가 편히 승리를 챙길 거란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프다는 애가 더 잘 뛰는 게 아닌가. (김)주성이도 3점슛을 쏘아대질 않나. 1,2쿼터까지 10점 차 이상의 점수로 끌려가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더라. 동희였기 때문에, 아니 동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승진 때문에 울고 웃었다. 무엇보다 동부 선수들을 자극하는 제스처 때문에 뒷말도 많았다.
▲그건 정말 승진이가 살고자 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해야 에너지가 생기는 스타일이다. 선수가 뭔가를 하려고 발버둥치는데, 그걸 못하게 말릴 수는 없지 않은가. 3차전 때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쉬면서 훈련을 하지 못했다. 승진이는 365일 운동을 해야 흐름을 갖고 가는 탓에 이틀 쉰 게 걱정이 되더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특유의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 후 그런 식으로 오버액션을 하면서 기를 불어넣었다. 승진이가 올 시즌 치르면서 많은 성장을 이뤘다.
―전태풍한테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이상하게 챔피언결정전에선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무슨 말 못할 이유가 있었던 건가.
▲진짜 ‘이제야 말할 수 있다’가 될 것 같다. 챔프전을 치르면서 태풍이가 이전처럼 열심히 안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따로 불러서 이유를 물었더니 승진이 핑계를 대더라. 승진이가 경기 중에 자기한테 ‘천천히 하라’는 얘길 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선수 때의 성격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전태풍을 짐 싸서 돌려보냈을지도 모른다. 화가 정말 많이 났지만 꾹 참고 이렇게 말했다. 넌 남자답지 못했다고. 네가 게임 못한 걸 왜 승진이 핑계를 대느냐면서 말이다. 그렇게 말해 놓고 마음에 걸려서 경기 앞두고 라커룸에서 태풍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태풍아, 오늘은 4점만 넣자. 4점 이상 넣으면 절대 안 돼!’하면서 말이다. 감독 입장에선 선수를 혼내야 될 때도 있지만, 그런 선수를 다독거릴 줄도 알아야 한다.
―강동희 감독이랑 게임을 해서 그런지 이번 챔피언결정전 때는 심판 판정에 대해 항의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솔직히 울컥 울컥 올라올 때도 있었고, 광고판을 걷어차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동희랑 하는 게임이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동희와의 우정은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만들어져 온 것이다. 그걸 경기하면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은 심판이 너무 파울을 안 불기에 심판한테 다가가서 이런 식으로 읍소한 적은 있다. ‘우리한테도 제발 파울 좀 불어주세요’라고.
한참 취중 토크 중인데 허 감독이 사랑한다는 강동희 감독이 나타났다. ‘허재 형이랑 술 한 잔 하러 나왔다’는 그의 얼굴에선 더 이상 패배의 아픔이 묻어나질 않았다. 허 감독이 반갑게 강 감독을 맞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야, 난 더 이상 너랑 안 붙을 거야. 아주 날 죽이려고 달려들더라.” 이에 대한 강 감독의 대답이 압권이다. “난 한 번 더 붙고 싶은데요? 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형이랑 해보니까 은근 재밌더라고 하하”.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