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물량 몰아줘 자녀들 지갑 채우기
▲ 지난 2007년 빙그레 계열사로 편입된 케이엔엘물류는 빙그레의 일감 몰아주기로 편법상속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배재정동 빌딩의 빙그레 본사.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재정부는 조만간 조세전문가와 국세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전담반을 구성, 합리적인 과세방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어떤 기업이 그 대상이 될 것인지, 과세는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이뤄질 것인지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와 관련, 최근 식음료 및 빙과제품으로 유명한 빙그레 계열 물류업체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내막을 따라가 봤다.
지난 2007년 빙그레 계열회사로 편입된 케이엔엘물류는 1998년 빙그레에서 분사한 키스크라는 정보처리 업체가 선일물류와 2000년 합병해 설립된 회사다. 겉으로 보기엔 빙그레에서 분사한 업체가 세운 일반 중소 물류업체다. 그러나 케이엔엘물류 지분은 빙그레 대주주인 김호연 한나라당 의원의 세 자녀가 100%(각각 33.34%, 33.33%, 33.33%)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에 해당되는 자녀들이 케이엔엘물류 지분 100%를 취득하면서 자연스레 빙그레의 계열사가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케이엔엘물류는 빙그레와의 거래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케이엔엘물류의 매출액 324억여 원 중 289억여 원이 빙그레와의 계약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전체 매출액의 89.3%를 빙그레에 의존한 셈이다. 2008년에는 전체 매출액의 89.2%가 빙그레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340억여 원 중 304억여 원). 2009년의 빙그레 매출 비중은 77.4%(409억여 원 중 316억여 원), 2010년에는 58.9%(465억여 원 중 274억여 원)로 공시돼 있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빙그레가 다른 재벌그룹처럼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편법 상속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호연 의원의 세 자녀가 지분을 인수한 직후 케이엔엘물류가 빙그레 주식 1.68%를 사들인 점도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당시 빙그레 주식은 1주당 3만 6000~3만 8000원에 거래됐고 4월 29일 현재 6만 4100원까지 올랐다.
빙그레 측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비즈니스 논리와 당시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억측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빙그레 관계자는 “우리는 냉동·냉장 제품을 생산하는데 이를 운송·보관할 수 있는 특수 물류업체는 케이엔엘물류 달랑 한 곳이어서 공개입찰이나 다른 업체와 경쟁을 붙여 선정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한국물류협회의 한 관계자는 “2007년 당시 물류업체를 선정할 때 공개입찰을 했다면 아마 경쟁률이 두 자릿수를 웃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종학 경실련 자문위원(경기대 교수)은 “대주주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지분을 물려주고 물류업무를 맡겨 회사를 키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영권을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유용하는 것(회사기회 유용)에 해당한다”며 “사실상 기업 재산을 주주들에게서 뺏어서 자기 자식한테 주는 행위나 진배없어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법적인 문제도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아직까지는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불공정거래법 23조 1항 7호에 적시된 부당내부거래에 관련한 조항을 근거로 살펴보면 단순히 물류업무를 맡기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만약 해당 회사가 친인척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에 시장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거래금액으로 측정해 특혜를 준다면 시장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열사의 지원을 받아 시장 내의 독점사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는 “세법 개정안이 올 8월에 완성되므로 그때까지 구체적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수정된 부당내부거래에 관한 조항이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재계의 관심은 계속될 듯하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