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구 이창훈 “폐암 투병 극복했사와요^^”
<일요신문>이 재창간한 1992년, 벌써 19년 전인 그 당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은 누구일까. 또 당시 연예계의 사건 사고와 화제들은 무엇이었을까. 1992년에 발행된 <일요신문>을 살펴보니 당시의 인기 스타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이 예상 외로 많았다. 그렇지만 고 김구미자, 고 최진실 등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고 지금은 결혼 등의 이유로 연예계를 떠나 근황이 궁금한 이들도 있다. 이제는 추억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때 그 스타들, 20여 년의 세월만큼 많이도 변한 그들의 요즘 모습을 따라가 본다.
2000년대 연예계에 ‘11월 괴담’이 있다면 1990년대 초반엔 6월이 문제였다. ‘마의 6월’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을 정도였는데 1992년 6월에도 임채무 임현식 김진태 박상민 등의 연예인이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렸다. 게다가 1992년 4월 변우민이 부정병역면제 혐의로 구속됐던 직후라 그해 6월 연예계는 더욱 뒤숭숭했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이는 이창훈이다. ‘맹구’로 한창 높은 인기를 자랑하던 이창훈은 무허가불법영업혐의로 구속돼 두 달여의 수감생활을 가지다 7월말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로 인해 100여 일가량 브라운관을 떠나야 했던 이창훈은 <일요신문>과의 컴백 인터뷰에서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돕는 동업 형태였는데 내가 실질적인 경영주로 비춰져 구속됐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요즘 이창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2년 전 폐암 투병 사실이 알려져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었다. 이창훈은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며 “나는 배우니까 무대에서 다시 대중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영화 <그랑프리>에 카메오로 출연한 바 있다. 이창훈은 “제주도 여행 중에 우연히 <그랑프리> 촬영 팀을 만났는데 아는 후배들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출연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최근 화제가 된 가수 김완선의 가짜 은퇴 선언 역시 92년의 일이다. 당시 <일요신문>은 ‘은퇴 속사정 사업이냐 결혼이냐’라는 기사에서 ‘심신이 너무 지쳤고 가수 활동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은퇴의사를 밝혔으나 홍콩 영화계 진출, 이모부와 동업하고 있는 사업에 전념, 모 일간지 기자와의 결혼설 등 속사정은 따로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김완선은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모가 기획했던 가짜 은퇴 선언”이라며 “홍콩 진출을 모색하던 상황에서 이모가 쇼킹한 이슈를 찾다 한 기자와 상의해 돌연 은퇴를 결정했던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한동안 연예계를 떠나 있어 근황이 궁금했던 김완선은 최근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1992년 연예계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 가운데 하나는 가수 나미의 폭탄 고백이다. 연예계 대부 최봉호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덟 살 난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사연을 고백한 것. 한해 전인 1991년 최 씨가 모종의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세간에 나미와의 동거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미의 가족사는 두 아들 최정철과 최낙희가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최근 다시 화제가 됐다. 가수 최정철은 1984년생으로 당시 나미가 공개한 여덟 살 아들이 바로 그다. 또한 1967년생으로 나미와 아홉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최낙희는 최봉호 씨가 나미와 결혼하기 전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다.
나미는 방배동 서래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식점이나 주점 등을 운영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사실은 나미의 자매들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서래마을에서 이들 자매는 ‘서래마을을 점령한 자매들’로도 유명하다. 나미는 아들 최정철이 가수로 활동하면서 한두 차례 방송에 동반 출연하긴 했지만 최대한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아들의 가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1992년에는 나미의 폭탄 고백 외에도 몇 건의 눈길을 끄는 스캔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연예계 잉꼬부부 최수종 하희라의 열애설이 그 당시 불거졌는데 그해 연말엔 양가 부모의 반대로 이들이 슬픈 이별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매스컴의 우려와는 반대로 1993년 결혼식을 올렸다.
심신과 강수지의 열애설 인정도 화제였다. 요즘엔 공인커플이 대세지만 당시만 해도 열애설 인정이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1993년에 결별했다. 큰 키에 선글라스와 롱코트, 그리고 ‘권총춤’으로 여성 팬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심신은 최근 디지털 싱글 ‘아프다’를 발표했다.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심신은 “당시엔 내가 인기에 연연하는 가수가 되려 한 게 아닌데 라는 갈등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종종 그때가 그립다”며 “어렸을 때 너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서 내 그릇이 작다보니 그걸 다 담지 못하고 흘려 보낸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요즘 한창 인기가 많은 후배 가수들 역시 경험이 없어 당시의 나와 비슷할 것”이라며 “하루하루를 즐기며 최선을 다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992년 당시 인기 연예인 가운데 해외 거주 중인 이들이 많다는 기자의 얘기에 심신은 “연예인은 마음의 병을 앓기 쉬워 치유가 필요한데 그 때문인 것 같다”며 “나 역시 미국에서 유명 가수가 아닌 단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공연을 다니며 인생과 음악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 노래 ‘아프다’는 기존 노래들보다 록 느낌을 더 강하게 준 록발라드 곡”이며 “목소리는 와인처럼 발효하는데 지난 20여 년 동안 더 좋은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덧붙였다.
‘칵테일 사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3인조 혼성그룹 마로니에는 <일요신문> 창간 다음 해인 1993년에 <일요신문>이 창간한 연예전문잡지 <스타채널>을 통해 매스컴에 처음 소개된 인연을 갖고 있다. 마로니에는 본래 프로젝트 그룹으로 ‘칵테일 사랑’을 부른 마로니에는 3기다. 마로니에 3기는 1994년 해체했는데 이후 3기였던 김정은은 솔로 가수로 변신, ‘널 사랑해’ ‘프로포즈’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3기 리더 마로가 김정은의 노래들을 작곡하고 앨범 프로듀서를 맡았다.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마로는 현재 연예기획사를 직접 운영하며 심신 여행스케치 강수지 등 90년대에 함께 활동했던 가수들의 매니지먼트까지 담당하고 있다. 김정은은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활동 중인데 현재 임신 중이다.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로니에의 리더 마로는 “나와 (김)정은 씨, 그리고 4기 멤버 파라 등이 모여 5월 말에 ‘마로니에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미니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는 근황을 소개했다.
1992년도 <일요신문>에도 ‘그때 그 스타’에 대한 기사가 하나 실려 있다. 바로 배우 조용원 인터뷰 기사다. 1981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로 데뷔해 톱스타가 된 조용원은 1985년 불의의 교통사로를 당한 뒤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89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92년 조용원은 재학 중인 일본 학교 축제 기간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와 영화 <사랑의 종합병원>에 우정 출연했다. 10일여의 짧은 한국 체류 기간 동안에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그는 3년여의 일본 생활에 대해 “자연인 조용원으로서의 삶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며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조용원은 <씨네버스>라는 잡지를 창간하는 등 사업가로 변신했고 요즘에도 일본을 오가며 사업가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의 한 지인은 여전히 85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최근 근황을 알려왔다.
원미경 인터뷰 기사도 눈길을 끈다. 당시 원미경과 인터뷰를 한 까닭은 그가 2억 원대의 초특급 대우로 화장품 CF에 출연해서다. 당시 원미경은 이창순 PD와 결혼해 두 딸을 둔 주부였는데 화장품 CF가 미혼 여성 연예인의 전유물이던 시절이라 상당한 화제였다. 원미경은 2000년 방영된 드라마 <아줌마>로 ‘아줌마 열풍’을 불러온 뒤 소식이 뜸해졌다. 2003년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원미경은 “현재 버지니아에서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고 있다”라며 “내가 연기 활동을 재개하거나 남편이 다시 연출을 할 계획은 없다. 아직 귀국할 계획조차 없기 때문이다”라며 근황을 전했다.
가요계는 트렌드 변화가 빨라 당시 활동하던 가수 대부분이 가요계를 떠나 있는데 반해 배우들 중에서는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당시 ‘트라이 CF’로 화제였던 이덕화를 비롯해 최민수 최수종 문성근 유호정 김희애 박중훈 김혜수 등의 배우와 이경규 김국진 김용만 등의 개그맨은 당시에도 <일요신문>에 자주 소개된 뉴스메이커였다. 또한 염정아는 92년 미스영인터내셔널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해 막 연예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었다.
반면 지금은 소식이 뜸해진 이들도 많다. 최수지의 경우 현재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다. 화가로 변신해 개인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최수지는 지난해 8월 미국 텍사스로 온 가족이 이사했다. <일요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최수지는 “남편이 현직 대령인 미군 군의관이라 이사를 자주 다니는데 6년 정도 대구에 머물다 서울 용산에서 1년 지냈고 지난해 텍사스로 왔다”라며 “지금은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는데 특히 딸 지나가 잘 적응하도록 엄마로서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있다”라고 최근 근황을 소개했다. “1992년엔 드라마 <수요일에는 모차르트를 듣는다>로 3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해 매우 긴장하며 지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 최수지는 “혹한기에 촬영장인 제천에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연기 활동 재개에 대해선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엄마 손길이 줄어들 때쯤 생각해 보고 싶다”라며 “인기와 명예는 내 능력보다 넘치게 받아 평생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하는데 다만 연기할 때 조금 더 열심히 더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라고 답했다. 이어 “요즘 여배우들은 너무 예쁜 데다 연기력까지 갖춰 참 대견하다. 특히 신민아와 한효주는 이미 톱스타지만 오래도록 좋은 배우로 남을 것 같다”라며 후배 연예인들에 대한 소감도 들려줬다.
한편 ‘보조개 여왕’으로 유명했던 음정희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이들도 많다. 음정희는 지난 2007년 재혼해 딸을 출산하고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평범한 주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둘째 아이 출산 준비로 바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음정희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오랜만에 최근 근황을 공개했다. “요즘 부산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서 “애들 키우면서 지내고 있는데 연기 활동을 다시 재개할 생각은 없다”라고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최근 둘째 출산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에 대해선 “잘못 알려진 얘기로 현재 다섯 살 난 딸과 세 살 아들을 키우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편 1992년 <일요신문>에선 재미난 기사도 하나 눈에 띈다. 노사연 최명길 민해경 등의 여자 연예인이 동시에 등장한 이 기사의 제목은 ‘이런 남자 있어요?’로 노처녀 여자 연예인들의 공개구혼기사다.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사연은 ‘무조건 부담 없는 남자’, 최명길은 ‘생각이 비슷하고 성격 좋은 남자’, 민해경은 ‘사나이다운 기백과 호리호리한 체격’ 등의 이상형으로 밝혔었다. 이후 노사연이 가장 먼저 2년 뒤인 1994년 동료 가수 이무송과 결혼했고, 1995년엔 최명길이 당시 소설가였던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 결혼했다. 또한 1996년엔 민해경이 다섯 살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최정아 인턴기자 cja8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