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상품권’ 범람 게임장은 도박장
#2. 1월28일에도 창원과 마산에서 문화상품권 1천5백만원어치를 위조해 그 중 1백80만원어치를 성인오락실 환전소에서 현금과 바꾼 강아무개씨가 구속됐다.
#3. 문화관광부(문광부)는 지난해 12월 ‘게임제공업소의 경품취급기준고시개정’을 발표했다. 무분별하게 발행되고 있는 문화상품권의 종류를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기 위해서다. 이미 인증심사 신청을 지난 3월14일까지 받은 문광부는 3월31일 최종 인증된 상품권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현상은 모두 문화상품권과 관련해 최근 언론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것들이다. 쉽게 연관성을 떠올리기 힘든 두 현상 사이에는 성인오락실에서 문화상품권들이 다량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예전 성인오락실은 상품으로 쿠폰이 발행되었다. 이를 모으면 금으로 바꿔 주는 등 변칙적인 현금화가 문제가 되자 이를 없애기 위해 상품을 주도록 했다. 그러나 상품은 형식적으로 전시되어 있을 뿐 실제로는 상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가는 일이 성행했다.
그러자 게임산업 주무부서인 문광부는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주도록 법을 개정했다. 지난 2003년 개정된 ‘게임제공업소의 경품취급기준고시’에 따르면 침체된 영화, 공연, 도서 등 문화산업에 관한 저변인구 확대를 위해 이와 관련한 상품권을 경품의 범위에 포함하도록 했다.
자칫 사행산업으로 흘러갈 수 있는 게임시장의 경품수요를 문화 및 문화예술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흡수시키겠다는 것이 애초 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게임시장은 당초의 취지를 무색케 할 정도로 내용이 변질되었다. 게임장들은 주변의 산재한 미용실이나 서점, 할인마트를 형식적인 가맹점으로 등록한 속칭 ‘딱지상품권’을 만들어 현금 대용으로 이용했다. 이름만 상품권일 뿐 아예 가맹점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상품권도 많았다.
이미 지난 99년부터 상품권은 누구나 발행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문화상품권’이라고 이름 붙은 상품권의 발행 자체는 법의 제약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4백여 개의 성인오락실이 모여 있는 안산시 원곡동의 경우, 게임장마다 약 2천∼3천 장의 문화상품권이 내부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장마다 유통되는 문화상품권은 K문화상품권, W문화상품권, Y문화상품권, T문화상품권 등 다양했다.
게임기에서 직접 배출된 상품권은 게임장에서 지정한 환전소에서 액면가의 90%를 받고 현금으로 지급해주고 있었다. 매장 안에서 현금으로 바꿔주는 것은 불법이므로 대부분의 오락실은 형식적으로 매장 외부에 환전소를 1개씩 두고 있다. 10%의 차액은 상품권 발행사, 게임장 업주, 환전상이 나누어 가진다.
사실상 사설 카지노가 전국에 산재해 있는 셈이고,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허가해 주면서 이를 이용한 성인오락실 증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1만4천 개의 게임장이 영업중이다. 이 중 80% 이상이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게임장마다 하루 작게는 2천 장에서 큰 업소에서는 8천 장까지도 유통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 딱지상품권의 시장규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발행사들끼리의 경쟁 또한 치열하다. 게임기에 지정된 상품권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두 장이 배출된다거나 하는 오류가 일어나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또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 외식업체들의 상품권도 게임장에서 변칙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떤 상품권은 정상적인 문화상품권과 오락실용 상품권의 색깔을 달리해 구분해 놓기도 한다.
현재 전국에서 이용되는 문화상품권의 종류만 해도 약 2백 종이다. 그러나 이 중 애초의 의도대로 문화산업 진흥의 목적대로 이용되는 상품권은 단 3종뿐이다. 도서와 음반, 영화, 공연에서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상품권의 시장규모는 약 1천7백억원(2004년)이다. 이 중 (주)한국문화진흥(주요주주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의 ‘문화상품권’이 42%, (주)해피머니INC(주요주주 창투컨소시엄)의 ‘해피머니상품권’이 32%, (주)한국도서보급(주요주주 태광)의 ‘도서문화상품권’이 24%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상품권 종류가 2백여 종이나 되지만 3개사가 9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문화상품권은 대부분 게임장에서만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사실상 게임장용으로만 제작된 상품권은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위조방지를 위한 표시를 하지 않는다는 것. 이 때문에 위조범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성인오락실에서의 환전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권에 대한 단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난 2월22일에는 대구에서 딱지상품권 2백만 장을 만들어 대구시내 10여 곳의 성인오락실에 공급한 김아무개씨(25)를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장당 50원씩의 수수료를 받아 1억원의 이득을 챙겼다.
이 상품권은 시내 유명 음식점이나 미용실 등을 가맹점으로 올려 놓았지만 실제 사용은 할 수 없는 상품권이었다. 처음 업소와 제휴를 맺었으나 사용이 없다 보니 업소측에서도 이를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취지로 시작된 성인오락실의 문화상품권 사용 허가가 부작용을 빚자 문광부에서는 문화상품권에 대해 대대적인 정비를 벌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논란이 분분하다.
한국도서보급, 한국문화진흥, 해피머니INC 등 기존 문화상품권 사업자들은 “문광부가 고시한 허가기준에 따르면 현금으로 이용될 수 있는 쇼핑몰, 할인마트, 유통점 등의 상품권도 인증을 받을 것으로 보여 게임장에서 또다시 현금 대용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또 최근 1년 사이 급성장한 딱지상품권 발행자들이 그간의 수익력을 바탕으로 대거 인증을 신청했다”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생 업체들은 평가 기준 시점이 지난해 12월31일로 제한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영업 실적이 미미한 신생 업체들은 기존 업체들에 비해 불리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상품권 업계 내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문광부는 지난 3월14일까지 신청을 받은 상품권의 인증 여부를 3월31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상품권 재정비로 기존의 문화상품권 업체, 신생업체, 그리고 성인오락실 관계자들의 희비가 어떻게 엇갈릴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